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봄 Jul 26. 2024

"정신 차려요!"라고 정신과 의사가 외침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면  뒤편에 고전문학으로 빼곡한 책장을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푸쉬킨 등등의 책들과 두꺼운 정신의학  관련 도서가 즐비했다. 더불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잔잔한 선율이  의사와 꽃님이를 감싼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꽃님이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 헛기침을 해본다.


"어서 오세요. 꽃님씨 잘 지내셨어요?"


"네.. 흠..."


"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네... 몇 가지 적어  왔는데."


"어디 봐요."


의사는 자기가 한 번  훑어보겠다고 꽃님이가 가져온 쪽지를 건네 달라고 한다.


"... 여기요."


꽃님이는 선뜻 그 종이를 건넨다.


"뭐야.. 뭐 많이 적어 오셨네요... 이 중에서 오늘은 가지만 얘기하죠."


의사는 그 종이를 그녀에게 도로 준다. 


"선생님... 저기, 저는요. 무단결근을 해도 이상하게 하나도 안 미안해요. 사장님한테도, 같이 일하는 직원한테도요..."


의사는 흠칫 놀라는 듯이 보였지만 이내  얼굴 근육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간다.


"꽃님씨, 이런 경우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해요. 생각을 깊이 하세요. 제 경우에 만약 제 병원 간호사 선생님                      무단결근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발생합니다. 제가 환자 접수도 하고 약도 짓고 다시 진료실로 와상담치료도 하고 아, 생각도 하기 싫어요. 저를 예시로 들었지만 꽃님씨 식당의 사장님이나 다른 직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꽃님씨가 매일 맡은 역할이 있을 텐데 결근, 그것도 무단결근을 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연락도 없이 결근을 밥 먹듯이 한다는 건 문제가 있어요. 고쳐야 돼요."


의사는 긴 말을 이어가면서 간혹 꽃님이의 안색을 살핀다. 그녀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 네..."


꽃님이는 그의 설명이 반도 이해가 안 갔지만 여기서 고개를 끄덕여야 될 것 같아 계속 '네.'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하며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


", 말씀해보세요. 질문 있나?"



"네.. 저는요. 우리 사장님하고 가짜 결혼이라도 하고 싶어요. 진짜 결혼이 안되면 가짜 결혼이라도 해서 같이 살고 싶어요!"





200여 권의 빼곡한  책들과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진료실 안의 차디찬 공기를 밀어내고 있다. 의사는 음악을 듣고 있는 건지 꽃님이가 말한 것을 되새기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다시 차린다.


"... 저기... 가짜 결혼은 뭡니까?  사장님이 여자인데... 그리고 사장님은 이미 기혼자에 아이들도 있어요.. 성립 자체가 안 되는 얘기예요. 지금 꽃님씨는 그냥 사장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걸 특이하게 결혼이라고 부르는 것뿐이고요. 정신 차려요! 신차리라고요!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돼요!  여기까지 합시다. 다음 주에 또 봅시다. 조심히 가세요.  그럼 이만."


꽃님이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잘 가라'는 의사의 말에 벌 떡 일어섰다. 몸이 먼저 반응해 일어서 나오다 보니  인사도 못하고 나왔다. '그냥 좋아하는 거라고? 꽃님이는 사장과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을 뿐이다.


꽃님이가 나간 뒤 의사는 접수대 간호사에게 카톡을 보내

5분만 쉬겠다고 한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 저 환자...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아! 돌아버리겠네...'



꽃님이를 만나고 의사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는 고전문학과 클래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의사다.


작가의 이전글 대식가 시어머니의 비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