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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Dec 05. 2022

3. 바꾸고 싶은 마음,
바꾸고 싶은 마음을 믿는 마음

감자국퀴어 연말 인터뷰

사회 : 라일라(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공동 기획자 겸 진행자)

참여 : 조재, 정한새(감자국퀴어)




라일라

한새 님은 두 번의 선거를 전부 글로 쓰셨어요. 사실 대통령 선거 결과와 강원도지사 선거 결과 모두 좋지 않았고, 한새 님도 강원도와 춘천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게 보였어요. 그럼에도 ‘이 지역에 기대하는 건 없을지라도, 이곳에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쓰셨더라고요. 우리가 비록 결과는 부정적이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미래에 희망을 느꼈던 이유나 경험에 대한 생각을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한새

몇 년 전에 트위터에도 썼는데, 저는 세상이 나아질 거라고 전혀 믿지 않거든요. 세상은 망할 거고,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망할 거고 실제로 여러 위기를 실시간으로 보고 느낄 수 있고요.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좀 희한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세상이 바뀔 거라는 건 믿지 않지만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는 사람은 믿습니다.

선거는 결과가 그렇게 될 걸 예상했고 그래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건 놀랍지 않지만 똑같은 결과라도 얼마의 득표수를 받고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는 다른 얘기잖아요. 결과는 같더라도 과정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비록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렇게 될 걸 알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걸 보았기 때문에 그런 글을 썼던 것 같아요.


라일라

왜냐하면 이게 끝이 아니니까요. 선거는 또 있고, 이후의 삶이 있으니까 지금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새 님의 말씀에 공감하게 되네요. 끊임없이 이곳이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새 님한테는 중요한 거잖아요.


정한새

그렇죠.


라일라

조재 님은 계속 춘천에 살고 계시는데, 사실 퀴어가 지방을 떠나고 싶은 건 지방이 우리를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떠나고 싶은 거겠죠? 우리가 소수자가 아니었다면 떠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럼 결국 우리가 지방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방이 우리의 공간, 우리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점에서 조재 님이 계속해서 지방에서도, 지역사회 안에서도 퀴어 프렌들리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알고 있거든요. 글에도 물론 쓰셨지만,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서 나로서 살기 위해서 나에게 호의적인, 우리의 정체성이 중심이 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하셨던 노력에 대해서 같이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조재

사실 그건 제가 답답해서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대의를 생각해서? 물론 대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죠. 그런데 그것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서 만들려고 하는 거죠. 하다 보니 사람이 좋아지고, 사람이 좋아지니 또 다음 활동을 해보고 싶은 거죠. 그래서 요새 다른 일로 바빠서 활동을 제대로 못 했더니 자꾸 마음이 드릉드릉해요. 춘천에서 뭔가 좀 하고 싶어요. 아직 그게 무엇이 될지 구체화는 못 했지만, 해 봤던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제가 모임에서 사람을 만나서 일종의 문화공동체를 만들면서 그게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단 말이에요. 결과물을 책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퀴어문화축제도 나가보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가지치기했는데 그런 류의 경험을 또 해보고 싶어요. 그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뭘 하고 사나요?


정한새

아, 나왔네요. 일반인을 향한 활동가의 순수하고 잔혹한 질문. (일동 웃음)



라일라

조재 님에게는 활동이 삶의 활력인 거 아닐까요. 활동이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데, 조재 님은 계속 춘천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셨고, 실제로 그런 경험도 있으시고 한새 님은 미래에 언젠가는 가능하다면 춘천으로 돌아와 퀴어 프렌들리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쓰셨어요.


정한새

맞아요. 그런데 대전이 너무 좋아졌는데. (일동 웃음)


라일라

동시에 한새 님은 춘천에 돌아간다고 했을 때 마주할 혐오에 대한 걱정도 있으시고요. 어쨌든 두 분 다 공통적으로 서울보다는 춘천에서 지역 기반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두 분이 생각하시는 춘천의 미래의 모습이 있는지, 예를 들어 좀 더 퀴어 프렌들리한 도시가 되면 좋겠다와 같은, 그리고 그걸 위해서 두 분이 하시고 싶은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재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닐 수 있는데 저는 제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뭔가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마침 춘천인 거죠. 춘천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에요.


