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라서 사랑해요.
엄마.
엄마라는 말은, 사랑한다고 시작해서 사랑해요로 끝나는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은 무게가 있어요. 끝은 아마도 사랑해요, 일 텐데요. 시작은 다르게 쓰였어요.
엄마, 엄마는 내가 꿈꾸고 바라던 엄마가 아니에요. 나도 엄마가 꿈꾸고 바라던 딸이 아니고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 바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최선을 다했죠. 그래서 서로 바라는 것이 되어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아주 비극적으로 느끼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비극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서로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관계, 서로에게 맞춰주는 관계에서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고 깊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엄마가 바라는 딸이 되려 했지만 계속 미끄러지던 나의 40년 치 절망과 세상이 바라는 엄마가 되기 위해 혹독하게 참은 엄마의 40년 치 눈물이 어느 날부터 겹쳐 보였어요. 자기 자신이 되기보다 누군가 바라는 무엇이 되려는 사람의 필연적인 외로움과 절망, 우울과 갈증을 저는 엄마와 나에게서 동시에 보았거든요. 내가 아닌 것이 되려고 애쓴 삶이 우리 사이의 비극일 뿐, 서로가 바라는 것이 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비극이 아니에요.
엄마와 내가 겹쳐 서면, 빈 곳이 생겨요. 그 빈 곳, 암점을 어떻게든 메꿔보려고, 환히 비춰 속속들이 보려고 애쓰곤 했어요. 그러면 엄마가 바라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완벽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사이의 어둡고 빈 곳을 그냥 보기로 했어요. 밝히거나 채우지 않기로 했어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필연적으로 처음과 끝을 반씩 나눠 가지는 사이더라고요. 나는 엄마의 처음을 모르고, 엄마는 나의 끝을 모르죠. 엄마는 나의 처음을 알고, 나는 엄마의 끝을 알게 될 거예요. 우리는 원래 반은 모르는 사이예요.
다 알아야 사랑한다고 느끼는 건 좀 이상해요. 그러니까 딸에 대해 너무 다 알려고 하지 않기를 바라요. 내가 영원히 모를 엄마와 내가 어쩌면 안다고 생각하는 엄마 반을 더해 엄마가 더욱더 자기 자신이기를 바라요. 아, 이런 바람들도 다 이루어지지 않겠죠. 이건 나의 바람이지 엄마의 바람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 사이예요.
서로 이루어주지 않아서, 잘 몰라서 사랑해요.
2021.10.16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