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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18. 2024

네 아버지가 쓰러졌다!

나는 시어머니와 10년간 같이 았다. 지금은 분가했지만 같이 살았을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모처럼  우리 부부가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회사와 식당일을 동시에 하면서 시간을 내어 부부가 같이 저녁을  즐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너무 바빴던 어느 ,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자 남편이 내게 엄청난 제안을 했다.


"여보, 오늘 초밥 먹고 들어가자."


"초밥? 시간이 될까?"


"집 근처에서 저녁 잠깐 먹고 들어가도 될 것 같아... 오늘은."


"... 그래."


이게 웬 횡재냐? 우리도 여느 부부들처럼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다니... 늘 시간에 쫓겨  집에서조차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하기 일쑤였는데 웬일로 초밥 식당에 가서 우아하게 저녁을  먹는단 말가?


어린아이 둘에, 시부모님에  매사에 챙길  사람이 많은 우리는 대로 된 저녁 식사를 잊은 지 오래였던 터 이런 날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다른 날보다 1시간 정도 일찍 퇴근하고 차를  몰고 집 근처로 왔다. 가격 적당한  초집으로 들어가 각자 원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서로를 향해 미소 띠었다.


"자기야, 우리 이게 몇 년 만이야? 진짜 맛있겠다... 호호호..."


"게, 오늘 하루라도 다른 생각은 잊고 맛있게 먹자고."


초밥집 내부 인테리어도 근사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좋고, 전반적으로 분위기도 근사하고, 그리고  초밥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려댔다.


"여보, 진동으로 해놓지.. 에휴..."


"아이고, 엄마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빨리 전화를 받으라고 남편에게 눈짓을 했다. '애들한테 무 문제가 생겼나?'  음이 금세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응, 엄마... 뭐라고? 뭐라고? 응, 응...  알았어!"


"무슨 일이야? 애들이 아프대?"



나는 방금 전 그 불안한 마음이 가시기도 전인데 남편의 놀란 모습에 심장이  쿵쾅쿵쾅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쓰러졌대! 그래도 애들은 밥을 먹여야 되니 치킨을 시켜달라네?"


"치킨?"


"그래. 엄마가 애들 주려고 저녁을 만들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쓰러져  밥을 못 했대. 애들 먹을 게 하나도 없대."


시아버지가 쓰러졌다고?  무슨 정신으로 초밥 식당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배달앱에 치킨을 주문하면서 우리는 차를 몰고 집 쪽으로 향했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 엄마!"


남편은 시어머니를 부르며 거실 쪽으로 신발을 벗고 뛰어 들어갔고 마침 는 주방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


"엄마! 아버지는?"


"네 아버지 방에 쓰러져 있다. 아프셔..."


" 그럼 병원에 가야지! 엄마는 뭐 하고 있어요?"


"아니, 그냥... 난..."


아니, 세상에! 시아버지가 쓰러졌다면서  시어머니는 가스레인지 위에 비를 올려놓고 뭔가를 끓이고 계셨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아니, 그냥, 저기..."


어머니는  냄비 2개 안에  다시마, 멸치를 넣고 육수를 만들고 있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저희  치킨도 시켰어요. 조금 있으면 도착해요. 아이들은 그거 먹으면  돼!"


"아니, 나는 그냥..."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남편은 이때 시아버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걱정되는 마음에 따라 들어갔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왔냐?"


아버지는 대자로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계셨다. 쓰러진 건 맞는데 식이 없거나 어디가 아파 보이지는 않고 그냥 졸린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 엄가 아버지 쓰러졌다고 전화를 했어!"


"뭬야? 뭬야? 이 여자가 노망이 났나? 조금 피곤해서 누워 있겠다고 했더니 그새 너희들한테 전화를 한 것이냐?"


"그럼 아버지 괜찮으세요?"


"괜찮아. 조금 피곤해서 누워 있을라고 한 거야."


남편은 방문을 급히 어머니에게로 향해 뛰어갔다.


"엄마! 아버지 괜찮다는데? 뭐야?"


"아니, 아까는 죽을 듯이 아프다고 러질 것 같다고 하더니 저 양반이 헛소리를 하나..."


"엄마! 지금 장난하세요? 뭐야? 이건 또 뭔  육수를 만들고 있어요? 아파 아무것도 못한다고 치킨 시켜달라고 하더니 무슨 육수를 끓이고 있어요?"


남편은 충격을 받았나 보다. 시아버지가 쓰러졌다고 해서 초밥을 먹으려고 하다가 차를 몰고 집으로 미친 사람들처럼 달려왔는데 시아버지는 그냥 조금 피곤한 것이고 몸이 아파 주방일은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시어머니는 세숫대야 만한 냄비에 다시마, 멸치 등을 넣고 육수를 우리고 있었으니...



그날 이후 시어머니가 큰일 났다고 두 분 중 한 분이 쓰러졌거나 너무 아파서 병원 가야 할 것 같다고 전화가 오면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119 전화하세요. 우리보다 빨리 도착하니까 응급조치가  더 빨라요."


이렇게 얘기하고 우리는 먹던 밥을 마저 먹고 집으로 향한다.



같이 살았던 10년간 두 분이 진짜 심각할 정도로  위급했적은 단 한 번도 었다.



"에휴, 빨리 쓰러져 있어야 되는데...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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