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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Aug 29. 2022

여행지에서 살고 싶은 마음

정한새




여름 휴가로 강릉에 다녀왔다. 작년 여름 휴가도 강릉이었는데, 올해는 친구랑 다녀와서 같은 공간 다른 여행이 되었다. 가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가고 싶었던 카페나 식당에 가고, 경포호와 바닷가를 걷고, 다른 사람이 청소해주는 숙박업소에서 잤다. 강릉은 온도는 똑같이 30도라는데도 경기도에서처럼 그렇게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바람이 계속 알맞게 불어주었고, (관광지 위주로 다녀서 그렇겠지만) 시야를 가리는 고층 아파트도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천국 같은 사흘이었다.

강원도에 살았었다거나, 휴가로 강원도에 다녀왔다고 하면 열에 너덧은 반색하며 자기도 강원도 갔다 와봤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 남이섬(춘천)이나 바다(강릉, 속초)에 놀러 갔었다고 말하고, 드물게 군생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 끝에 마무리 발언 중 절반 정도는 ‘강원도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제 표정을 여러분 이제는 다들 아실 거라 믿는다.

그야 나도 여행 갈 때처럼만 살 수 있다면 강원도에서 살고 싶다. 출근도 안 해, 노동도 안 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먹고 싶은 것만 찾아 먹어, 좋은 것만 보러 다니고 내가 싫어하는 상사가 쥐잡듯이 연락하지도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찬란하고, 흐리면 어쩐지 분위기 있게 느껴지고 해가 지는 것조차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사는 것’이 정말로 그러한가? 내가 노동도 안 하는데 매달 천만 원 정도씩 벌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강원도에서 살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딜 가나 알람에 맞춰 일어나서 꾸역꾸역 옷을 갈아입고 업무가 기다리는 회사에 나가서 커피를 건전지 삼아 일하고 퇴근 후에 침대에 드러눕는 건 같다. 어디서 일하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 차이는 의외로 많은 걸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도, 결국 보러 가지 않게 된다.

바다. 그렇다, 바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강원도에 살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영서에 사는 사람은 바다를 볼 일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요새 하도 삐뚤어진 나머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답을 알면서도) 묻곤 한다. ‘강원도 어디서 살고 싶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강원도에도 여러 곳이 있다.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당신에게 소원을 빌라고 말할 때 ‘강원도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야 있겠다. 그런 당신을 요정이 XX군 OO면에 내려줬을 때, 그곳이 당신이 생각하는 ‘살고 싶은 강원도’일까?


강원도의 어떤 도시는 작년까지 급증하는 관광객 때문에 물 부족을 겪어왔다. 어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 그곳을 관광지로 만드는 것에 커다란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광지는, 관광지이기 전에 누군가가 사는 땅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이 (때로는 나조차도) 그 사실을 잊는다.

이번 여행에서도 당근 케이크가 맛있다는 카페에 다녀왔다. 가면서 친구랑 둘이서 ‘여기 너무 주택가 같다’고 대화를 나눴다. 실제로 주택가였고, 심지어 그 카페 옆집은 아무리 봐도 누군가 사는 집 같았다. 당근 케이크는 맛있었고, 실내도 예뻤지만 사람들은 밖에서 계속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돌아다녔고,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옆집 창가에 널린 빨래가 자꾸 눈에 밟혔다. 어쩐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외지 사람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소리 지르고, 사유지를 침범하고,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면 누구라도 지칠 것이다. 누군가가 살고 싶은 강원도에 이미 사는 사람은,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이라 해외여행이 어려웠을 때, 국내 여행을 가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특히 확진자가 적은 강원도와 제주도로 많이들 갔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한층 더 복잡하다. 거기에 살던 사람은 하루하루 늘어나는 관광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한때 서울에 살고 싶었고, 서울에 몇 년을 살고 난 뒤에는 서울에서 다시는 살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은 바다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부산에서 살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건이 된다면 대전에서 살고 싶다. 대전에 두어번 여행하고 났더니 맛있는 빵집이 가득하다는 걸 알아버려서다. 여행을 하다가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곳에서 기대하는 건 무엇일까?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곳에서 한적하게 쉬고 싶다며, 결국 그 한적한 곳을 관광지로 바꿔버리는 마음은 뭘까? 그러면서 또 다른 ‘살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는 건 무슨 심리일까? 서울에서 살고 싶은 것과 강원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의 차이는 뭘까?



헤더 사진 : Vlada Karpovic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7368191/     


참고 : 지자체 〈기생충〉 관광코스 개발이 부른 “가난 포르노” 논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8295.html

(덧. 이런 기사조차? 배경이? 서울인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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