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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Nov 14. 2022

덩어리를 쪼개는 공부

조재

최근 지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Q. 춘천의 정체성이 존재한다면 그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아마도 춘천 토박이)
춘천의 정체성은 희박한 것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강릉만 보더라도 고택이나 뿌리 깊게 내려오는 전통 등 그 지역을 특징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지만, 춘천은 그렇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춘천은 이미 고려(고구려였나?) 시대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절멸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주민이 모여 다시 형성된 도시이므로 그 정체성이 희미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드러나는 요소(자연)에서 그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게 아닐까?

B (경기도 출신 / 춘천 거주자)
어느 도시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긴 어려운 것 같다. 그렇기에 그 도시의 브랜드나 장소 중심으로 정체성을 파악하게 되는 게 아닐까? 춘천의 경우 역시 호수를 빼놓고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비교 대상을 바탕으로 상대적인 정체성이 새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경기도 OO시를 생각해보자.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춘천 사람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고를 크게 잠식하는 것은 '서울로부터 밀려남'이라는 상태일 뿐이다. 그에 반해 춘천에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춘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재미있는 지점이다.


둘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단 한 번도 역사적인 맥락에서 춘천을 이해해본 적이 없고, (구)경기도민의 시선에서 춘천을 이해해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했다. 어차피 정체성은 다양한 맥락과 서사가 겹쳐지니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는 것쯤 알지만 왜 나는 이토록 하나의 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또 다른 경기도민 C에게 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더 흥미로웠다.



C(또 다른 경기도민)
경기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있다. 경기 북부(의정부, 구리, 남양주)의 경우 군사 접경지와 가까워 개발이 상대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춘천보다 문화자본을 누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울로부터 밀려난' 상태에 대해 내내 생각하곤 한다. 조금만 이동하면 서울이니 그 지역에 정주민이 많지 않고 덕분에 문화자본 및 다양한 자본이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경기 남부는 또 다르다. 발전된 신도시 형태가 많기에 이들은 자신의 지역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다. 도시 안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필요할 때 서울을 찾는 식이다.


강원도가 하나의 균질한 덩어리가 아니듯 경기도도 그러할 텐데, 나는 경기도민을 '서울로부터 밀려난'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입체적으로 별로구나(내 얘기).


나는 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늘 경험한 것(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험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집중하는 경향이 컸다. 학술적인 것을 터부시 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두곤 했다. 이제는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역사적인 맥락과 지리학적인 맥락이 덧입혀졌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 생길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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