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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Jun 02. 2024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같은 2학년 선생님

아아도 뜨아도 아닌 뜨아아요

 교직 총경력 14년차, 그 중 육아휴직 3년을 빼면 11년의 경력 중 어쩌다보니 2학년 담임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자타공인 고학년 체질이라 여겨왔었다. 저학년은 어린 아이들을 보면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지고, 제 품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나긋나긋한 말투를 타고난 교사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나처럼 아이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고(그냥 내겐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 똑같다) 말투가 딱딱하며 따뜻하기보단 단호하고 조금 쿨한(자랑은 아니고 그즈음 나는 6학년 어린이들에게 쿨하다는 찬사를 흔하게 들었다)교사저학년과는 상관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년 선택이란건 취향의 문제라기보단 학교의 형편, 또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나의 처지, 맘이 잘 맞는 동료의 유혹등 그때 그때의 무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차선을 고르는 문제였다. 그리하여 어쩌다보니 상황에 맞춰 난 2학년을 가장 많이 해본 교사가 되었고 올해도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그런데 웬걸, 2학년 담임에게도 나같은 특성이 꽤 필요함을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듯 함께 손잡고 노래하며 나긋나긋한 말투로만 저학년을 대했다간 학급 붕괴가 일어나기 십상이었다. 생각보다 2학년 담임은 고학년 담임보다 더 학급규칙이나 학습 및 생활습관을 가르치고 유지하게 하는 지구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복도가 운동장인 것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3월초 몇 주동안엔 쉬는 시간에도 복도를 지켰고 공책을 첫 표지부터 차례대로 쓰는 것, 수업시간에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것, 교실에 올때는 휴대폰을 끄는 것처럼 기본적인 것들도 한 두번 말해서는 아이들 몸에 익지 못했다. 글자의 획순, 간단한 셈하기 등 학습지도 역시 여러번, 반복해서, 꾸준히 해야 했다.


 마음읽기 지도법이 매체에서부터 시작해 유행했을 무렵, 나도 한번 시도해보았다. 급식실에서 음식을 입에 한가득 넣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장난치는 아이에게 다가가 "친구랑 마주보니 이야기하고 싶구나. 하지만 밥을 먹을 땐 장난치면 안돼." 라고 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나를 바라보고 웃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단순한 규칙 혹은 공중도덕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마음읽기보다 미간에 힘을 주고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훨씬 필요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단호하고 엄격한 2학년 담임으로 살다가 때로는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도 온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 장난을 많이 치는 아이가 내 칭찬을 받겠다고 손은 무릎에, 허리는 꼿꼿이 세운 모습을 봤을 때, 길이재기 수업을 하기 위해 나눠 준 털실 한 조각을 수업이 끝나고도 "가져도 돼요?"물으며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볼 때.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몸에 배어 내게 많이 지적을 받았던 아이가 친구의 실수에 "그럴수도 있지." 라고 말하는걸 들었을 때. 이럴땐 나의 단호함을 접어두고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칭찬의 달콤함에 흠뻑 젖도록, 이 순간을 아이가 잊지 않고 다음에 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또 어느 순간들엔 내 마음이 쿵 떨어지며

'그래, 교사는 역시 따뜻해야해.'하는 다짐을 하는 날도 있다. 하교 후에도 내 곁을 맴돌며 이런저런 자신의 얘기를 하는 아이에게 업무를 하면서 영혼없이 대답해 주다가

"그런데 저 오늘 태권도 끝나고 모래놀이하는 상담센터 가요."하는 정보를 듣게 되었을 때,

"나중에 하늘나라가면 아빠 만날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렇다. 그렇게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을 무렵,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 급식실에서 한 아이가 참지 못하고

"선생님, 저 이거 어제 샀는데요, 제가 고른것이 신상이었어요."라고 사소한 자랑을 했다. 규칙을 상기시켜줄까 잠시 고민하다

"우와 ♤♤이가 보는 눈이 있나보네."라고 답해준 순간 학생들이 재잘거렸다.

"저도 이거랑 비슷한 거 있어요."라며 자랑을 하는 아이들. 심지어 우리반에서 내가 가장 믿는 똑똑하고 과묵한 여학생 또한 "선생님, 야구 좋아하시죠? 저 오늘 야구장가요." 라며 자신도 질세라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자랑을 하는 것을 볼 때, 아, 너도 역시 아이구나. 그동안 의젓한 모습 보이느라 힘들었겠네 생각하며 마음이 훅 따뜻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생각을 했다. 2학년 담임이란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것이라고. 쓰디쓴

아메리카노의 엄격한 맛 위에 얼음과 같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다 뜨거움도 잃지 않아야 하는 것. 하지만 그 뜨거움이 얼음을 녹일 정도가 되면 그건 그냥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되어 버리니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온도를 잘 맞춰야 하는 것이라고. 아아도 뜨아도 아닌 뜨아아가 되는 것이 2학년 담임의 일임을 2학년을 4년째 하는 올해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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