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유연한 사람으로 키우기
에러 피드백 잘 주고 받기
좀 꼰대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이 글은 '라떼는~'으로 시작할수 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은 넘고 15년은 되지 않은 그 해, 내가 신규교사로 발령을 받았던 학교엔 불같은 성격의 교감선생님이 계셨다. 나이스로 전자 결재를 올리는게 일반적인 지금과 달리 나이스는 존재했지만 기안문을 출력해서 구두 결재를 사전에 받는 것이 당연하던 그 시절, 크지 않던 교무실 너머로 교감선생님의 호통소리가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들리곤 했다. 갓 스물 너다섯된 나와 동기들의 겁먹은 눈을 보며, 대선배님들께서(하지만 지금의 내 나이 정도이실) 우리를 앉혀 놓고 교감선생님 공략법을 지도해주셨다.
"분명 지적하실거야. 근데 그걸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으면 안 돼. 오히려 웃으며 '어머, 그러네요?여기가 틀렸네에~?' 하면 크게 안 혼나고 넘어가."
벌써 MZ들의 답답한 탄식 소리가 들리는 듯 하나, 그때엔 저런 조언이 나의 살 길이었다. 저걸 잘 하는 애교도 많고 넉살 좋은 동료 교사 언니는 수월하게 넘어갔고 저게 도저히 안 되는 나는 몇 번을 연습해야 했다.
왜 갑자기 케케묵은 과거 일화가 생각났냐면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저 일화엔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자세보단 상사의 기분을 맞춰야 할 시절에 대한 함의가 더 커서 비판거리가 더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는 잊고 배울 점만 찾아보도록 하자.(나에게 하는 말이다) 저 꼰대같은 일화에서도 애써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으로 초점을 맞춰보도록 하겠다.
최근 스타니슬라스 드엔의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를 읽었다. 뇌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배움의 중요한 네 기둥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에러 피드백'이었다. 책에서 내가 이해한 내용을 간단히 옮겨보자면 인간은(미성년의 경우엔 특히 더) 수 많은 실수를 하는데 그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배움이 뇌 회로에 깊이 새겨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익숙한 예측과 달리 에러를 발견했을때 뇌에서는 놀람 반응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도파민 분비를 촉발하여 긍정적 보상 체계를 활성화 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에러 피드백이 처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피드백을 받고 무력감, 자기 혐오감,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피드백을 주는 자는 신중하고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저자의 말대로 나는 피드백이 정말 그저 피드백이 되도록, 학생이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갖지 않도록 사려깊게 행동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더 새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더 보탠다면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태도를 꼽고 싶다. 교사로 교실에 있던 10여년 동안 같은 피드백을 주더라도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자세가 천차만별인 것을 보았다. 별 다른 꾸중을 한 것도 아닌데 피드백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앗 아까비~ 고쳐와야겠다."라고 경쾌하게 말하는 아이도 있다. 이는 아이들의 타고난 성격, 자아 개념, 가정에서 양육자와의 상호작용 등 많은 요인이 누적되어 만든 차이일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피드백을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대부분 더 좋다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으니 당연히 교우 관계나 학교 생활도 더 즐거워 보인다.
학교에서의 나는 피드백을 주는 나의 역할에만 집중할수 밖에 없다. 나는 정확하고 사려깊은 피드백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 함을 새기고 또 새긴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나는 나의 아이가 에러 피드백을, 나아가 살면서 겪을 많은 실수들을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유연하게 고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피드백은 주는 사람 만큼이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역할도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로 키우기 위해 내 역할이 가장 중요함도 알고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아이 학습을 봐주는 시간에도 크고 작은 피드백을 정확히 주고 그것이 쓸데없이 아이를 비난하는 걸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부터 실수를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제일 중요한 건 모범을 보이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10여년 전 교감선생님을 뵙기 위해 장착했던 능글능글한 태도를 다시 연습해본다.
"어머, 엄마가 틀렸네? 아 이게 아니구나. 새로운걸 배웠네."
자꾸 해 봐야지. 하다 보면 아이 뿐 아니라 나도 정말 실패에 편안한 사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