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체제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진보정치를 준비하자
포퓰리즘에 휩쓸리는 비호감 대선은 체제 위기의 빨간불
지금까지 이런 대선은 없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들 한다. 민주당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 의혹과 가족 문제에서 보인 인성 탓에 비호감이고, 검찰 권력의 수호자였던 국민의 힘 윤석열은 국정철학은 커녕 평균적 상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최소한의 균형감조차 의심스럽다. 비호감 논란은 두 후보를 넘어 그들의 배우자에게까지 번졌고 급기야 모두가 언론에 나와 각기 학력·경력 위조와 남편의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을 사죄하기에 이르렀다.
비호감 말고도 두 후보의 공통점이 또 있다. 이들 모두가 포퓰리즘에 기초한 후보들이라는 점이다. 이재명은 정치권에 발들인 이후 지금까지 수구세력에게 적대적인 이미지와 대중영합적인 정치로 한국 정치에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정치인이고, 윤석열은 조국 사태부터 검찰 권력을 지키려던 수구적 행보가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투사의 이미지로 왜곡되어, 현 정권과 86 정치인들이 꼴 보기 싫은 이들에게 지지를 얻어 얼결에 대통령까지 넘보게 된 인물이다.
아무리 대선은 바람을 타야 한다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던 선거에서 승리했던 노무현조차도 그의 오랜 행보가 바람을 탔던 것이지 얕은 바람 자체가 그의 밑천은 아니었다. 이렇게 얕은 밑천으로 선거를 치르려니 양 진영 모두가 네거티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선이 이토록 기괴하게 흐르고 있는 것은 결코 후보들 탓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포퓰리즘은 항상 낡은 것이 사멸해 감에도 새로운 것이 등장하지 않는 “그람시의 시간”을 통해 나타났다.
짜르 재정의 낡은 체제의 한계 속에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에 포위되었던 러시아의 나로드니키(Народники, Narodniki)가 그러했고,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나치가 그러했듯이, 포퓰리즘은 항상 좌우를 가리지 않고 체제 위기 속에서 대중의 불만에 기생한 반지성주의이자 반정치의 정치로 등장한다.
체제의 총체적 위기 속에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는 모든 원인을 외부의 타자에게 전가하는 혐오를 자양 삼아 위기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로 이끄는,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 체제의 종말을 상징하는 징후적 현상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와 ‘민주-반민주 대결’의 87체제, 종말 앞에 서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소위 말하는 “87체제”의 종말이다. 이 체제의 뿌리가 되었던 87년 6월 혁명은 군사독재를 종식한 정치혁명이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오롯이 민중들의 바람만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발전모델은 경제적으로 낙후한 식민지 해방국이 군사독재를 통해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이룬 제3세계 발전국가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독재 권력을 통해 육성된 재벌은 70년대 후반부터 이전처럼 국가를 통해 훈육·육성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커졌고 비대한 독재 권력은 자본축적의 필요에서도,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더는 유지되기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자 했던 87년 6월 혁명은 진정한 의미의 ‘부르주아 시민혁명’이었고, ‘민주화’의 진보적 의제력은 그것으로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시민혁명의 불완전성은 이 혁명으로 탄생한 87 체제의 기형성(畸形性)을 잉태하게 된다.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노태우에게 인계하겠다던 4.13 호헌조치를 전국적 항쟁을 통해 좌절시키고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정작 선거에서 12.12 쿠데타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노태우가 당선됨으로써 민주화는 미완의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축적체제는 발전국가 축적체제에서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로 착실히 이행해 갔다. 국가의 절대적 지배하에 있던 시중 은행들의 민간 이양, 자본시장 개방,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폐지와 같은 국가주도 산업화의 대표적 사업들의 변화가 노태우-김영삼 집권기에 이루어졌다. 취약한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로부터의 보호는 제대로 시도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에서 자본에 대한 규제 약화는 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며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더욱 맹렬히 강화했다.
반면, 정치영역은 여전히 민주/반민주 지형을 유지함으로써 신자유주의로의 이행 속에 경제적 착취에 신음하는 민중들의 실재 삶과는 점점 더 괴리되어갔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당의 집권은 정치영역에서 꽤나 소란스러운 변화를 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민주당 정권하에서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과 같은 노동 유연화 법안들이 통과되었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 양극화, 불안정 노동의 확대, 노동권의 약화는 일관되게 심화되었다.
민주화 이전, 군사독재의 타도는 더는 작동하지 않는 낡은 발전국가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제였고 따라서 ‘민주화’라는 정치 의제는 체제이행을 위한 적극적인 정치 행동일 수 있었지만, 87체제 하에서 민주-반민주의 정치지형은 신자유주의라는 체제 모순과 괴리된 채 작동하게 된다.
