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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May 09. 2024

Fat Ham: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햄릿> 재구성작

메타적 흑인 퀴어 가족 이야기

2024.5.3 관극로그


Fat Ham

2022년 초연 이후 2023년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여 뜨거운 감자가 된 <햄릿>의 재구성 극.

LA의 Geffen Playhouse에 브로드웨이 팀이 오게 되어 보러 갔다. 뜨거운 인기로 벌써 공연 기간을 두 번째 연장하였다.

Fat Ham 공연 포스터


완전히 가벼운 극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정극에 가까웠다. 기본 연극의 틀 안에서 가벼워지려는 시도가 많이 보였다. 햄릿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가져오되, 주요 세팅이 거의 재구성되었다. 배경은 남부(노스 캐롤라이나) 한 흑인 가정의 바베큐 파티. 첫 장면부터 포르노 소리로 시작하고, 이어서 아버지 유령이 돗자리를 뒤집어쓰고 등장하는 등 쇼적이고 장난스러운 구성이 많았다. 그럼에도 대사 위주로 이끌고 가는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극에 깊이를 주었다.


시작과 끝 무대 모습

눈에 띈 것은 메타적인 구성. 메타적이란 극 속 인물들이 현재 자신들이 극 속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대사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거나, 중간중간 '이쯤이면 이런(<햄릿>에서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말이지'와 같은 대사들로 <햄릿>의 각색임을 인지하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한 번씩 햄릿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알지 못할 햄릿 명대사를 힘주어 던지면 관객들이 열렬한 호응으로 맞아주기도 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대사는 활용하지 않은 점이 인상 깊었다. 극장이 떠나가라 적재적소에 웃음이 터진 걸 보면 다들 보통 고인물이 아니다.


메타적 구성은 작품의 쇼적인 특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Fat Ham은 자연스레 흐르는 스토리를 추구하기보다, 볼거리들이 종종 이야기를 간섭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바베큐 그릴에서 아버지 유령이 연기와 함께 튀어나오고, 노래방 기계로 돌아가면서 노래하다가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주인공이 독백을 하고,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래리(<햄릿>의 레어티스)가 자신의 꿈인 드래그퀸이 되어서 화끈한 드래그쇼를 보여주며 끝난다. 같이 간 친구도 다른 관객들도 드래그쇼에 흠뻑 취해서, 정말 특별히 좋았던 극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극장을 떠났다.


너무 좋은 Geffen Playhouse의 대기 장소. 따뜻한 히터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서 야외인데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젠더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극의 모든 에너지는 햄릿의 어머니 테드라(원작에선 거트루드)에게서 나오는데, 테드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극을 휘어잡는다. 특히 성적으로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햄릿> 원작에 만연한 여성혐오적 색채가 현대 무대에서 극의 발목을 잡곤 하는데, Fat Ham에서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확실한 테드라와 그에 압도되는 남자 등장인물들이 있었다. 원작에서 햄릿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거기서 받은 상처를 힘없는 오필리아에게 쏟아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의도가 어땠든 전통적인 공연들에서 이를 오이디푸스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어머니의 성적 파트너가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에서 햄릿이 모든 여성의 성욕을 혐오하고 통제하고자 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Fat Ham에서는 햄릿을 비롯한 래리와 오팔(오필리어) 모두 퀴어 인물로 설정되면서, 햄릿이 어머니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자녀라면 자연스레 가질 수 있는 재혼한 부모님에 대한 어떠한 배신감과 부모님도 성적 존재란 걸 인지할 때의 어색함, 즉 인간적인 영역에서의 고뇌가 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내가 읽었던 것과 더 맞닿는다고 느꼈다.


공연 보러 가기 전 먹은 한인타운의 이모네 굴보쌈. 맛집이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도 그려지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다지 고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에서는 늘어나는 도시의 인구에 비해 볼거리, 놀거리가 극장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루에도 공연을 몇 편씩, 매일 다른 공연을 바쁘게 올렸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방문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극은 최대한 많은 사람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이것저것 다 들어간, 다소 정신없고 긴 형태였다. 귀족의 취향을 맞춘 시적 언어와 평민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노골적이고 일차원적인 농담이 함께 들어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문화적 권위를 높이는 인물이 되고 문학적으로 해석되면서, 원래 그의 인기의 비결인 수많은 재치 있는 농담과 몸개그는 간과되어 왔다(고 본다. 나는 셰익스피어 학자가 아니기 때문이 틀린 통찰일 수도 있다). Fat Ham이 특별한 비법 없이도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고 지금까지 열렬한 관객 반응을 얻는 데에는 원작이나 권위에 대한 의식 없는 솔직함과 생생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Fat Ham Playbill (https://issuu.com/geffenplayhouse/docs/fat_ham_playbill-issuu?fr=sN2JkNTY0NzEzNTc)

Fat Ham 배우 상세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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