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팬 Oct 22. 2024

요양원에선 낙엽도 설교를 합니다.

내가 육십 년만 젊었어도 목사님하고 결혼했을 거야.

요양원 들어갈 때 낙엽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마른 낙엽들이 우수수 요양원 주차장 바닥에 떨어져 내렸습니다내 발아래 나뒹구는 낙엽 하나를 주워들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아주 가볍게 쥐었을 뿐인데도 바짝 말라붙은 잎사귀 한쪽 귀퉁이가 벌써 힘없이 바스러져 버렸습니다물끄러미 낙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참 허무하구나   

  

그리고 너무나 약하구나

     

이 낙엽도 한때는 잎이 푸르고 싱싱하고 아름다웠을 것입니다가을이 되어 고운 색깔의 단풍으로 남아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습니다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땅바닥을 굴러다니며 청소하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구박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누구나 다 늙고 병들면 허무해집니다그리고 약해집니다    

 

점점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지면서 대소변 가리는 일조차 힘겨워지면 마침내 가족들에게까지 미움받는 구박 덩어리가 되어버립니다 

    

슬픈 마음으로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떠올리며 현관문을 열고 요양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베드로전서 1장 24절 25    


      

     


     

안녕하세요목사님.”   

  

오늘도 넓은 로비를 가득 채운 휠체어의 행렬이 우리 부부를 맞이합니다마른 낙엽 같은 노인들이 여기저기서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사님보고 싶었어요.”    

 

일주일 내내 목사님만 기다렸어요.”  

   

목사님이리 와서 내 손도 한번 잡아줘 봐요.”     


노인들의 목소리에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운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한 분 한 분 노인들의 손 잡고 인사하면서 지난주 세상을 떠난 어르신이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봅니다코에 고무호스를 꽂은 채 입만 벙긋벙긋하며 찬송가를 따라부르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요양원에선 일상이지만 함께 예배드리던 분이 떠나고 없는 빈자리를 볼 때마다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만은 아직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목회 은퇴한 후 매주 이곳 요양원에 들어와 주일예배를 인도하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큰 규모의 요양원이지만 실내에는 이 많은 노인들이 한자리에 다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주로 로비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때로는 실외에서 예배를 드리곤 합니다

     

실외에는 앰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육성으로 설교를 해야 합니다청력이 약하고 치매기까지 있는 노인들에게 마이크 없이 오랜 시간 큰소리로 설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양원에선 아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아무도 다음 주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어떤 노인에겐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릅니다오늘 내가 전해드리는 이 말씀이 그 노인에겐 생을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듣게 되는 설교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설교마다 오직 복음만을 전하고 오직 천국 소망만 심어줍니다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에게 천국 복음 외의 모든 설교는 다 쓸데없는 군더더기에 불과합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면 선선한 날씨에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습니다그래도 목회하던 때와는 또 다른 힘이 내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듯 솟구쳐나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요양원 예배는 절대 그냥 쉽게 드려질 수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많은 요양보호사 분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하시거나 심지어 혼자 힘으로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노인들을 침대에서 힘들게 일으켜 세우고 휠체어에 앉힌 채 엘리베이터를 태워 예배의 자리까지 모시고 왔다가 다시 모시고 돌아가야 하는 일은 정말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 것입니다 

    

특히 이곳 요양원은 예배시간이 요양보호사들의 휴식시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그분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휴식시간을 희생해야만 노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그래도 거의 모든 요양보호사 분들이 묵묵히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노인들의 예배를 돕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선교하고 돌아오신 선교사님의 사모님 한 분도 이곳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사모님의 남편 선교사님은 중국의 명문대학인 장춘중의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탁월한 한의사입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해버린 환자들을 무수히 살려낸 그 뛰어난 의술과 침술로 얼마든지 편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지만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중국 오지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며 복음을 전하는 의료 선교에 평생을 헌신하신 분입니다  

   

설교하러 자주 요양원에 드나들게 되면서 사모님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볼 기회가 많아졌습니다사모님이 노인들 한 분 한 분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돌보시는 모습을 보면 친부모라도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자식이 과연 얼마나 될까절로 마음에 깊은 감동이 일어납니다     


사모님의 돌봄 속에 평안히 임종을 맞이한 노인들도 부지기수입니다사모님이 불러주는 찬송 소리를 들으며 잠들 듯 고요하게 눈을 감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느 요양원이든 한밤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노인들이 많습니다깊은 밤 쓸쓸히 임종을 맞이하는 노인들에겐 바로 곁에서 그 두렵고 무서운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주는 요양보호사란 존재가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식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 사모님에게 요양보호사는 그냥 직업이 아닙니다사모님이 일하시는 요양원도 그냥 직장이 아닙니다직업이 아니고 사명입니다직장이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지입니다  

   

사모님을 볼 때마다 목사보다 열 배 백 배 훌륭한 요양보호사란 생각이 듭니다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기를 희생하며 노인들을 섬기는 사모님을 보면 목사인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목사님왜 이렇게 예뻐아유무슨 목사님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내가 육십 년만 젊었어도 목사님 만났을 거야나 목사님하고 하고 결혼했을 거야.”  