라일라

근데 그건 다 그렇죠. 우리가 만약 울산 사람이었다면 울산을 바꾸고 싶었겠죠.


정한새

울산? 울산은 난 좀 자신 없는데. 울산? 왜 하필 울산이죠? (일동 폭소) 


조재

춘천에 있는다는 가정 하에는 조금 더 시스템을 갖춘 걸 하고 싶어요. 사람을 모아서 모임을 하고 이런 정도가 아니라 좀 더 체계를 갖춰서 지원받을 수 있는 형태가 되면 좋겠죠.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가장 좋겠고, 거기서 가지를 뻗어서 다른 곳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요. 사실 임금 노동이 제 생활에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해요. 임금 노동하는 시간을 좀 떼어서 활동하는 데 쓸 수 있다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정말 좋겠죠. 말하고 보니 이게 활동가네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구체화는 못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퀴어 프렌들리한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곳에 가면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곳이야, 라는 인식이 지역에 퍼지면 좋겠어요. 거기 가면 우리를 위한 활동이 있어, 이렇게 공간이 알려지게 되면 활동에 동의하거나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거점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정한새

왜 나는 계속 춘천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삶의 가장 긴 기억, 그리고 오래된 기억이 춘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살았거든요. 그러니까 춘천이 저의 장기 기억 장치인 거고, 친구도 춘천 출신이 많고요. 그래서 돌아갔을 때 기반이 되기 쉬운 곳인 것도 아마 맞을 거예요. 또 조재 님도 계시니까(웃음).또 저는 기본적으로 지방에, 앞서 조재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성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계속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도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조재라일라

(웃음)


정한새

왜요?


라일라

그게 바로 활동가의 마음가짐 아닌가요. 누군가는 해야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 아무도 없어? 그럼 나라도 해야지, 이런 거요.



정한새

아, 이건 제가 극단적으로 아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춘천에 그런 활동 하는 분들이 이미 있는데 제가 모르는 걸 수 있잖아요. 근데 저는 춘천이 더 나은 도시가 되길 바라서라기보다는 아까 말한 것처럼 춘천에서 사는 사람이 더 괜찮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춘천에서 계속 살고 싶은 사람이, 거기서 더 잘 살기 위해서 무엇이 있어야 할까. 이 고민을 할 때 저에게 ‘사람’은 소수자인 거죠. 그리고 고민의 끝은 조재 님이 말한 것처럼 결국 공간이고요.

활동가 경력을 반추해봤을 때 공간 운영에 대한 고민은 있어요. 예를 들어 이 공간을 퀴어 청소년 대상으로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공간을 개방합니다, 청소년 중에 학교 다니는 학생이 있을 수 있으니까 늦은 시간에도 열어놓겠습니다, 라고 공지한다고 쳐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 시간 외에도 방문하고 싶을 수 있거든요. 필요에 의해서든 욕구에 의해서든.


라일라

그렇죠. 나를 환대하는 공간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부모랑 싸우고 오고 싶을 수도 있고, 아웃팅 당하고 피난처가 필요할 수 있고, 누군가랑 밥 먹고 싶어서 오고 싶을 수 있잖아요.


정한새

그런데 저는 동시에 활동가의 사생활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누군가가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 놓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필요한 시간에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럼 공간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열어놔야 하나, 공간 운영에는 사람이 필요한데(저든 남이든) 그럼 그 사람에게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 혹은 주말 근무를 요구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무리한 요구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드는 거죠.

