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든일은잘될꺼야 Dec 17. 2024

모던 건축과 내면의 서사

콜럼버스


코고나다(Kogonada)의 영화 '콜럼버스'(Columbus)는 건축과 삶, 그리고 인간관계의 깊이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차분하고 섬세한 시선을 통해 공간과 감정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작은 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그곳의 독창적인 모던 건축물들을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으로 삼는다.

영화는 각기 다른 이유로 콜럼버스에 머물게 된 두 인물, 진(존 조)과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만남과 그들의 교감 과정을 따라간다. 진은 건축학자로 이름난 아버지의 병환으로 도시에 머물게 되지만, 정작 아버지와 건축 모두에 큰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케이시는 모던 건축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지만,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책임감 때문에 도시를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얽매인 감정을 직면하며, 성장의 실마리를 찾는다.


모던 건축: 서사의 심장

콜럼버스의 모던 건축물들은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예컨대, 엘리엘 사리넨(Eliel Saarinen)의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는 진과 케이시가 건축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며 서로의 관점을 나누는 장면에 등장한다. 이 공간은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 구조를 넘어 영적인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이오 밍 페이(I. M. Pei)의 클리프턴 웰터빌트 학교는 케이시에게 창의적 열망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작용하며 그녀가 자신만의 꿈을 상상하게 만든다.

코고나다는 정적인 롱 테이크와 균형 잡힌 화면 구성을 통해 건축물의 조형미와 구조적 정교함을 강조한다. 건축의 질서정연함과 대칭성은 인물들의 내적 불안과 갈등을 더욱 부각시키며, 이들을 감싸는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건축이 얼마나 강렬한 서사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건축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심리적, 정서적 공간으로 확장되는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특별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관계와 공간: 감독의 의도

영화는 공간과 관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두 인물의 교차된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코고나다는 모던 건축의 질서와 균형을 통해 진과 케이시가 느끼는 내면의 불안을 강조한다. 특히, 건축물이 견고하고 완벽한 구조를 자랑하는 반면, 두 인물은 스스로의 삶에서 균형을 찾지 못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대조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다 깊이 탐구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영화 속 대화와 침묵은 부드러운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관객은 자연스럽게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된다. 케이시가 자신의 감정을 건축물을 통해 설명하거나, 진이 케이시의 열정을 경청하며 변화하는 모습은 영화의 정적인 톤 속에서 서서히 깊이를 더한다. 감독은 인물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건축물이 단순히 관조의 대상이 아닌 치유와 이해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과 케이시: 교차되는 여정

진과 케이시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콜럼버스라는 공간 안에서 만나 서로를 통해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다. 진은 자신이 오랜 시간 억눌렀던 감정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고, 케이시는 자신을 옭아매던 책임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용기를 얻는다. 이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구원이나 지도가 아닌, 서로의 삶을 비춰보며 스스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상호적인 과정으로 그려진다.

특히 진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며 감정적 화해의 태도를 보이는 장면은 그의 내적 성장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반대로, 케이시가 자신의 열정을 좇아 도시를 떠나는 결심은 그녀가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이들의 교차된 여정은 관객들에게 자신을 가둬왔던 감정적 구속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건축과 감정의 시적 조화

'콜럼버스'는 건축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정서와 교차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승화시킨다. 코고나다는 이 영화에서 공간과 감정이 어떻게 얽히고, 이를 통해 인간이 삶에서 균형과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모던 건축의 정돈된 아름다움과 두 인물의 복잡한 감정이 만나며 탄생하는 시적인 서사는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결국, '콜럼버스'는 삶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공간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자 우리의 성장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부드럽지만 강렬한 메시지로, 우리 주변의 공간과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