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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31. 2024

내가 똥이 될 상인가?

살면서 각양각색의 DDORAI들을 본다.

한때는 똑같은 DDORAI가 되어 물어뜯고 싸우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현인들의 말을 되새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


쌍욕하며 덤비는 사람이든 머리채 잡고 흔들어대는 사람이든 이제 마주하면 그냥 져주고 네네 그러세요, 웃으며 피하는 거다. 옷깃에 똥을 살짝이라도 묻을까봐 말도 섞기 싫다.

어제는 누가 봐도 당연히 본인이 해야할 일을 내게 넘기려는 타 부서 직원과 다투기 싫어 그냥 해당 업무를 가져와서 처리했다. 기를 쓰고 끼어드려는 차는 그냥 먼저 가게끔 앞에 끼워주고, 반말로 사람 심기를 건드리는 상사에겐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다.

믿거나 말거나 난 어릴 때부터 예쁘고 똑똑하다고 괜히 싫어하고 시비거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는데 어릴 땐 그게 참 속상하고 그런 사람들과도 잘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 그들도 어차피 똥이고, 나의 그럭저럭 괜찮은 미모나 학력이 부러워 꼬아듣고 헐뜯으려는 의도라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그들의 눈에 들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날 부러워하고 괴롭히려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들과는 필요 이상의 말을 절대 섞지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뭐 피하고 또 피해도 그런 사람들과 마주칠 때는 그들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둔다.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내 실수를 비웃고 싶어하면 비웃는 대로, 틈을 보고 싶어하면 틈이 보이는 대로. 내 손에 굳이 똥을 묻히지 않아도 세상이 갚아준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못된 DDORAI 들에게 받은 상처는 깊지 않고 오래 가지도 않는다.


진짜 상처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들에 의해 생긴다.

그들은 종종 하찮은 나의 마음을 깊게 할퀴고 오래 가는 생채기를 남긴다.


너 좀 별로야.


그들은 착해서 대놓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기분이 더 더럽달까?

똥을 밟는 느낌도 더럽지만 내가 똥이 된 느낌은 더 별로다.



간만에 직장에서 정말 괜찮은 어른을 봤다.


남들이 하기 싫어서 서로 미루기만 하는 업무를 선뜻 나서서 도맡아하고, 충분히 거절 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꺼낸 부탁도 흔쾌히 받아주는 사람.

나의 직속상사가 곤란해서 해주기 싫다는 서명을 그런 걸로 힘들어하지 말라며 본인이 아무렇지 않게 해주시는 분. 나랑 부서가 다르면서도 모르는 업무를 들고 가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생각하지 못했던 업무들도 기한을 놓치지 않도록 챙겨주고, 마주칠 때마다 상냥한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커피를 주문할 때도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도 회의 준비를 할 때도 그냥 모든 일상에서 배려가 넘쳐나 보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그런 사람.

글로 써놓고 보니 내가 그 분에게 혹은 그 분이 나에게 딴 마음이 있나 싶지만 그녀는 나랑 같은 여자인데다가 기혼에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다.


참 보기 드물게 인격이 훌륭하신 분이구나,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그녀를 보며 다짐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흠, 그런데...... 좀 이상하다.


선을 긋고 절대 곁을 내어주지 않는 느낌.


그 분은 내게 개인적인 이야기는 결코 물어보지 않고, 회식자리에서 특정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내가 의견들을 늘어 놓으면 웃기만 할뿐...... 맞장구 쳐주는 법이 없다. 그리고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그 분이 바쁠 때 도와드리려고 하면 한사코 거절한다. 커피 한 잔도 내게 얻어 마시는 법이 없다. 사들고 간 커피도 굳이 나 마시라며 내 손에 쥐어 보낸다. 그러더니 지난 주에는 그 분 부서 직원과 내가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는데 오후에 갑자기 내게 커피를 사 오셨다. 뜬금 없는 커피에 놀라 왜 이걸 주냐고 여쭤봤더니 의미심장한 대답이 돌아왔다.


- 우리 부서 직원이 돼지씨 심기를 불편하게 했잖아?


......뭐지?

바보처럼 순진한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의심이 들었다.

아! 어쩌면 이 분은 나를 ‘똥’으로 보고 있어서 지금껏 내게 적당히 예의를 갖춰 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 의심.

쌈닭으로 소문난 나랑 엮이기 싫어서, 본인 손에 똥 묻히기가 싫어서 적당히 예의 바르게 나를 피했던 거라는 꽤 가능성 높은 의심.

‘감히’ 네 심기를 건드렸다고,

교양있게 비아냥거리는 거라는 확실한 의심.

내가 DDORAI 들과 말을 길게 하기 싫어서 네네 그러세요, 했던 것처럼, 그냥 적당히 웃으며 인사하고 적당히 예의를 갖추었던 것처럼,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하기 싫다는 업무를 그냥 내가 했던 것처럼...... 하지만 선을 그어 놓고 절대 그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지 않으려 기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처음도 아니었다.

회사 여러 부서 사람들과 싸우고 또 싸우며 지내다가 저렇게 친절하고 협조적인 사람을 보면 마음이 확 풀리며 의지하게 되는데,

그 쪽에서는 선을 긋고 적당히 예의 바르게 적당히 친절하게 나를 대하는 느낌.

나랑 말을 길게 섞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하는 대로 우쭈쭈 다 맞춰주는 느낌.  


내가 똥이 된 느낌.


가끔 부부싸움을 할 때도 그런 더러운 느낌이 확 치밀어 올라오곤 한다.

나는 남편의 인격에 반해서 결혼했는데,

그런 남편이 눈을 까 뒤집고 날 공격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인격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상대(=나)는 정말 개차반 아닐까 싶어지는 거다.



사는 게 원래 누군가에겐 내가 똥이 되고, 누군가에겐 인격은 훌륭하지만 더 가까워질 수 없는 좀 기분 더럽게 하는 인간이 되기도 하고 왔다갔다 하는 과정의 반복인 걸까?


아니면 남들 눈에

내가 정말 똥같은 인간인 걸까?


정말 괜찮다 싶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데...

어째 주변을 둘러보면 괜찮다 싶은데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가끔 만나서 차 마시고 맛집이나 찾아다니는,

겉으로만 “언니^^ 오랜만이다 더 예뻐졌네요!” 하며 내적으로는 그다지 친밀하지 사람들만 주변에 꽤 여럿 남아있을 뿐이다.

한때 참 괜찮다 생각하고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순차적으로 나를 손절하고 떠났다.

시절인연일 뿐이야,

나는 정상인데 그들의 성격이 별로인 거야,

잘 멀어졌지, 싶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을 다시 한번 꺼내보는 밤이다.

DDORAI 들에게 받은 상처는 잘 기억조차 나지 않고,다시 떠올리고 곱씹을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DDORAI니까,

그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은 내가 정상 혹은 그 이상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반증이 된다.


하지만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다수에게 인정 받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다르다.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모두가 좋다고 해도 나랑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게 나처럼 서너명을 넘어가는 이상,

잠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돌아본다고 당장 인정하기도 달라지기도 힘들겠지만,

마음이 왠지 불편한 상태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겸손해질 수 있다.

겸손은 날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청량한 밤 공기릉 깊게 들이마시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책하고자 침체되고자,

혹은 간만에 괜히 우울해지고 싶은 의도가 아니다.

그냥 지금 창 밖으로 들려오는 풀 벌레 소리처럼

청량하게 담백하게 물어보는 거다.




내가 똥이 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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