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 Aug 05. 2024

미라클 포레스트 #3

유차장이야기2

 래이가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어왔다. 어느 카페에 가든 유차장이 늘 마시는 메뉴다. 하지만 이 곳, 카페 <이원>의 마끼아또는 지금껏 마셔본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타는 듯하던 갈증이 사라졌고 달달한 캬라멜 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기분 좋은 달달함, 이게 얼마 만인지. 일이 터지고 아무리 단걸 먹어도 진흙탕처럼 쓰기만 했던 유차장이다.


맛이 괜찮으세요?


 래이의 목소리는 싱그러웠다. 어느 여름, 시골 마을 구멍가게 앞 평상으로 훅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같았다. 외모도 그랬다. 긴 속눈썹이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깊은 눈빛에 해맑고 순수한 느낌을 더했다. 유차장은 먹어본 캬라멜 마끼아또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대답했고, 래이는 싱긋 웃었다. 눈썹 살짝 아래로 내린 갈색 앞머리가 찰랑거렸다. 교복이 참 잘 어울릴 외모라고, 그의 미소를 보며 유차장은 생각했다. 밝고 티없이 맑은 소년의 느낌. 반면 래원의 목소리는 심해처럼 고요했다. 벌써 세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참 한결같이 묵직하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냐는 래원의 질문에 유차장은 모르겠다고, 딱히 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그런 건 아니라고, 그저 그날 인사조정위원회에 가기 싫었고, 깨질 듯한 두통에 약을 먹어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고 대답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을 망각한 채 걸어오며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이미 희미해지기도 한 터였다. 하지만 래원은 분명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걸 유차장의 입으로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카페 이원에 온 것은 기회라고,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는 거였다. 달라고 한 적도 없는 기회를 누가 잡고 싶어한다고 도통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유차장은 래원의 차가운 눈빛과 냉랭한 목소리에 압도되었다. 상담이라기보단 분석에 가까운 느낌. 그래서 오히려 믿음이 갔달까? 그는 결국 모든 걸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았다. 주희와의 만남부터 코마에 빠지기 전 마주했던 형형색색의 섬광들에 대해서까지.


그래서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한참을 털어놓던 유차장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그는 한국대병원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있었다. 어쩌다 이 곳에 오게 된 거지? 꿈일까?


꿈 아니라고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
꿈은 이따 주무실 때 꾸십니다.


 생각이 읽히고 있는 걸까, 유차장은 생각했다. 이어 래원은 <꿈꾸는 방>이라고 적힌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따가 유차장이 꾸게 될 꿈을 설계할 예정이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다. 뭔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커피를 마시고 바로 잠이 오지는 않을 거 같다고 하자 래이가 그럴 리는 없다며 걱정말라고 당부했다. 이 자체가 꿈 같은데 이 안에서 또 <꿈꾸는 방>이라니, 도대체 뭘까? 꿈 속의 꿈? 인셉션?


꿈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 이건 꿈이 아니에요.
아직은 꿈이 아닙니다.
꿈은 이따 잠드시면 그 때부터 시작이에요.


 이럴 수가, 래이도 그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흠칫한 유치장을 보며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래이는 변명조차 없이 말을 이어갔다. 


굳이 따지자면 가상현실에 가깝지만 가상이라고도 할 수 없고
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지요.
현실의 유차장님은 아시다시피 코마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꿈꾸는 방에서 꾸는 꿈은 가상세계라고 볼 수 있어요.
설계자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가상세계죠.
하지만 <이원>에서의 꿈은 현실세계를 반영합니다.
유차장님은 알지 못했던, 하지만 알았으면 좋았을 현실시계의 이면을 반영해요.
그러니 즐겨보세요.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하죠.
 <이원>은 닫힌 문 반대편의 열린 문을 보여 드립니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유차장은 생각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 사십 년간 위로랍시고 수차례 들었던 그 말은 그에게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상투적 표현은 확률로 입증됩니다.
그만큼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으니까 사람들 입에 많이 올랐고
자연스레 상투적 표현으로 자리매김 한 거겠죠?


 미저러블 포레스트인지 뭔지, 자살 시도에 실패하고 스스로 기억 못하는 선행을 세 가지 이상 쌓아야만 올 수 있다는 이 장소. 유차장은 아직도 뭐가 뭔지 또렷하게 알 수 없었다. 그저 슬슬 잠이 쏟아졌다. 자기도 모르게 하품이 나와 입이 쩍 벌어졌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려는데 래원이 <꿈꾸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유차장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남자들에게 보기 드문 우아한 손짓이었다. 