한마디로, 87체제란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와 민주-반민주 구도의 낡은 정치지형의 결합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이 체제에서 정치는 체제의 갈등을 드러내고 해소하는 공간이 아니라 왜곡하고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87체제의 현주소 1 : 사실상 양당제로 작동하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87년 6월 혁명은 부르주아 시민혁명의 성격을 띠었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7·8·9 노동자 대투쟁은 해방 후 분단 과정을 통해 절멸되었던 노동자 계급 운동과 노동 정치의 맹아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이후 90년 전노협의 결성과 95년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노동자조직의 확대에 힘입어 기형적인 한국 정치지형에서 노동 정치를 실현하려는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노선”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 운동이 지속되었고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고 2004년에 2명의 지역구 의원과 8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키며 마침내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서 진보정치는 한국 정치의 제3의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87체제의 낡은 정치지형을 새롭게 변화시켜내리라는 기대와 달리 진보정당은 제도권에 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위축과 위기는 87체제의 기형성이 진보정치의 안팎에서 그 기반을 침식한 결과였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로 대표되는 87체제의 제도적 여건 자체가 제3정당이 자리를 잡기에는 매우 불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의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의 선거에서 제3당 후보는 양자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하라는 “비판적 지지”의 사퇴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고 정당득표율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의 비례대표 의석 배분도 진보정당이 확장하는데 큰 제도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 여건은 진보정당의 확장을 방해할 뿐 아니라,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으로 대표되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체제의 갈등을 정치화하는데 완전히 부적절한데도 두 보수정당이 적대적 상호의존을 통해 이러한 정치 구도를 유지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87체제의 현주소 2 : 87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진보정치
진보정치 내부의 문제점도 있다. 진보정치의 내부 정치지형 자체가 87체제의 산물로써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낡은 체제의 문제를 중첩하여 포괄하고 있다.
80년대 운동권의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은 흔히 NL/PD로 표현되는 낡은 세계관에 기초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내부전선은 그대로 진보정당 안으로 유입·유지되어 왔다. 분단모순을 한국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이해하고 민주정부 수립을 통한 남·북 통일을 현 체제로부터 이행해 지향해야 할 대안적 미래라 생각하는 NL적 사고는 86세대라 불리는 80년대 운동권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세계관이다.
이들에게 반민주-반통일 세력과의 투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들에게 진보정당의 역할은 민주(당) 정부를 견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들은 선거 시기에는 언제나 “비판적 지지”로 민주당에 부역하는 내부자로 기능하고 있다.
그 결과 87체제를 극복하는 정치적 주체여야 할 진보정당은 87체제의 기형성에 포획되어 87체제의 낡은 정치지형을 전체적으로 재생산-유지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러한 진보정당 내부 문제가 최초로 대외적으로까지 폭발한 것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건을 통해서였다. 소위 ‘일심회 사건’은 NL 내부의 기형적인 한 그룹의 문제였지만, 여기에는 87체제에 포획된 진보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반영되어 있었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종북성향의 그룹을 배제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고, 한국사회의 왜곡된 진보정치 노선을 어떻게 새롭게 확립하느냐의 문제였다. 민주노동당 평등파는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치 노선을 모색했지만, 대통령 제도와 소선거구제라는 대외적 어려움으로 인해 생존에 허덕여야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평등파의 주요그룹들은 다시 민주노동당과의 재합당(통합 진보당)→정의당으로의 재분당을 거치며 또다시 종북주의와 결별하였지만,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문제는 단순히 진보진영 일부 그룹의 기형성에 기인하지 않았고, 87체제의 기형적 정치 구도에 진보정치 자체가 포획되어 있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 종북주의 그룹과의 반복적인 결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의 정의당이 같은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사태’ 때 정의당의 침몰이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진보를 자임하던 한 지식인 출신 관료의 위선에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을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 권력의 반동적 도발로 이해하고 입법과 행정 모든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 정권이 촛불을 동원해 항쟁적으로 이에 대응하려 했던 그 엇나가고 과잉된 체제 인식이 사태의 본질이었다.
이들은 행정적으로 검찰 권력을 분할해 제어하는 것을 분단 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주 정부의 시급하고 주요한 과제로 이해했다. 이들은 검찰의 저항을 민중적 항쟁으로 굴복시켜야 할 사안으로 바라봤지만, 불안정 노동과 자본으로부터의 과잉착취에 신음하는 노동자 민중에게 그 시급성은 결코 동의될 수 없었다. ‘조국 수호’로 표현되었던, 체제의 모순에 전혀 조응하지 못하는 과잉되고 어긋난 정치행위가 대중적으로 고립되었던 것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주-반민주”라는 87체제 정치지형을 민중들이 더는 자기 현안의 정치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의미했다.
