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사람은 듣기의 레벨이 다르다
최근 '일 잘하는 사람의 대화법'이라는 주제에 대한 기업교육과 원고 의뢰가 부쩍 늘고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강의를 하면서 직장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저마다 다른 소통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누군가는 상사에게 보고할 때마다 말실수할까 봐 두렵고, 누군가는 늘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느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누군가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엉뚱하게 일하는 부하직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다들 궁금해한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지.
먼저, 일 못하는 사람의 대화법을 알아보자. 일 못하는 사람은 안 듣고, 질문을 하지 않고, 횡설수설(또는 주절주절, 웅얼웅얼)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앞의 3가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잘 듣고, 질문도 하고, 횡설수설하지 않는다,라고. 그렇다면 마지막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일못러라니,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닌 듣는 상대방을 위해서 말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말, 때로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말은 언제나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된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할까?
일 잘하는 사람의 대화법 특징 4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2.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하고
3.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전달하면서
4.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일 잘하는 사람은 말할 때 상대방을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주목할 것이 첫 번째 특징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잘 듣는다. 잘 듣지 않으면서 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간혹 실무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관찰력이나 사고력이 뛰어나서 듣기 전에 다 파악하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천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듣기에도 레벨이 있다. 듣기 레벨이 1인 사람은 상대방이 말할 때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듣는 척 하지만 나중에 딴소리한다. 듣기 레벨이 2인 사람은 그냥 듣는다. 상대방의 말에 빠르게 대답하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듣기 레벨 1과 2인 사람들은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고 나서 “그런 말씀인 줄 몰랐습니다”라며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듣기 레벨 3은 해결을 위해 듣는다. 말을 듣고 난 후에 내놓는 해결 방안이 합리적이라면 좋은 대화가 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머무르는 단계가 듣기 레벨 3이다. 듣기 레벨 4는 마음을 다해 듣는다. 그야말로 최고 레벨의 듣기 단계이다. 말에 담긴 정확한 뜻을 파악하고, 말로 다 표현하지 않는 숨은 생각과 마음까지도 읽어 내는 초고수이다. 이 단계는 흔치 않기 때문에 듣기가 ‘능력’이 된다.
일을 확실하게 잘하는 사람은 듣기의 레벨이 4이다. 최고 레벨의 듣기를 하는 사람은 경력이나 지위와는 무관하다. 똑 부러지게 일하는 신입,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실무자, 존경받는 리더가 이에 해당한다. 잘 듣기만 하면 일잘러가 될까?
듣기만 잘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잘 들으면 최소한 ‘사고’는 치지 않는다. 엉뚱한 결과물을 가지고 와서 상사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잘 듣기만 해서는 상위 5% 안에 드는 일잘러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리며 휘청거린다.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번아웃이 온다. 그렇게 되기 전에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 기업에서 강의가 끝난 후 한 명이 다가와 조용히 질문했다. 자신이 체크한 설득유형 자가진단지를 보여주면서 자신은 어떤 유형인지 물어봤다. (설득 유형 자가진단지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총 30개 질문에 대해 '자주 그렇다, 보통이다, 거의 그렇지 않다'는 항목에 답을 하고, 자신이 주로 어떤 유형으로 설득하는지을 알아보는 방식이다. '자주 그렇다'에 체크가 많이 되어 있는 항목에 따라 설득 유형을 분석할 수 있다.) 그는 2개 항목에 대해서만 '자주 그렇다'에 체크가 되어 있고 대부분의 항목이 '보통이다'와 '거의 그렇지 않다'에 체크되어 있었다. 그에게 물어봤다.
"설득을 잘 안 하시는 편이세요?"
"네, 거의 안 합니다. 대부분 상대방의 의견에 따릅니다."
목소리는 조용했고, 표정은 부끄러운 듯 수줍었다.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자로 보였는데 설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참 안타까웠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설득이나 협상에 취약한 사람들이 많다. 설득이나 협상을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혹시, 나는 설득을 하지 않는데 별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상대방을 설득하며 살았거나 설득해 보지 않아서 자신이 얼마나 불합리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설득하지 않아도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전생에 부처님과 절친이었던 관계로 아무런 소유 없이도 편안함을 느끼는 성품이거나 태어나 보니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수저가 입에 물려 있어서 굳이 설득이 필요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인생은 설득을 하지 않고 성공하거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말을 못 하는 인생으로 30년 넘게 살았다. 설득이나 협상 스킬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니거나 요령 없이 덤볐다가 처참하게 패데기 쳐지며 직장 생활을 10년 했다. 막상 내가 해야 할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니 인생을 주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대화를 주도하지 못하면 일도, 관계도, 인생도 주도하지 못한다. 그렇게 끌려 다니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건 서글프지 않을까.
말을 많이 하거나 유창하게 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다. 잘 듣고, 적절하게 질문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으면 모든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 그것이 어른의 자기주도 대화법이고, 일 잘하는 사람의 대화법이다.
듣기가 3 레벨이라면 4 레벨로 끌어올리는 훈련을 해야 하고, 질문을 잘 못한다면 일상에서부터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고 질문을 똑똑하게 잘하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질문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간단구생의 법칙'에 맞춰서 상대방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넣듯이 표현하는 화법을 연습해야 한다.
매일 AI개발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분초를 다투며 몰려오는 AI가 언제 우리의 자리를 꿰찰지 모를 일이다. 소통의 기술이 없다면 AI에게 내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당장 일 잘하는 사람의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소통의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고 고수가 될 수 있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오르기를 바란다.
P.S. 브런치북 <일 잘하는 사람의 자기주도 대화법>에서 더 많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