 <꿈꾸는 방>은 매우 단촐했다. 창문도 없이 킹 사이즈 침대 하나가 놓여있고 빛이라고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카페 불빛이 전부였다. 즉, 문을 닫으면 암흑인 상태. 유차장은 왠지 소름이 돋았지만 박차고 나갈 힘도, 나간다고 한들 갈 곳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지경으로 잠이 쏟아졌다. 커피 때문인지, 방에 은은하게 감도는 향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이게 무슨 냄새더라, 라벤다였던가.


그럼 주무세요.
한숨 푹 자고 나오셔서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침대에 눕자 마치 방금 세탁하고 건조한 듯 포근한 구스 이불이 유차장의 몸을 감쌌다. 잠이 들랑말랑 한 상태에서 유차장은 래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즐기세요.


 아니, 아까부터 뭘 자꾸 즐기라고 하는 건지.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순간 유차장은 인사조정위원회 자리에 앉아있었다. 뭐야, 이거? 꿈이야? 사내 인사조정위원회 위원들은 호불호를 가늠할 수 없는 눈빛으로 유차장을 응시했다. 기이한 시선들이다. 심장이 배꼽 아래까지 내려 앉았다가 불규칙한 박동을 시작하였다. 이내 가슴을 움켜 쥔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즐기라고? 억울하게 흉악범으로 몰려 끌려온 사내 인사위원회 자리에서, 뭘 즐기라는 거야?


유차장님이 생각하신 것과 다르게 전개될 겁니다.

 래원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갔다. 암흑. 유차장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인사조정위원회가 시작되었다. 너무나 현실 같은 감각에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차장은 다시 한번 심장이 뜀박질치는 걸 느꼈다. 위원들은 유차장에게 주희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고, 최대리가 목격했던 장면에 대하여 물었고, 사내 돌고 있는 소문들의 진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혼 후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사태가 벌어진 후 주희와 연락은 했는지, 어떤 연락을 주고 받았는지 등의 질문들을 쉴새없이 던졌다. 유차장은 떨렸지만 침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도 모든 걸 소상하게 털어 놓았다. 현실의 나는 한국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라는 생각이 유차장에게 용기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망각한 채 유차장은 그간 못했던 이야기,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꿈인 걸 알면서도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위원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단 한번도 끼어들지 않고,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그들은 유차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그러자 처음 그들의 눈빛이 주던 기이한 느낌은 사라지고, 유차장은 어느새 그들에게 억울함을 성토하고 있었다.


제가 왜 이렇게 무너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 말할 기회조차 없었던 이야기. 위원들은 유차장의 말에 몰입했고, 누군가는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유차장이 물었다. 더 이상 못할 말도 없었다.


당신들 왜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죠? 계속 애원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잖아요.
이건 혹시 저의 희망이 투영된 꿈입니까? 네?
다 끝난 마당에 왜 이런 희망고문을 하는 겁니까?

 마치 가위에 눌린 듯,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목소리가 실제로 나오는 건지 아니면 입은 다물고 있고 마음으로 외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끝났다고요, 끝! 사람 하나 잘못 믿었다가 나는 끝장이 났다고요!


끝나지 않았어요.


 래원의 목소리였다. 꿈을 설계한다더니 꿈 속에 목소리도 들리게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몸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유차장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이 살면서 베푼,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세 가지 선행.
그 덕분에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겁니다. 다시 한번 삶을 마주할지, 아니면 이대로 끝내버릴지.
선택은 당신 몫이에요. 우린 그 선택에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꿈에서 깨어나면 당신은 이 곳에서 나가요. 그리고 두 갈래 길을 마주해요.
삶으로 향하는 길과 죽음으로 향하는 길.
다시 한번 말할게요.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혼란스러운 유차장의 눈 앞으로 문득 회의실 스크린이 보였다.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자잘한 글씨들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감정에 북받힌 유차장이 그 글씨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지난 3월부터 유차장의 카카오톡과 메신저,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회의실 내 모든 사람들이 화면을 주목했다. 화면 속에는 유차장과 주희가 주고 받은 봄날의 기록들이 빼곡했다. 일이 터지고 유차장이 가장 절실했던 자료다. 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복구가 불가능했던 기록들이다. 꿈에서 위원회에 앉아있는 유차장의 눈에서도, <꿈꾸는 방>에 누워있는 실제 유차장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넘쳤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미라클 포레스트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