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수직 구직 2년 차인 올해는 확실히 작년보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엔 아직 대학원생으로의 자아 속에 갇혀있었다면, 일 년에 걸쳐 그 껍데기를 계속 깨어내고 난 지금은 내가 교수로서 해야 할 일들과,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한 예측이 좀 더 잘 된다. 그리고 그 아주 현실적인 단상은 상당히 두려운 모습이다.
인문학 박사과정을 겪지 않은 주변인들은 나를 보며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남았다,라고 말한다. 사실 멀리서 볼 때는 교수 자리를 일단 하나 얻고 나면, 그래도 가장 중요한 산을 넘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뒤에 펼쳐질 일들이 그다지 설레지는 않는다.
애초에 나는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가 없었다. 그저 순간순간 나에게 가장 충실한 선택을 해왔더니 여기였다. 연구와 글쓰기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어서 보니, 연구와 글쓰기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교수였던 것이다.
요즘 인문학 취업 경향을 보면, 실적이나 학벌보다는 "fit"이라고 말하는, 각 자리에 대한 적합성이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적이나 학벌도 중요한 고려대상이지만, 어느 정도만 맞추면 그다음은 지원자가 얼마나 자신의 강점을 스스로 잘 파악하고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강점이 마침 학과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인지가 더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아무래도 대학원 갓 졸업생에게는 아직 장착되어있지 않은, 경력자로서의 노련함과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인문학 교수 자리의 수가 점점 적어짐과 동시에 지원자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누굴 뽑으나 그가 꽤나 훌륭하게 필요한 일들을 잘 해낼 것을 안다. 그래서 판별을 위해 이런저런 것을 따지기 시작하는데, 그 기준은 프로그램마다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판별 기준이 있다. 그것은 과연 이 사람이 테뉴어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지, 즉 정교수가 문제없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선 조교수로 임용이 되면, 대략 5-6년의 기간 뒤 정교수 심사를 거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내 이름으로 출판된 학술서적 한 권과 논문 세 편,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축적된 강의평가다. 미국에는 연구 위주의 대학과 강의 위주의 대학이 나뉘어 있는데, 강의를 가장 적게 한다는 연구 위주의 대학도 한 학기에 최소 두 개 수업은 맡아해야 한다. 기존 강의 자료 없이 새로운 강의 두 개를 준비한다는 건 한 학기 내내 주말도 퇴근도 없이 매일을 마감일처럼 살아야 하는 정도의 노동강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 겨우겨우 연구학기가 주어지면 밀린 일들과 현장연구를 하기에도 빠듯하다. 펜을 잡으려 하면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단 교수직을 맡게 되면, 특히 신임 교수에게는 더욱이, 엄청난 행정일들이 주어진다. 행정 처리가 수업 준비와 글쓰기를 압도할 정도라고 하니 시간을 대체 어떻게 쪼개 써야 하는 것일까? 그에 더해 예기치 못하게 들어오는 학생 상담과 멘토링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그래서 책을 결국 내지 못하고 정교수 심사를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많이 황당했다. 왜냐하면, 취업 자료를 준비하면서, 연구계획서와 수업자료 등등을 만들어 나갈 때, 모집요강에 적힌 것만 생각해 그에 충실히 준비했었다. 나의 연구 능력이나 색채, 그리고 수업 스타일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무도 대놓고 언급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어필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나는 테뉴어를 딸 수 있어'였다. 그냥 그렇게 말한다고 믿음을 줄 수 없으니 갖은 노력을 다해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증명해주어야 한다. 연구계획서는 최대한 자세히, 이미 내가 다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또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미래를 이미 내가 다 아는 것처럼 쓰면 안 된다, 너무 가짜 같으니까. 강의능력을 어필할 땐 고용주가 나의 이용가치를 잘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신임 교수들이 맡는 전공필수 대형강의와 개론 강의들, 그것들을 할 수 있으면서도 또 나만이 할 수 있는 전공분야 강의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내 수업이 지루한 권위적 형식이 아니라 다이내믹하고 학생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이면서도 그들의 생각을 열어줄 수 있는, 신선하고 진보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사례를 들어 증명해야 한다.
