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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Nov 24. 2024

어둠에 걸려 버린 여름날의 빨래

비 갠 늦은 끝 가을날, 그 하루는 눈부시다.

가을은 쉽게도 지나간다

짧은 가을의 끝자락이 부르는 찬 기운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산 넘어 부는 세찬 바람은 

 

며칠 내내 산 골바람이 싸늘히 불고 저녁나절에는 차가운 안개 비가 지면을 뿌린다.

그 새벽을 밝히는 비 갠 끝이 보이는 소나무 향기를 품은 아침 햇살은 눈부시다.

솔향 품은 정오의 바람은 햇살을 넘어 여름날같이 뜨겁다.

홀로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에 가득 맞고 있었다. 

옆에 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혼자서, 조용히 단지 햇볕을 즐겼던 걸까?

그래서 여전히 햇빛 든 창가 자리를 찾고 소파에 기대 헛된 망상을 즐긴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고 노곤 한 몸을 잠자리로 이끄는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오늘은 모처럼 빨래를 한다. 

여름 한나절, 그리고 가을에도 입었던 흰 셔츠, 

주머니가 달린 꿉꿉한 긴소매 바지들

입고 버릴 낡아버린 간단치 않은 내의. 

어쩌다 입었던 시원한 모시 잠옷. 

해 잘 드는 마당 나뭇가지 걸개에 옷가지들을 건다. 

서울살이보다 조금 낫다지만 누추해진 몸을 건사하느라 꿋꿋하던 옷도 하루 만에 후줄근해진다. 

별것 아니어도 점점 닳아지고 스러져가는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이다. 

 

정원 나무 사이로 부는 오후의 산 바람에 잔뜩 부푼 빨래들이 눈부시다.
빨래를 널고 어머니 자주 앉았던 창가에서 보면 텅 빈 옷은 허수아비처럼 보잘것없는 내 생활을 기웃거린다. 

여전히 이 자리를 좋아한다. 

오늘도 그런 자리를 찾아 나선다.

이렇게 저녁노을에 어둠이 오고 빨랫감이 나오고 또 그만큼의 생각도 따라 나오는 것인가 보다. 

 

 이제 다 마른빨래를 걷어야 한다. 

외출 나간 바람기, 그런 로맨스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용기 잃어 게슴츠레 기어들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저렇게 널린 채로 썽썽할 것이다.
저녁나절이면 나부끼는 빨래 보거든 못 본 체 숨죽이고 지나가리라.
나뭇가지를 흔든 바람이 여윈 손가락을 뻗어 사정없이 옷깃을 파고드는 해 질 녘이면, 

밝고 따뜻한 것에 대한 갈망이 불거질 것이다. 

 

온갖 열망이 끝을 보지 못한 채, 이 여름의 열기의 뜨거움을 지나쳤듯이. 

끝 가을의 열기는 여름의 청포도가 밀쳐 터져 나오는 듯 싱싱하다. 

빨랫줄 잡고 나란히 들 서서 어지러운 힘든 세상살이를 향해 나갈 햇살의 빛을 찾는다.
그리곤 이야기가 적힌 저녁을 접어 밤으로 밀어 넣으며 이 캄캄한 하루를 또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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