   

요양원도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그래서 당연히 요양원의 노인들도 사랑을 합니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홀로 요양원에 들어오신 분들이 대부분인지라 곱게 늙은 할머니를 짝사랑하는 할아버지도 계십니다반대로 마음에 드는 할아버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자신을 친절하게 돌보아주는 요양보호사에게 연정을 품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요양원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에게 사랑을 느끼는 할머니들도 계십니다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인사를 나눌 때면 내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하는 할머니들 때문에 애를 먹을 때가 많습니다 

    

더러는 내 나이를 묻는 노인들도 계십니다

  

목사님몇 살이야?”  

    

아유이제 겨우 그것밖에 안 되었어아유부럽다부러워.”     


나도 어느덧 칠십 대가 되었는데 겨우 그것밖에 안 되었냐는 소리를 듣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는 합니다만 구십 넘은 노인들에겐 내 나이도 한참 젊은 나이처럼 느껴지시는 것 같습니다하긴 나도 막 사오십 대에 접어든 분들을 보면 한참 좋은 나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드니 내 나이를 부러워하는 노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겉보기엔 다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깜짝 놀랄만한 이력을 가진 노인들도 많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교수님도 있고 빌딩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재력가도 있습니다교장을 지낸 분도 있고 교사 출신의 노인들도 다수입니다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기억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설립한 목사님의 오른팔 같았던 동역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양원에선 지난날 무슨 일을 했었고 어떤 자리에 앉았었으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있느냐 하는 것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요양원에서 가장 크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노인은 가족들이 자주 면회 오는 노인입니다자녀들이 자주 찾아오는 노인입니다.    

    

요양원에선 그런 노인들이 가장 높은 노인이고 가장 존중받는 노인입니다요양원 노인들의 등급은 오로지 그것 하나로만 가려집니다그래서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모든 요양원의 노인들이 목이 빠지도록 오매불망 자녀들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축도를 하고 한 분 한 분 머리에 손 얹고 안수기도를 해준 후에야 오늘의 예배를 마칩니다   

  

백발노인들의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할 때마다 예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세월의 무게를 느끼곤 합니다그 험하고 모진 세월을 살아오시며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을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편 10)     


     


          

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요양원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찬바람이 불어오자 한 무더기의 낙엽이 우수수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그러자 높은 나무 위의 단풍잎이 보였습니다가을 햇살에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땅에 떨어지는 낙엽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저 나무 위엔 아직도 저만큼이나 많은 단풍잎이 붙어있었구나     


울긋불긋 붉은색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잎이 아름답습니다가을마다 무심코 보게 되는 단풍이지만 저 고운 단풍 색깔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나뭇잎 속엔 붉은색을 띠는 안토니안이란 색소와 노란색을 띠는 카로티노이드란 색소가 들어 있습니다그런 색소들이 여름철엔 엽록소에 가려져 보이지 않다가 가을이 오면 확연히 그 색깔을 드러내게 됩니다 

    

나뭇잎이 푸른색을 띠게 만들어주는 성분이 엽록소입니다엽록소는 햇빛을 에너지원인 당으로 바꿔 줄기로 보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가을이 깊어가고 기온이 점점 더 떨어지면 갑작스럽게 찾아온 환경의 변화로 인해 나무들이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그 고통 때문에 당의 이동 속도도 현저히 느려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나무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시작합니다아직 조금 남아있는 당 성분을 붉은 색소인 안토시안과 노란 색소인 카르시노이드로 바쁘게 전환해가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칩니다우리가 감탄하는 곱고 현란한 단풍 색깔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날씨가 아침저녁으로 변덕스러우면 변덕스러워질수록그만큼 단풍 색깔은 더 선명해지고 더 찬란해지고 더욱더 아름다워집니다이것이 바로 고통의 미학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단풍잎 같습니다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들에겐 단풍잎의 모습이 보입니다

     

고통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극복해보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에선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인생의 숭고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집니다

     

이곳 요양원의 주름지고 구겨진 백발노인들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사납게 파도치는 격랑의 바다를 헤엄쳐온 저 노인들의 얼굴은 숭고합니다   

  

요양원 앞마당 나무 위에서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나 자신도 돌아봅니다

     

어느덧 내 인생도 노년으로 접어들었습니다은퇴 후 요양원에서 설교하면서 인생을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설교자로 이곳에 왔지만 내가 노인들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노인들이 내게 설교하고 있습니다저 노인들의 눈부신 백발이구겨지고 주름진 얼굴이휠체어에 앉은 둥글게 휘어버린 어깨들이날마다 내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이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제껏 어떤 인생을 살았니언젠가는 너도 내 모습처럼 될 텐데과연 너는 지금 잘살고 있니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니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고 있니  

   

설교하기 위해 요양원을 드나들 때마다 땅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울긋불긋 붉은색 노란색 흑갈색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저 단풍잎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네 인생은 지금 과연 어떤 색깔이니과연 네 인생은 저 나뭇잎만큼이나 이름다우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