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목적이란
중학교 시절 명문고에 진학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때가 생각났다. 사춘기 소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뜬금 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뭐하러 이 짓을 하지?”
고등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밤을 새면서까지, 쉬는시간을 쪼개면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쉽상이었다. 나는 대학을 가고 나서, 취직을 하고 나서의 기쁨보다 당시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나중이 행복하려면 지금 힘든 것도 참아야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의 나는 책 좀 읽었다고 한참 성격이 꼬여 있었다.
“나중? 현재의 내가 미래로 가면 그 기준에서는 현재의 나고, 그렇게 생각하면 미래는 나한테 오지도 않는데?”
부끄럽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위 생각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라는 게 최근에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참 철이 없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나중’은 내 언어로 해석하기로는 ‘목적’의 유의어 같다. 목적지 없이 달리는 자동차도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자유로울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목적지 없이 누비다 보면, 자연스레 연료도 떨어지고, 보는 풍경도 거기서 거기 같다.
목적지를 설정한 자동차는 어떤가. 잠깐 길을 잃어도 경로를 수정할 수도 있고, 지금 연료 상태를 감안해서 주유소에 들를 수도 있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내가 정한 목적지까지 가면 다른 목적지를 찍을 수도 있다.
그렇게 방황하던 내 고등학교 시절이, ‘목적’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삶의 ‘종착지’는 어딘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목적지’는 분명히 사람마다 있다. 이렇게 나는 세상에 대해 하나씩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