가짜 투성이지만 또 진짜가 적절히 섞여 들어가 있어야 한다. 서류에서도 면접에서도, 그들도 알고 나도 아는 가짜를 서로 아주 열심히 연기한다. 그 연기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이 이곳에서 통용되는 언어기 때문이다. 이 언어 체계를 벗어나게 되면 고용주 입장에서는 다소 불안해진다. 뭘 믿고 뽑아야 할지 모르게 되니까. (***여기서 가짜라는 건 무엇도 확언할 수 없는 실제 교육 현장과 연구임을 모두가 아는데도 그걸 제한된 짧은 페이지 안에 가장 확실하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의 경력과 강의평가가 중요한 것 또한 정교수 심사와 얽혀있다. 정교수 심사 때는 교수직 지원 때처럼 내가 좋게 받은 점수와 코멘트들만 모아서 증거로 제출할 수가 없다. 매 학기 가르쳤던 수업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평가대상에 들어간다. 그래서 강의경력이 없는 사람을, 검증되지 않은 그 사람을 뽑기엔 리스크가 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게 맞나 싶다. 어느 순간부터 임용 기준의 큰 부분이 책을 쓸 수 있는지가 되었다는 게, 그리고 그 이유가 책을 쓸 능력과 준비도 문제가 아니라 책을 쓸 수 없는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얼마나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 있는 초인적인 힘이 있는지를 보기 위함인 게. 어떤 친구는 '이러다 종합건강진단서라도 내라고 하겠네~ 가족력에 암이 있는지 없는지 보게'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길을 걷다 너무 많은 조교수들이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건강진단서를 요구하는 곳은 참 아름다운 곳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교수직의 요구조건이 개인의 건강을 담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미 쿡 (Mimi Khuc)이라는 동양계 미국인 학자가 "교수님은 아프다(The Professor is Unwell)"이라는 표어를 걸고 이러한 상황에 문제제기하는 글을 이어서 내면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그만큼 아주 현실이고 사실인 상황이다. 작년에 임용된 내 선배님은 2년 차인 지금도 매일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밤 열한 시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해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했다.
이런 환경이 부추기는 승자는 연구고 강의고 힘을 뺀 채 적당히 대충 처리하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대학원 내내 우리 학과 교수님들에게서, 학부 강의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네게 수입을 주고 너의 경력을 위한 실험대상일뿐, 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연구 또한 적당히 전략적으로 남의 통찰을 얼른 가져와서 먼저 출판해 내면 그만이라는,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교육을 받았다. 한 번도 동의할 수 없어서 학과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이렇게 말했지만 내가 여전히 교수직을 알아보는 이유는, 또 다른 편에 나처럼 진심의 조각들을 담은 연구와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수록 못 살아남고 그럴수록 병에 걸린다.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 작은 한 명 한 명이 여러 학생과 학자들에게 따뜻한 불을 밝혀주고 있다. 나는 그쪽으로 홀린 듯 가면서도 두렵고 슬프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가던 길에 우연히 나의 멘토 스승님을 만났다. 이번 학기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 강의계획서를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우당탕탕 내 수업을 준비하던 와중 받은 그 강의계획서의 경이로운 퀄리티에 입을 못 다물 정도로 압도되었다. 순간 많이 위축되기도, 또 내 십 년 후는 이런 모습일까 하며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마주친 교수님의 어깨는 무겁게 축 쳐져 있었다. 생각한 만큼 학생들이 잘 못 따라와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카페에서 작은 빵 하나를 사서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으며 걸어가시던 와중 나와 마주쳤는데, 여름방학 동안 단 한순간도 쉰 적이 없다는, 이제 11월에 책 원고 최종 심사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한편 내게 수많은 추천서를 써줌과 동시에 또 수업을 더 잘하고 싶어서 고민하고 또 맘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늘 수업 때문에 고민하고 우울해하는 것이 아직 초임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위안해 왔는데, 십 년 뒤에도 저렇게 같은 고민을 할 수도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의 축 처진 어깨가 오히려 멋져 보였다. 다만 너무 아끼는 사부님이기에 제발 힘들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싶었다.
와중에 교수님의 연구에 대해 좋은 얘기를 전할 것이 있었는데 그는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먹던 빵을 다 토해내듯 켁켁거리더니 늘 그렇듯 불편해 어쩔 줄 몰라하며 쥐구멍을 찾았다. 제발 자신의 연구의 멋짐이라도 누렸으면 좋겠는데 사부님 뿐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모든 학자들은 다 이런 반응이다. 내가 뭔데, 난 아무것도 아니야, 어휴 부담스러워.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런 교수님도 결국엔 적당한 여유와 능청스러운 연기로 지금에 와 있다. 정교수 심사가 코앞인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까. 지켜본 바로는 쉼 없이 평가받는 상황이 끝난다는 점에서 아주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업무 강도는 그저 익숙해져서 해낼 뿐인 것 같았다. 이제 사십 대인데 희끗희끗한 그의 머리를 보며 지금도 이미 아픈 내 몸이 정교수 심사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도 추천서를 가지고 흥정했던 나의 지도교수님은 올해에도 내가 어디에 어떻게 지원하는지를 따지고 들며 흥정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나의 '게으른' 모습을 힐책하며 더 많은 일을 할 것을 종용했다. 나는 그 선생님만큼 성의 없는 강의는 들어본 적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다른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하기로 했다. 강사로서 우당탕탕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지금,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짬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희망적으로 있어보기로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인생 선배들에게 기대며 계속 가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