역시 활동가 경력을 반추해봤을 때 제 윗세대 활동가분들은 자기희생이 기본값인 분들이 많았어요. 삶과 자본을 전부 투신하고 그게 당연했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사는 분이 계세요. 많죠.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 성과도 무척 훌륭하고 개개인을 존경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는 앞으로 나올 활동가에게도 그런 삶이 기본값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 세대의 활동가가 과도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게 저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라일라

그렇군요. 아, 그런데 방금 춘천이 아니라 춘천에 사는 사람을 위해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실상 그 지역과 그 지역의 사람을 분리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정한새

분리할 수 있죠. 춘천이 여전히 살기 힘든 도시여도 거기서 사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길 바라는 거예요. 지방이 가진 현실적인 여건이 있잖아요.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제 문화나,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일자리가 과반이라거나, 밤 12시까지 회식하는 문화가 남아있다거나, 개인을 개인이 아니라 어느 집 딸로 본다거나 하는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제가 어떤 공간을 운영해서 그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는 있잖아요.


라일라

아, 이해했습니다.


조재

그런데 한새 님이 말씀하신 공간 운영의 문제는 공간을 운영하는 모든 단체가 똑같은 이유로 고민하는 거긴 해요. 정말 중요한 문제고 많은 활동가가 힘들어하죠. 사람이 제일 힘드니까, 아무래도.


정한새

맞아요. 근데 저는 지역 기반의 소수자 환대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활동가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간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그걸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조화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그게 고민이죠.


조재

정말 어려워요. 왜냐하면 환대의 느낌을 주려면 사람을 갈아 넣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개인이 운영하면 운영에 무리가 가고, 회사에서 운영하면 담당자가 정해지고 책임을 주지 않는 이상 잘 굴러가기가 어려워요. 문제는 담당자가 정해지는 순간 결국 그 사람이 갈려 나갈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게 많은 사람, 특히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간을 운영하는 게 어려운 지점입니다.


라일라

두 분 다 실질적인 운영 방침에 있어서는 고민이 많지만, 그럼에도 퀴어 프렌들리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생각이 같으시네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보완할 부분들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저도 두 분이 그런 공간을 만들면 방문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강원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퀴어 여성으로서 지방의 삶에 대해 두 분의 글로도,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저에게는 특별하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독자분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혹시 감자국퀴어, 내년에 돌아올 계획이 있으신가요?


정한새

조재 님이 요새 굉장히 바쁜 시기고, 저는 해고당한 상황이라 이 고비를 넘기고 다시 회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재

올해 유난히 바빠서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긴 했지만, 무척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지방에 사는 퀴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긴 했거든요. 왜 나는 이런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질까, 왜 나는 서울에서 생활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들까,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게 글로 쓰기 전에는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떠다니기만 해서 답답했어요. 글쓰기가 가지는 힘 중에 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정리하는 동시에 한새 님하고 같이 활동한 거고,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글 연재를 하는 건 다른 경험이라 유의미하고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새 님이 쓰신 글 보면서 제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아, 나도 저런 생각해 본 적 있어 하고 깨닫는 게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라일라

저도 지방 출신 퀴어 여성이라서 항상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했던 걸 두 분이 자발적으로 이렇게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셔서 한 사람의 독자로서 무척 즐거웠고요. 이런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슈화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면 좋겠습니다. 특히 올해 서울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고 지방 청년 이야기도 화두가 되고 그랬는데 이런 흐름에 감자국퀴어가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재

내년에 저희 돌아오면 라일라 님도 하실래요?


라일라

무슨 소리세요.


정한새

생각해 보세요, 라일라 님. 라일라 님도 함께하시면 쓰는 사람이 세 명이 되니까 마감이 훨씬 늦게 돌아와요. 한 달에 한 번만 쓰면 된다니까?


라일라

이 대화를 계속했다간 큰일 날 것 같네요. (웃음)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감자국 퀴어의 2022년 마무리 인터뷰였습니다.





편집 : 정한새

감수 : 라일라, 조재


* 다음 주, 감자국퀴어의 연말 인사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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