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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재용 Feb 14. 2023

억울할수록  입을 다물어야 한다니..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호인이 피의자를 대신해서 진술을 할 수는 없다. 수사관의 허락을 받아서 의견을 보태는 정도다. 그리고 조사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후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조사를 대신  받아 줄 수는 없다.


변호사 입장에서 조사 참여는 참 힘든 일이다. 우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무리 간단한 사건이라도 두세 시간은 걸리고 복잡한 사건은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 조사에 참여해 있는 동안에는 다른 업무는 올스톱 된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의뢰인이 잘못된 진술을 하는 걸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의뢰인이 몰락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은 고문에 가깝다.


차라리 의뢰인이 수사관의 질문을 이해 못 하고 엉뚱한 대답을 반복하고 있으면 오히려 끼어들기가 좋다. "수사관님 지금 피의자가 질문을 이해 못 하시는 거 같아서요, 지금 수사관님이 여쭤보시는 건 이런 이런 건데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 말씀이시죠?" 하면서 적절한 대답을 유도한다.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끼어드는 것이다. 이 정도 하면 의뢰인도 정신을 차리고 "맞다 내가 하려던 대답이 그거였다"라고 좋은 진술을 남긴다.


문제는 의뢰인이 거침없고 확신에 찬 어조로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을 때다. 조리 있게 말을 잘하고 있는데 "잠깐만요!"하고 말을 못 하게 막을 수도 없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라고 끼어들 수도 없다. 이걸 나중에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조사가 끝난 후 조서를 열람하면서 수정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줄줄 이야기해 놓으면 나중에 조서 열람시간에 수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불리한 진술은 꼬리에 꼬리를 고 불리한 세계를 낳고 또 낳기 때문이다. 조서를 열람할 때에는 이미 불리한 세계가 완성되어 있는데 몇 마디를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사관들은 사건에 대해 잘 알 수가 없다.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사자 본인은 사건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수사관이 무심코 던진 질문에도 10가지 100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앞뒤가 안 맞아 보이거나 이상한 부분들이 발생한다.


수사관이 묻는 질문에는 네, 아니오로만 답해도 충분하다. 설명이 필요한 질문이라도 확신이 있더라도 최대한 짧게 대답하는 것이 좋다. 애매한 것은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편이 좋다. 그런 재미없는 대답에 답답한 건 수사관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혹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많은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모순에 빠지게 되고 그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또 불필요한 진술을 추가하게 되고, 수사관에게 점점 더 많은 힌트를 주게 된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몇 마디 이야기로 다 설명할 수가 없고,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100마디를 잘했어도 단 한마디 때문에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 꼬투리를 잡힐 확률을 줄이려면? 말 자체를 줄이는 것이 좋다. 억울한 사람이든, 변명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말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말을 하는 것보다는 줄이는 게 유리하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피의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자리도 변명을 들어주는 자리도 아니다. 수사기관이 세워놓은 논리, 수사기관이 설정한 덫에 빠지느냐 마느냐를 시험하는 게임에 가깝다. 말이 많으면 좋을 게 없다. 


억울할수록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그래도 진정 억울하다면 참고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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