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후계자 고르기 스토리
밥 아이거 (Bob Iger)가 디즈니로 돌아왔다. 15년 넘게 디즈니의 CEO로서 회사를 점프업 성장시킨 장본인이 다시 귀환한 것이다. 주식시장은 곧장 반응했다. 그의 복귀 소식에 6%가 올랐으니 말이다. 나는 관심 주식이 5% 이상 급등하면 알림을 받는데, 주식시장 알림을 보고서 왜 그런지 찾다가 그의 복귀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돌아가서, 그는 어떻게 CEO가 되었고, 물러난 밥 체이팩 (Bob Chapek, 매체에서는 밥 차팩 / 밥 체팩이라고 쓰던데 발음은 체이팩이 맞음)은 어떻게 CEO까지 되었다가 금방 물러났는지를 살펴보면, 디즈니란 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부터 2년 후 밥 아이거 이후를 대체할 인물을 어떻게 구할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선 밥 아이거는 ABC 방송국 출신으로 거기서 승승장구 올라갔다가, 디즈니가 ABC를 사면서 디즈니 임원이 된다. 그의 이전 CEO인 마이클 아이스너 (Michael Eisner)는 그를 기업 내 공식적인 2인자 자리인 COO로 2000년에 임명했고, 이로부터 5년 뒤 2005년 그는 CEO가 된다. 5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치고서야 이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럼 이번에 물러나게 된 밥 체이팩은 어땠을까. 사실 여러 인물들이 CEO 자리를 노렸다. 밥 체이팩 이전에는 차기 CEO로 톰 스태그스 (Tom Staggs)가 있었다.
밥 체이팩은 쉽게 말하자면 DVD 출신이다. Home entertainment 사업부로 대변되는 DVD 사업을 계속 맡았었고, 그 이후에는 소비재사업 (consumer product)을 총괄한다. 사실 이 둘은 좀 비슷한 성격의 사업이다. 실물을 판매하는 사업인 거다. 지금이야 home entertainment 가 VOD를 생각하게 하지만, 당시만 해도 DVD 판국이었고, 소비재사업도 라이센싱 사업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물을 판매하는 사업이다.
톰 스태그스는 재무와 전략 출신이다. 그는 전략부서에서 시작해서 재무팀을 거치면서 회사 CFO까지 오른다. 그랬던 그가 2010년 갑자기 디즈니랜드를 총괄하는 Park & Resort 수장으로 간다. 디즈니의 소울이 담긴 사업부로 말이다. 아마도 전략/재무 등 back office 출신인 그가 실제로 사업을 잘 이끌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자리였을 터이다. 그는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2015년 COO로 임명된다. 밥 아이거가 COO로 임명되고 5년 뒤 CEO가 되었단 걸 생각해보면, 이는 명백히 그를 차기 CEO로 본다고 공인한 셈이다.
톰 스태그스가 COO로 가면서 비게 된 Park & Resort 수장 자리를 밥 체이팩이 맡게 된다. Home entertainment나 소비재사업을 계속 맡아온 그였지만, 이 두 사업은 사실 디즈니 안에서 아주 매출을 많이 일으키는 핵심 사업군이라고 할 수는 없다. Park & Resort는 돈도 많이 벌고 디즈니의 본질을 담은 사업이라 그 의미가 분명 달랐을 터. 밥 체이팩은 그 역할을 잘 수행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일그러지는 것은, 톰 스태그스가 불과 1년여 만인 2016년에 회사를 나가게 되는 것이다. 누가 봐도 공식 2인자였던 그가 갑자기 회사를 떠난다. 그러면서 밥 아이거는 디즈니와의 계약을 2021년까지로 연장한다. 2인자가 불확실해지면서 이사회는 밥 아이거를 다시 붙잡아 둔 셈이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케빈 메이어 (Kevin Mayer). 그는 전략 출신이다. 기본적으로 컨설팅 출신이고, 디즈니에서도 전략팀에서 Marvel, Lucasfilm, Fox 등의 수많은 M&A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나는 디즈니 전략팀에 있으면서 미국에서 그를 만나고 같이 식사한 적도 있는데, 그는 정말 키도 크고 (거의 1미터 90은 돼 보였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게 크고, 소리를 잘 지르기도 하는 등 상대방을 압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2018년 Bamtech이란 미국 MLB 야구를 생중계하는 디지털 플랫폼 회사를 인수하는데, 이게 바로 디즈니 플러스의 전신이 된다. 지금도 디즈니 플러스의 프로덕트, 테크팀은 다 Bamtech 출신들이고 이들은 모두 뉴욕에 있다. (덕분에 나는 일하면서 동부와 서부와 번갈아면서 시차 계산을 쩝....)
