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우리는 열심히 살라고 배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노는 것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인생을 사는 게 모범답안이다. 누워서 빈둥대면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기 십상. 나 역시도 중학생 때부터 벌써 to-do list를 작성하면서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열심히 체크하고 to-do를 줄여나가는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성실함에 더해서 책임감까지 가지게 되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도 물론 있겠지만, 나 스스로가 맡은 일은 내가 다 책임지고 끝낸다는 게 나에게 떳떳해지는 길이라고 생각되어서다. 내가 하겠다고 했으면 끝까지 내가 해내는 거지.
이렇게 성실함과 책임감 콤보를 장착하면, 눈앞에 닥친 일 (to-do)를 모두 끝내는 게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말에 몇 시간씩 일하고, 퇴근하고도 일을 붙잡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까 생각하고 그런다. ‘어떻게’에 집중하는 삶이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무엇을’과 ‘왜’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어진다는 점이다.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왜 그걸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산다.
그게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데, 문제는 그걸 이용해 먹는 회사다. 회사는 계약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다. 내가 계약된 시간보다 많이 일하는 것, 소위 봉사활동하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회사가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은 여럿이 있다. 인사고과를 높게 준다, 연봉 인상을 높게 해 준다, 승진을 시켜준다, 더 발전 가능성 높은 곳으로 인사발령을 낸다 등등...
나름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성실함 + 책임감으로 회사의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실제 내가 일한 만큼 회사가 인정해준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인사고과를 잘 받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연봉 인상과 승진 기회가 생겼던 것도 아니고, 내가 오버타임 근무한 것에 대해 야근수당은 받아본 적도 없다. (이건 전략 컨설팅, 디즈니, 스타트업까지 일관된 경험이다.) 이렇게 일이 많아서 어떻게 하냐고 상사가 걱정스럽게 물어보지만 막상 사람을 뽑아주지도 않고 인원을 늘려주지도 않는다. 결국 그 일을 펑크 내지 못할 사람이란 걸, 적은 인원으로도 성실함 + 책임감으로 무장해서 다 해낼걸 회사는 아니까.
그걸 어떻게 하면 타개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요구하는 거다. 적극적으로 더 많은 인원을 요구하고, 더 많은 연봉 인상을 요구하고, 더 빠른 승진도 요구하고. 요구와 함께 약간의 협박도 같이 갈 수도 있다. 인원이 없으면 결국 이 일은 펑크가 날 거다, 나는 경고했다. 또는 이런 상황이면 다른 곳에서 받은 제안과 맞지 않다 등등. 나는 이런 말을 내뱉는 게 좀 민망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알아서 잘해줄 거라 생각해서 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결국 요구하는 사람이 더 받아내는 법이다. 또 요구가 잘 안 받아들여졌을 경우에 대비해서 Plan B도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정말 내가 인정을 못 받는다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거다. 그래야 노예가 아닌 삶을 살 수 있다.
나도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사실 그렇게 살지는 못 했다. 그렇게 안 살아보려고 해도 노예근성이 남아 있는지 괜히 열심히 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보려고 한다. 해볼 수 있겠지?
성실함과 책임감이 강하면 회사의 노예가 된다
Photo by Marvin Me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