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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22. 2024

집에 반찬이 하나도 없다!

나는  결혼 후 첫 아이를 낳자마자 합가해 시어머니와  10년간 살았다. 같이 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늘 바빴다. 회사 일에, 식당 일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난 사실 돈보다도  '작지만 강하고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식당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해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때였다.  힘들지만  40대 중년에 늦게나마 열정을 바쳐 일해서 사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다만 건강을 조금 잃어서 지금은 예전처럼 일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 나의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일을 시작하면 휴대폰을 꺼놓는 것이었다. 업무에 관련된 것은 회사나 매장으로 전화가 오니 걱정이 없었고 집에는 시부모님과  어린 아이 둘이 있었지만 당시 베이비시터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아이들이 아프다던지, 하는 큰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전화할 것이고 남편은  매장으로 전화를 할 것이기에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어도 충분히  집에서도 나에게 연락이 가능할 것이기에 염려가 없었다. 창업 초기 3년간은 일에 집중할 시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어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별 일도 아닌 일로 전화를 너무 자주 하기 때문에  일에  방해가 돼서 전원을 꺼놓기도 했다.


잠을 잘 자서 피곤했던 어느 날,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고 있는데  매장으로 전화가 왔다. 직원이 나에게


"집이라는데요?"


'집이라고? 아기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수화기를 건네받고 "여보세요?"고 말했다


"...흑흑흑...에미야...나다."


울음 섞인 목소리는 우리 시어머니의 전매특허다. 요즘도 길을 지나가다 어떤 모르는 할머니가 울음 섞인, 짜증 섞인 소리로 전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10년간 매일 이 소리를 듣고 살았더니 나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였다.



"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가게로 전화를 다하고요?"


난 매장에서도 메뉴 개발 일을  창업 초기 3년간 매일 직접 하고 있었기에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바쁜 상황이었다.


양식, 한식, 일식, 사찰음식 등등 참고하고 알아야 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불경기였기에 메뉴를 차별화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였다.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은 경쟁이 심각할 정도로 치열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이 점에 대해서 시부모님과 늘 소통해 왔기 때문에 그분들도 나를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렇게 우시나...'


"에미야...내 말 잘 듣거라... 네가 바쁜 건 알지만... 내가 이 말은 꼭 해야 될 것 같아...너무  중요한 얘기라서... 흑흑흑..."


"어머니, 저 바빠서 조금 빨리 말씀해 주세요!"


"그래..에미야 ...집에... 반찬이 하나도 없다. 난 몸이 아파서 음식을 못 만들고... 흑흑흑... 미안하다... 이 에미가 도움이 못 돼서... 아기들도 먹을 게 없어서 우유만 먹고 있다... 흑흑흑... 미안하다... 이런.. 일로 바쁜 너에게 전화해서..."


"어머니 일단 끊어요.. 배달앱으로 뭐라도 주문할게요.!"


참고로 다시 한번 말하자면  당시 시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냉장고에 뭐가 잔뜩 있었는데 갑자기 먹을게 하나도 없다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마음이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었기에  직접 양육하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인지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나중에는 슬프기까지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와중에 무슨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애들을 직접 양 못하고 매번 이런 일이 벌어지나?' 나 자신을 자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해 놓고 일이 끝나고 남편을 재촉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마트에 들러 고기랑 야채 등을 구입해 이고 지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집으들어가 보니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당장 주방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기로 했다.


구입해 온 재료를 넣어두려고 냉장고 문을 급히 열었는데...


아침 출근시간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미어터져 나오듯 반찬통들이 와르르 쏟아져 바닥에 떨어졌다.  조림통, 데브로콜리통, 우엉조림, 시금치등등  여러 개의 반찬통들로 꽉 차 있어서 내가 사 온 재료를 넣을 공간도 없었다.


'아... 짜증 나...'


"에미 왔냐?"


어머니가 외출했다가 지금 집으로 들어오신 것 같았다.


"어머니..."


화가 치미는데 시아버지도 계시고 남편도 있어서 성질대로 못 하고 최대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 어... 머... 니, 반찬이 하나도 없다면서요?"


"... 그게, 저기, 여기, 그 뭐냐... 아! 우리 먹을 건 있데 아이들 반찬이 없다고 전화한 거야. 난 아무거나 먹으면 되는데, 아이들은 좀 좋은 걸 먹여야 하는데 다 오래된 반찬들 뿐이라... 아이들이 불쌍해서... 흑흑흑... 엄마가  직접 보니 음식이라도 신선하고 좋은 걸 먹여야 하지 않겠니?"


이 날도 입해 온 음식 재료들을 주방에 그대로 둔 채 다시 밖으로 나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남편에게 물었다.


"도체 자기 어머니는 왜 저러는데? 왜 저러는 거야? 자기가 아들이니까 그 이유를 알 거 아니야?"





"난 밥에 김치만 있으면 되는데 아기들이 걱정돼서 전화했어...흑흑흑...애들이 걱정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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