넷플릭스가 재미를 보던 OTT 사업에 뒤늦게 디즈니가 뛰어들면서 케빈 메이어는 Direct-to-Consumer (DTC)로 대표되는 OTT 디즈니 플러스 사업의 총괄이 된다. 사실 디즈니 내에서는 OTT 사업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가 당시에 Bamtech을 인수하면서 해당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결국 DTC 사업까지 맡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 다시 2인자 자리가 빈 셈이다. 한쪽은 디즈니 사업에서 바닥을 다져가면서 올라온 밥 체이팩이고, 다른 한쪽은 M&A로 무장하면서 디즈니를 키워놓고 이제는 DTC까지 꿰찬 케빈 메이어다. 당시 다른 주요 사업이라고는 영화사업 정도였는데, 여기를 맡았던 알란 혼(Alan Horn)은 디즈니로 올 당시 거의 70세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았어서 CEO 후보감은 아니었을 거다.
이제 둘의 경쟁이 시작된다. 케빈 메이어는 2019년 11월 디즈니 플러스를 성공적으로 런칭하였고, 지속적으로 다른 국가와 지역으로 확장한다. 밥 체이팩이 맡은 파크 & 리조트 사업도 승승장구를 달린다. 사실 이 때는 디즈니가 전사적으로 디즈니 플러스의 성공에 목을 매던 때이다 (지금도 그렇고). 당시 공개된 주주 공개발표회 영상을 보다가 너무 놀란 게, 거의 3시간가량의 프리젠테이션에서 80% 이상은 디즈니 플러스 이야기만 한다. 다른 사업은 아예 발언권도 없는 셈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디즈니 플러스가 모든 것의 핵심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케빈 메이어가 사업상으로 보면 차기 CEO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디즈니는 상당히 복잡한 조직이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정말 너무 복잡해서 속이 터질 정도이고, 매우 보수적이며 (어느 대기업이 다 그렇듯이), 대규모 조직을 잘 운영해서 이끌어 나가는 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런 면에서 20여 명의 전략팀만을 계속 맡아왔던 케빈 메이어와, 수만 명의 조직을 이끌었던 밥 체이팩이 비교되었던 것일까? 결국 2020년 2월 밥 체이팩이 차기 CEO로 임명된다. 하지만 그도 결국 2022년 11월에 물러나게 된다.
번외로, 케빈 메이어는 밥 체이팩이 임명되고 몇 달만에 회사를 나가는데, 틱톡 미국 CEO로 갔다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정부 압박 등으로 미국 틱톡 사업이 존폐위기를 겪자 또 금방 나간다. 그리고 재밌게도 케빈 메이어와 톰 스태그스는 같이 Candle Media란 미디어 회사를 차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디즈니 CEO가 되는 길은 참 길고도 복잡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디즈니는 너무 거대한 공룡이고, 이를 잘 다스리는 사람을 정말 수년을 옆에서 놓고 지켜보면서 고르고 고른다는 것이다. 밥 아이거는 대단한 CEO고 그만큼 디즈니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미 15년 넘게 CEO를 한 그가, 다시 오랜 기간을 CEO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기한은 2년. 더 연장을 한다 해도 기껏 3년여 정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시 2인자 싸움의 시작이다. 아마 앞으로의 2년은 밥 아이거가 사업을 정상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후계자를 다시 찾아야 하는 시간일 거다. 그는 이미 한 번 후계자를 찾는데 실패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더더 잘 골라야 할 것이다. 반면 시간은 많지 않다. 5년간의 2인자 과정을 거쳤던 그, 수년을 놓고 저울질했던 밥 체이팩과 달리 이제부터 2년 동안이 전부이다. 디즈니는 전통적으로 내부 인재를 CEO로 올리는 조직이다 보니, 눈은 여전히 안으로 향할 터.
그는 넷플릭스가 10년여 동안 OTT 사업을 휘젓는 동안 지켜보기만 했고, 뒤늦게 OTT 사업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지금은 모두가 OTT에 뛰어들어서 더 이상 구독자 증가가 쉽지 않은 상황.
그의 복귀 소식에 6% 오른 주식시장이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업도 성공하고, 무엇보다도 후계자도 제대로 세워놓아야 한다. 귀환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이제부터 지켜봐야 한다.
Photo by Younho Ch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