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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 Nov 03. 2023

여보. 우리도 무인도 하나 살까?

꿈꾸는 무인도

동해에도 무인도가 있습니다.   

   

서해와 남해에는 썰물이 되면 배를 타지 않고도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무인도들이 많이 있지만, 동해는 수심이 깊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지 않아 그런 무인도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동해에도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무인도들이 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런 무인도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고성 통일전망대 가는 길에도 그런 무인도가 있습니다. 눈 밝은 사람들이 그런 목 좋은 자리를 얌전히 내버려 두었을 리 없습니다. 일찌감치 콘도 하나를 세워놓았습니다. 

     

객실에서 바라보면 망망대해 위에 오롯이 떠 있는 무인도 때문에 오션뷰가 더욱 일품입니다. 더 매력적인 사실은 콘도에서 무인도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군사통제구역으로 묶여있어 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총 맞아 죽기로 작정하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무인도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상상력이 작동되어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들이 떠오릅니다. “로빈손 크루소”나 “십오 소년 표류기” 같은 명작들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 


 

벌써 한 삼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아내와 동해 바닷길을 여행하다가 석양 무렵 우연히 못 보던 무인도를 발견했습니다.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무인도 풍경이 너무나 신비롭게 보였습니다.   

    

물끄러미 무인도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문득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저 무인도에 아이들이 표류해 들어간다면? 그리고 저 섬에 읽을거리 볼거리라곤 오직 성경책 한 권밖에 없다면?    

 

그러면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꿈꾸는 무인도”라는 장편 모험만화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 만화가 ‘새 벗’이란 잡지에 오 년 동안 연재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모험만화였습니다.

      

아이디어는 동해에서 얻었지만, 무대는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미크로네시아 군도로 정했습니다. 만화 주인공도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열두 명의 소년 소녀들로 정했습니다.  

    

필리핀에서 해양탐사 활동을 하던 해양소년단 일행이 태풍을 만나 미크로네시아 군도의 한 무인도로 표류해 들어갑니다. 그 무인도는 수많은 미스터리로 가득한 신비의 섬입니다. 

     

아이들이 무인도에서 폐허가 된 교회를 발견합니다. 또 교회 안에서 성경책 한 권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성경책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섬의 수수께끼들을 하나하나 추적해가기 시작합니다.  

    

수수께끼를 밝혀내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아이들이 변해갑니다. 아이들이 성경 말씀 그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성경은 그 섬의 헌법이 됩니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소년 소녀들의 수많은 갈등과 다툼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해결되어 갑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성숙해지고 그 섬은 마침내 소년 소녀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됩니다.    

  

오 년이란 긴긴 연재 기간 내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잡지가 배달되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이 만화부터 찾아 읽는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로부터 무수히 팬레터도 받았습니다.  

    

연재가 끝나자 국민일보에서 다섯 권짜리 만화 단행본 전집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주제가 흥미롭다고 만화영화 제작까지 추진된 적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무렵 터진 I.M.F 때문에 무산되었습니다. 


그 후로 이십 수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내 인생엔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태풍 같은 환란을 겪으며 아이들이 무인도로 표류해 들어가듯 신학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십이 훌쩍 넘은 다 늙은 나이에 목사가 되어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불과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목회직에서 은퇴하고 은퇴 목사가 되어버렸습니다. 



***


     

아내와 함께 또 동해 바닷가를 찾아왔습니다. 연애 시절에도, 결혼 후에도, 사십여 년이 훨씬 더 넘는 긴긴 세월 동안 무수히 오고 또 찾아온 바닷가지만 바다는 올 때마다 늘 새롭습니다.  

    

작년엔 아내도 아팠고 사이좋게 나도 아팠습니다. 아이들은 아프면 큰다는데 우리는 아프니까 폭삭 늙어버렸습니다. 아내는 더 주름살이 늘어났고 나는 더 머리가 허옇게 세어버렸습니다.   

   

비록 머리는 허옇게 세어버렸어도 내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오늘도 나는 저 무인도를 바라보며 피터팬처럼 꿈을 꿉니다.     

 

요새 무인도 매매나 인도 임대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사람에 치어 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사람 없는 무인도를 도피처 삼고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무인도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여보. 우리도 무인도 하나 살까? 요새 무인도 사업이 뜨고 있다는데 무인도 하면 내가 선구자 아냐? 싼 무인도 하나 사서 옛날에 그린 만화처럼 무인도 프로젝트를 구현해보는 거야.”  

   

“…………”      


“말 안 듣는 아이 새끼들을 몽땅 붙잡아와서 저 무인도에 처박아 넣는 거야. 그리고 성경 한 권 주고 수수께끼 풀게 하는 거야. 그 수수께끼를 다 풀어야 무인도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거야. 와! 이거 잘만 만들면 완전 대박 나겠다!”   

  

가만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아내가 이 웅대한 프로젝트를 단 두 글자로 완성 시켜 버립니다.      


“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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