더욱이 87 체제에서 도덕적 우위를 강조해왔던 그들의 위선이 조국을 통해 드러나며 촛불 항쟁으로 탄핵당하였던 수구정당이 부활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주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은 87체제 86정치의 낡은 사회인식과 결별하지 못한 채 내부의 민주당 부역자들에 의해 당이 휘둘려야 했다. 이렇게 낡은 87체제에 포획된 정의당의 진보정치는 대선을 치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7체제의 현주소 3 : 지금 좌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87 체제에 광범위하게 녹아있는 NL의 세계관만이 아니다. 좌파로 통칭되는 PD의 후신 그룹들 역시도 87체제의 포획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지금 진보진영은 모두 지금의 한국사회를 40년 전의 낡은 80년대 세계관에 기초해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사회는 이들의 인식보다 훨씬 더 발달해 있으며, 자본에 의한 노동자 착취의 선진성은 세계적으로도 앞서 있다.
분단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NL의 한국사회 인식이 1940년대 코민테른에 의해 제시된 식민지 해방과 봉건질서 타파를 목표로 했던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의 연장에 있다면, 한국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이해하고 독점의 강화가 식민지적 종속성을 심화한다고 보았던 PD의 인식 역시도 한국사회가 아직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 머물던 80년대에나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이들이 투쟁하던 세계는 이들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극복되었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써 발달한 자본주의 체제의 최첨단의 살인적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곳이다.
90년대 초에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목도하며 한국의 PD 좌파는 이념적으로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졌다. 그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던 강단(講壇) PD들은 자기 이념에 대한 아무런 반성과 성찰 없이 서구 포스트주의들의 수입상으로 하루아침에 변신했고, 활동가들에게 “노동 중심성”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는 그저 “반자주파”임을 표명하는 내용 없는 명패에 불과했다.
87 체제 정치가 보수와 수구 간의 적대적 공생 관계에 기초해 작동한다면, 자주-반자주의 진보정치 지형은 이러한 87 체제의 보조적인 시스템으로 기능할 뿐이었다. 이미 오래전 정체성을 상실한 좌파는 포스트 담론들 속에서 생태, 여성과 같은 몇 가지 의미 있는 주제들을 건져냈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생태적 지속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안 체제의 주체를 구성할 수는 없으며,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에 기반을 둔 극우 선동정치에 대한 저항을 조직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체제의 이행을 견인할 수는 없다.
지금의 진보정치에 생태와 여성이 과잉되었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체제이행의 내용으로 조직해갈 자본주의 체제 저항의 주체 구성과 새로운 대안 체제에 대한 구상이 지금 좌파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후퇴의 노동운동-파산의 진보정치, 노동정치로서의 진보정치를 다시 시작하자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현장 노동운동의 심각한 퇴조다. 신자유주의적 산업구조 개편과 노동의 파편화에 맞서 민주노조운동은 지난 20여 년 간 사업장 중심의 단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이끌어왔지만, 산별로의 조직의 집중화와 중앙화는 현장 조직화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중소단위 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조직화는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위주의 대단위 사업장 노조들의 조합중심적인 활동은 연대를 통한 계급적 집단화를 후퇴시켰다.
민주노총의 조직력에 기초해 출발했던 민주노동당은 분당을 겪으며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의 상시적 연대와 결합을 상실했고 여력 개로 산개한 진보정당들은 스스로 근거할 수 있는 노동자조직과 기초단위를 잃은 체 정파 연합에 의해 유지되거나 정파 조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진보당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언제라도 민주당 부역질에 스탠바이 중이고,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이라는 정책 하나를 모든 이념과 전략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믿으며 흑화되었으며, (사회변혁노동자당과 합당한) 노동당은 내용 없는 사회주의라는 슬로건 하나를 낡은 깃대에 매단 채 자족하고 있다.
진보정당 운동은 지금. 명백히. 파산했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낡은 체제의 종말이 우리 안의 낡음조차 함께 쓸어내고 있을 뿐이다. 87체제의 낡은 정파적 골간에 기초한 진보정당이 퇴조하는 자리에 진정한 진보정당운동의 씨앗을 뿌릴 때다. 지역으로의 하방(下放)은 후퇴가 아니라 근본으로의 회귀다. 노동정치로서의 진보정치는 노동자의 기초조직을 세우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자는 한순간도 계급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계급으로 조직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