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인 Dec 06. 2022

연결고리



가장 봄비 다운 봄비가 내린다.

햇볕과 바람이 지나간 후 기다리던 그가 와서 토양을 적시고 있다. 

한눈파는 사이, 순결하게 눈뜬 연둣빛 새싹이 고갤 내민다. 

한 방울의 봄비는 농축된 영양제가 되어 대지의 살을 찌운다.

잠들기 전까지 곁에 머물렀던 니체가 잠에서 깨자마자 찾아온다.

니체와 함께 뜰로 나간다.

작은 뜰에는 내 우주의 축소판이 놓여있다. 

그 안에서 자연의 섭리를 보고 세상과 삶을 읽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대상을 보고 이는 생각이야말로 나만의 해석이라는 것을. 

그 해석은 역사나 사회에 의해 길들여진 관습적 도덕적 인식 도출이 아닐까.

결국 자기 사유라는 건 먼저 땅을 밟고 간 

사회적 인간들의 복제물 그것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니체는 내게, 

지금 판단하려는 작동원리 그 기저에 닿는 물음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종용한다. 

현재 사유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의 독서는 아니 대가들과의 만남은 

끊임없는 사유 속에서 스스로가 도출해낸 인식이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비록 현실 안에 놓였을 때 그 사유는 한갓 보잘것없는 웃음거리가 돼 버리지만, 

니체는 ‘왜소한 인간들’ 즉 ‘천민'들의 집합체여서 그런 것이니 

그 안에 서 있지 말라며 힘을 보태 준다.

사유는 관습에게 언제나 뒷덜미를 잡히곤 한다. 

안전하고 편한 길이 있다며 부추긴다. 

길들여진 사고체계며 행동에로 끊임없이 향하게 만든다. 

그것은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들어 

정신 영역을 점령해 버리는 괴물이다. 

늘 끊임없는 질문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그것에게 곧 패배하고 만다.

사유에 의한 사유의 확장은 자기 합리화로의 길이 아닌가 싶어질 때도 있다. 

결국 내 성향에 따라 마음 편히 살고자 

그러한 사유를 머리 아파하면서 하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합리화와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자기합리화의 길은 안전과 안주라는 평범함에 묻히고 말지만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은 인식과 세계 확장이라는 하나의 창조물을 낳는다. 

창조 자체가 또 다른 창조로의 도약이 되게끔 이끈다. 

그 거듭됨이 답습을 넘어서게 한다. 

그 거듭됨이 자유의지며 희망을 만든다. 

그 끊임없는 거듭됨이 때론 고통과 위험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니체가 말하는 ‘차원 높은 인간’ 곧 ‘초인’이 되는 것이다.

비의 힘은 고여 있던 물길을 트이게 하고 흐름에 박차를 준다. 

하나의 사유 또한 또 하나의 사유와 만나면서 

정체되었던 사고가 봇물이 내준 물고처럼 터지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의 물길이 다른 물길을 밀어주고 합류하면서 물살이 커진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하나는 세계와 그렇게 닿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