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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야 Jan 09. 2021

언니의 고통 곁에 서 있을게

고통은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빠의 장지를 결정하고 돌아오는 차 안. 돌연 언니의 한숨소리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앉은 쪽 창 옆에는 '투쟁!'을 써붙인, 공공운수노조의 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TV에서 연예인 부부가 감기 걸린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짓는 장면을 보던 언니가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유명 연예인 부부의 아이가 앓는 감기의 고통과, 매서운 한파에도 치열하게 길에 서는 노동자의 고통을 재보았다. 누가 더 고통스러울까.


나는 투쟁하는 노동자를 향한 언니의 시선이 부도덕하다 느낀다. 누군가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자신의 직업을 말하며 논리적으로 몰아세우고 찍어 누르는 언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언니 일상의 100%를 차지하지 않는다. 언니도 그런 자신을 많이 참고,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 체념도 한다. 때때로 흔들리는 언니의 눈과, 고단한 어깨를 보면 알 수 있다. 참고 참다, 약자를 향해 터트리는 그 분노는 어디서 왔을까.


얼마 전 친구들과 <학교의 슬픔>을 읽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은 우리의 가슴을 열었고, 우리는 학창 시절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한 친구가 언니와 비슷한 단계 - 공부를 잘했고, 외고를 가고, 손꼽는 대학에 입학한 - 를 거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선생님과 어른들의 절대 기준인 '공부'를 잘하면 자신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어서 목숨 걸고 공부했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면 체벌과 욕설, 질책과 무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에 10대 시절 언니의 모습이 겹쳤다. 친구는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다 울었고, 나도 가슴이 아파 같이 울었다.


열등생인 나는 우등생인 언니의 마음을 몰랐다. 친구가 사용한 '살아남으려고', '생존경쟁' 같은 말들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지적받고, 욕을 듣고, 무시당했다. 그게 싫어서 거짓말을 하다 피맺히고 멍들게 맞으며 자랐다. 친구들만이 나를 이해했다. 언니는 성적으로 잠 못 이루고, 복통과 두통, 각종 알레르기에 시달렸다. 친구와 마음 터놓는 대화 한 번 마음껏 할 틈도 없이 소리 죽여 공부했다. 성적만이 언니를 증명했다. 누가 더 힘들었는지에 대한 비교는 불가하다. 누가 더 도덕적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래는 책 <가난의 문법>의 소개글이다.


"거리에서 폐지와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인 리어카나 카트를 끌고 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다음의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세 가지 반응이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외면하거나, 동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첫째, 외면하는 사람들의 경우다. (...) 폐품을 잔뜩 쌓아 수백 킬로그램은 될 리어카를 끌고 그 길을 힘겹게 걷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편한 마음이 절로 든다. (...) 젊었을 때 저축을 별로 안 한 사람들이겠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서 자식이 생활비도 안 주나 보네. 나는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고 연금도 붓고 있으니 저런 노인이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들의 처지가 ‘내 일’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둘째,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는 어떤 이들은 동정하기를 택한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연민의 대상이 된다. (...) 이들은 늙어서도, 몸이 아픈데도, 푼돈을 위해 거리를 쏘다녀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다.


세 번째 경우의 사람들은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 노인들의 처지가 언젠가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 냉정하게 미래를 계산한다. 하지만 남는 것은 실질적인 대비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커다란 두려움이다. 나도 저런 처지가 되면 어쩌지.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언니는 어느 쪽일까. 내가 차 안에서 잠깐 만난 언니는 아마 투쟁하는 노동자를 외면하고 비난해서 혀를 찼을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참고 견디며 성실하게 사는데, 자기가 뭐라고 참지를 못하고 싸우러 다녀?  사람한테 딸린 자식은 어쩔 거야? 저축은 하고 있나? 집은 있나? 나도 정말 힘들거든? 너만 힘든  아니거든?' 그리고 아마 언니는 다른 날에는 때때로 그들을 동정하고, 때때로 자신도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 것이다. 통장에 찍힌 월급과 예금잔액을 보며 안도하다, 그 아래 찍힌 대출이자 출금 내역과, 대출금이 한참 남은 아파트를 떠올리며 불안에 잠기기도 할 거다.


나는 언니가 고통스럽게 견디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안다. ‘험난한 고통 뒤에 나는 승리했다.'라는 자부심으로 애써 모른 척 하지만, 언니는 자꾸만 한숨을 쉬고 어깨가 처진다. 출근이 고단하고 울적한 날도 많다. 자신보다 편히 사는듯한 남들을 괜스레 비난하고 원망도 해본다. 언니는 부도덕하지 않다. 그저 자신의 고통에 신음할 따름이다. 자신이 고통 속에 살면, 타인의 고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 고통 곁에 설 수 있을 때, 타인의 고통 곁에도 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니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굳이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언니의 고통도 이 세상 누구의 고통만큼 힘겹다는 걸 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목표 지향적인 언니는 부모님과 집을 튼튼히 지탱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살고 싶은 대로 산다. 공부를 못해서 친구들에게 의지해 자란 관계 지향적인 나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나의 따뜻한 관계망이, 퇴직 후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는 언니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도덕을 들이대 언니를 재지 않고, 언니의 고통과, 투쟁하는 노동자의 고통을 비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니의 아픔 곁에도, 투쟁하는 노동자의 아픔 곁에도 있을 거다. 이건 언니의 고통에 관한 글이다. 그리고 나는 언니의 기쁨과 사랑스러움에 관한 글도 쓸 수 있다. 나는 언니의 즐거움과 행복 곁에도 있을 거다.


사랑하는 언니가 고통에서 자유롭기를. 언니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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