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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A Apr 11. 2022

여자가 옷을 사지 않는다는 것

옷을 사지 않을 때의 장점 4가지와 단점 4가지 

마음에 드는 니트와 바지를 입고 학교 계단을 오르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새로 산 하얀색 니트와 파란 체크무늬 나팔바지-당시 유행 아이템-를 입고 계단을 오르니, 나 스스로 엄청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걸음걸이마저 당당해지는 그 기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참 옷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딱 반년만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등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육아 휴직 중임에도 매달 빠져나가는 월급 만큼의 내 카드값을 보며,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사놓고 한 두번밖에 안 입은 옷들을 보니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싶었다. 일단 신용카드를 없애고, 딱 반 년만 패션용품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핸드폰에서 아이디룩몰, S.I. VILLAGE, 멜리즈 같은 쇼핑앱부터 삭제했다. 그리고 남편과 지인들에게 선언했다. 올해는 옷, 신발, 가방 같은 사치품을 안 살거라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옷, 신발 등 패션용품을 사지 않는 것의 좋은 점부터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경제관념이 이제서야 조금씩 생기는 나로서는 이게 가장 큰 장점이다. 사치품을 사지 않고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오늘 쓰지 않은 100만원을 우량주에 묻어놓으면, 나중에 200만원 (좀 더 길게 가져간다면) 1000만원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리라 꿈꾸며, 소비를 참아냈다. 연말정산 때마다 내 신용카드 금액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는 아예 신용카드 없이 살았으니 이건 정말이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전에는 습관적으로 쇼핑몰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새 옷은 쏟아졌고, 구경하느라 시간이 금방 지났다. 이거 살까? 저거 살까? 색깔은 뭘로 하지? 참, 후기가 가장 중요해. 후기부터 좀 읽어야지, 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가 일쑤였다. 아예 쇼핑앱에 들어가지 않으니,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건 예상밖의 장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선택지가 얼마 없으니, 매일 뭐입고 나갈지 고민하는 시간도 줄었다. 여자들은 알 것이다. 매일 뭐 입지 고민하는 시간이 은근 오래 걸린다는 걸. 그런데 옷 소비를 하지 않으면 거의 매일 같은 옷을 입게 되어 고민할 시간이 줄게 된다. 

셋째, 마음이 정리되었다. 한 사람의 공간은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옷을 샀을 때, 내 옷장은 몇 번 입지 않는 옷들로 산만한 모습이었다. 정리하기도 쉽지 않았고, 정리할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옷을 사지 않기로 하면서 옷장에서 안입는 옷도 정리를 했다. 내 옷장은 간소해졌고, 정리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미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비슷한 옷을 또 사곤 했다. 그만큼 내가 뭘 가지고 있고, 뭐가 꼭 필요한지 몰랐던 것이다. 이젠 내가 가진 것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 나에 대해서도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소비를 하지 않으니, 좀 더 깔끔하고 단순하게 살 수 있었다. 공간뿐 아니라 마음도 말이다. 

넷째, 자존감이 높아졌다. 옷을 못 사니, 있는 옷을 맵시있게 입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야식을 끊었다. 작년 하반기에 성인이 된 이후 몸무게 중 최저점을 찍었다. 나는 항상 배가 불러있는 편이었는데, 작년 하반기에는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배가 홀쭉해져 있었다. 자기 관리가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실로 대단하다. 내가 계획한 만큼의 운동을 하고(하루 10분 힙업 운동처럼 대단치는 않은 운동량이었다.), 식단 조절을 하고, 이로써 조금씩이라도 바뀌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 스스로를 칭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반 년 동안 옷(을 포함한 패션용품) 안 사기 계획은 성공일까?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그 간의 나의 고충 먼저 이야기하겠다. 첫째, 쇼핑 욕구를 참아내기가 힘들 줄은 알았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참아내는 것만큼의 고통에 비유할 수 있겠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무기력했고, 짜증이 났고, 생기를 잃었다. 옷 값에는 옷의 값만이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 이 옷을 입으면 예뻐보일 거라는 기대감, 예쁜 옷을 입으면 생기는 자신감, 돈을 쓰면서 얻는 기분전환 값이 다 포함된 것이었다. 나는 반년간 그런 기대감, 자신감, 기분전환을 사지 못해 우울감을 느끼곤 했다.

둘째, 입을 옷이 없었다. 신상은 좋은 거더라. 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옷장을 들여다보며, 도대체 작년엔 뭐입고 다녔지? 라고 의문을 품는지 알아냈다. 옷장의 옷은 신상이 아니기 때문에 빛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난 올해 보면, 입을 옷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아껴서 입는다고 해도, 입고, 빨고, 건조시키는 동안 낡아지기 마련이다. 신상과는 견줄 수 없다. 달라진 유행도 한 몫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스키니한 바지가 유행이었는데, 이젠 스키니진은 아줌마 바지라나 뭐라나. 밖에 나가 보니, 정말 요즘 젊은이들은 헐렁한 바지만 입고 있었다. 

셋째, 쇼핑을 권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간섭에 맞서야 한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나를 보고 남편은 제발 옷 좀 사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나와의 약속이야. 올해는 한 번 소비 안 하고 살아보고 싶어." 남편은 나에게 옷 사라며 돈도 주고, 백화점에 데려가 자기가 사주는 건 괜찮지 않겠냐며 권유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안 푼 내가 은연중에 엄청 짜증을 냈었나보다. 친구들 역시 이런 나를 의아해 하며, 쇼핑의 장점을 역설했다. 쇼핑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면서. 옷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며 나를 쇼핑의 세계로 들이려 했다. 현대인은 확실히 소비중심주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넷째,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했다. 더러워진 옷은 그때그때 빨아서 건조시켜야했다. 세탁소에도 좀 더 자주 가야했다. 옷은 안 사기로 했지만, 구질구질하게 다니기로 한 것은 아니었기에 부지런을 떨어야했다. 

2022년이 시작되었을 때, 내심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옷 살 수 있어서였다. 마치 오랫동안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물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쉴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소비가 나에게 산소같은 존재구나 싶다. 2월에 니트 가디건과 목폴라 티셔츠를 샀다. 오랜만에 옷을 샀을 때의 벅찬 감격이란! 2월과 3월에는 거의 매일 목폴라 티셔츠와 니트 가디건을 입었다. 그리고 하얀 운동화가 사고 싶어졌다. 쇼핑앱을 켜고 어떤 걸 살지 고민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신발장으로 가 내 운동화를 살펴보았다. 하얀 운동화가 3개. 그길로 당장 세탁소에 운동화를 맡기러 갔다. 그리고 그날 결심했다. 올해 패션용품을 사지 않기로. 한 번 해봤으니, 쉬울거라고? 아니다. 해봤으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크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에 옷을 하나도 안 샀는지 고백하겠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 맨투맨 티 하나로 버티니 결국 남편이 아울렛에서 나이키 바람막이 하나를 사주었다. 이건 내가 산 게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라며 어물쩡 넘어갔다. 하지만, 올해는 완벽하게 성공해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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