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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왼쪽날개 Aug 04. 2022

'권모술수' 권민우를 위한 변명

"평등"이 아니라 "공정"을 요구하는 경쟁사회의 초상


다음학기 수업용 PPT도 만들어 놨는데...

내 소중한 교육기자재 권민우가 11화에서 "권모술수 권민우"로, 그냥 평면적인 악역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가 빌런이 아니라 개연성 가득한 입체적 인물로 계속 묘사되길 바랬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이 그가 차지하는 극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어떤 구조적 지점에 있음을 이 드라마가 권민우를 통해 집요하게 보여주길 기대했다.



위에 나온 권민우의 대사에는 일반인과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고, 어떻게 서로 관계하는지가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 

모두는 "경쟁관계"에 놓여있다. 

그리고 경쟁은 자본주의가 형성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계의 방식이다.


시장 교환은 서로 다른 상품들을 화폐라는 동일한 기준으로 환원하는 시스템이다. 서로 전혀 다른 쓰임의 물건들이 화폐에 의해 가격이라는 동일한 기준으로 '추상'되고 그로 인해 서로를 교환하는 비율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경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작동한다.


권민우가 생각하는 경쟁에서 "공정"은 그가 누차례 우영우에게 부여하길 요구했던 "패널티"를 통해 작동한다. 권민우는 소수자에게 당연히 주어져야하는 사회적 환경을 나와 그가 평등하게 관계하기 위한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경쟁에서 소수자의 핸디캡을 보완하는 장치이자 규칙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소수자가 나보다 이미 앞서 있다면 그 보완 장치와 규칙은 나를 역차별하는, 나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패널티'가 된다. 


권민우의 사고에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평범한 청년들이 지닐 수 밖에 없는 보편성과 일반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평범함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대통령을 "진보"라고 믿었던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무엇에 대한 기회이며, 과정이고, 결과인가? 경쟁이다. 


삶의 모든 것을 경쟁 위에 몰아넣고 상대를 배려하는 법과 평등하게 관계하며 함께 사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고 사고할 수 있나. 우리사회의 잰더 갈등과 소수자 혐오는 교육받지 못했고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체제 안에서 다른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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