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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31. 2024

삐빅- 열폭버튼이 눌렸습니다[6]

섣불리 고요를 논하지마

나는 요가가 좋다.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출근하는 워킹맘이지만

늘 시간에 쫓기면서도

일주일에 세번 이상 꼭 요가수업에 간다.


오래 했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뒤집어 서고 발을 머리 뒤로 넘기고 꼬았다 풀었다가 하는 어려운 동작들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균형을 잡고 5초도 겨우 버티고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특정 아사나를 성공하면

직장에서 깎아 먹힌 자존감이 쑥 올라가는 그런 취미.

특기 아닌 취미.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

요가하는 순간에는 동작에만 몰입이 된다.


생계형 워킹맘이 유일하게 사치를 부리는 시간.

매트 위 몸뚱이 하나,

소박하지만 행복한 나만의 힐링타임.


하루종일 요란스럽던 마음이

매트 위에서 맨발로 고요를 찾는다.

겹겹이 입고 있던 번뇌를 홀홀 벗어던지고

개운하게 알몸이, 아니 알(?)정신이 된다.


하지만......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은

취미생활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핀다.

인스타그램이 시발점이 됐다.

도전 중인 동작들에 대해 검색하다가 한 여자를 봤다.

예쁜 요가복을 입고 영롱한 요가매트 위에서

고난이도 동작들을 척척 해내는 그녀.

요가강사도 아니다.

그녀도 나처럼 취미로 요가를 한단다.

마음의 고요를 찾는 취미라 했다.

장렬하게 요가를 하며 땀을 쏟은 뒤, 사바아사나를 하면 마음도 몸도 땅으로 푹 꺼지면서 고요가 찾아온다 했다. 발리로 인도로 요가수련을 위한 여행을 일주일씩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올린다.

미혼도 아니다. 결혼도 했고 애들도 키우는 아줌마인데 굉장히 여유가 넘친다.

미친듯이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집 사진이 있는데 집값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에 족히 80평은 되어보이는 고급 아파트다. 남편의 사랑도 듬뿍,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도 듬뿍 담긴 사진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렇게 다를 수가.

똑같이 요가하는 아줌마인데 이렇게 똑같지 않을 수가.


예쁘고 날씬한 요가인들에 대한 열등감이야 벌써 이골이 났다.

요가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부가 맑고 몸매도 날씬하다. 울퉁불퉁 근육 없이 예쁘게 탄탄한 느낌이다.

그런 쪽으로야 부러운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예쁜 몸매에 대한 희망도 버린 지 오래라 괜찮은데

오늘은 마음의 '고요' 를 찾는다는 표현에서 삐빅- 열폭버튼이 눌려버렸다.


고요라.

마음의 고요라.


나는 고요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조건이 풍요로운 자들의 고요는 예외다.

배 부르고 등 따숩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는데 마음이 고요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선망하는 고요란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에서

굳건하게 나무 자세로 서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벽부터 출근하고

하루에도 수십번 때려치고 싶은 일이지만 침 삼키듯

퇴직 욕구도 꿀꺽꿀꺽 삼키며 일하고

사람들에 떠 밀려 전철에 실린 채 퇴근을 하고

집에서는 설거지를, 빨래를, 식사 준비를, 아이들 목욕을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치열하게 해내고......

그러고 늦은 밤 남은 힘을 쥐어 짜내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다가 장렬하게 전사해버리는 흔한 시민, 그의 마음에 고요가 있다면 그 고요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그런 고요를 찾기 위해 요가를 한다.

더럽고 치사한 직장생활, 부부 둘이서 최선을 다해도 몸이 바스라질 것 같은 집안일을 버텨내고

매트 위에 섰을 때 고요히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을 선망한다.


그러니 주렁주렁 알록달록 히피 같은 요가복을 입고

영롱한 요가매트 위에서 우아하게

요가동작을 이어가는 그녀가 눈꼴 시릴 수밖에.

집안일은 이모님이 해주고

남편은 써도 써도 모자라지 않게 돈을 벌어오고

애들 학교생활 무던하게 잘하는데

마음의 고요를 굳이 찾을 이유가 뭐가 있나.

요가하고 브런치 먹고 수다 떨고 해외여행하고,

생활이 고요 그 자체인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아니면서

고요를 논하다니.

매트 위에서 나는 자유롭다, 같은 표현을 하다니.

매트 밖에서도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충분히 자유로우면서 말이다.


고요함 속에서 고요를 찾는 건 멋지지 않아.

치열함 속에서 고요를 찾는 게 멋지지.


그렇지 않나?

그렇지! 맞다마다.


...... 하지만 나는 안다.

틀린 부분이 있다.


인스타그램 속 그녀가 실제 고요한지 아닌지 모르면서

나야말로 섣불리 치열함 속의 고요를 논했다는 사실.

그녀가 나보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중일 수도 있는데, 경제적 여유와 치열함이 무조건 반비례하는 건 아닌데 말이지.


아는 언니가 그랬다.

사는 게 힘들수록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다고.


부러워서,

그녀의 삶에도 힘든 부분이 있겠거니

못난 마음을 먹고 싶지는 않다.

다만 풍요로운 고요 속에서 고요를 찾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섣부르다’ 판단하는 자체가

 섣불렀다는 반성을 해본다.


배 부르고 등 따시고 별 걱정 없이 살면서 섣불리 고요를 논하지 말라고 현인 흉내를 냈다.

남과 비교해 떠오른 쓸데없는 생각들을 이렇게 글로 써 내려온 나야말로 

배 부르고 등 따시고 걱정할 게 없어서 남의 인스타그램 피드나 염탐하고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르게 고요를 논한다며 미워했다.


못났지,

못났어.


매일 반성한다.

그리고 반복한다.

아마 난 내일도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할 것이다.


섣불리 고요를 논하지 말라고 섣불리 말하지 말자.

열등감이 이렇게 해롭다.


사는 게 너무 치열해서 열등감도 생겼다고 변명해본다.

오늘도 착한 사람보다 못된 사람을 더 많이 만났고,

이타적인 사람보다 이기적인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된 상황에서, 

겉으로 봐서는 전혀 고되지 않은 사람을 보니 열등감이 폭발했다.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잘나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 걸 어쩌겠어.


우아하고 여유롭지 않지만 오늘도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 해야지.

오늘은 어깨로 서기, 살람바사르반가 아사나에 도전한다.

자세는 되는데 오래 버티는 게 영 힘들다.

오늘은 3분이 목표다.

3분 짜리 모래시계를 뒤집어놓고 꼭 해낼 것이다.

발리나 인도로 해외 수련을 갈 형편은 아니지만

괜찮다.

우리집 거실 바닥에서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서 어깨로 서 있는 듯한 고요를 찾아야지.

변두리 도시 아파트의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마치 해변의 바람처럼 만끽해봐야지.


일주일 중에 가장 힘들다는 목요일이다.


오늘도 치열했을 평범한 직장인들,

그리고 세상 모든 엄마랑 아빠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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