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그분의 특이한 소통방식에 대해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애절한 착한 여자 콤플렉스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선시대 후궁들의 암투와 계략 같은 음흉한 소통 방식이다. 대놓고 나쁜 사람보다 음흉한 사람이 더 위험하지 않은가?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면,
"난 입맛이 없는데 네 시아버지가 한우를 먹고 싶어 하시네?"
"난 몸이 아파서 어디를 못 가는데 네 시아버지가 제주도 유채꽃이 보고 싶다네?"
"난 하루에 1000원도 안 쓰는데,네 시아버지는 하루에 3만 원은 쓰시더라?"
"난 그렇게 좋은 레스토랑에 비싸서 무서워서 못 가는데, 정숙이(남편 여동생)네는 지네들끼리 매주 비싼 데 가서 먹나보더라?"
"난 아무거나 입고 다녀도 되는데, 네 시아버지는 아래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으면 외출을 못하시잖니?"
"난 집에서 텔레비전만 봐도 되는데 네 시아버지가 요즘 그 뭐라더라, 그 ㅇㅇ영화를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 난 눈이 어두워 티켓팅을 못하니... 흑흑흑..."
"난 오래된 음식 먹어도 되는데, 네 시아버지는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음식 꺼내 드시라고 하면 화부터 내시잖니.""
"아휴, 난생일 때 초코파이에 초만 꽂아도 돼. 왜 그런데 돈을 쓰니? 그런데 네 시아버지는 케이크 없으면 좀 서운해하시는 것 같더라?"
"난 몸이 아파도 정밀검사도 안 받으려고 해. 검사비가 얼마나 비싸니? 너희들한테 부담주기 싫다.이러다 그냥 가는 거지, 뭐. 너희들도 경제적으로 힘든데, 그런데 네 시아버지의 약값은 너희들이 해줘야 할 것 같아... 흑흑흑..."
처음엔 시어머니의 이런 말들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몇몇 코멘트들에 대해서는 진실로 받아들여 남편과 깊은 고민을 나눈 적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 모든 게 거짓임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시어머니의 본심을 시아버지에 빙의하여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한 예를 들자면,원래 육식파에 대식가인 시어머니는 고기를 많이 드시고 좋아하시는데, 매일 물 한 그릇만 있으면 밥을 먹는다고 나를 속였던 것이다. 실제로 입이 짧고 소식하시는 분은? 빙고! 시아버지였다.
시어머니는 가녀린 코스모스 같은 여인상이 궁극의목표인지 다 같이 식사하는 식탁에서는 꼭 밥을 시아버지에게 덜고 아주 조금만,새 모이만큼 드신다. 이후 우리가 다 먹고 나면 특히,시아버지가 다 드시고 밖으로 나가시면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뒤져 반찬을 가져와 더 드신다.
"속이 헛헛하다... 에미야."
"그러게 아까 드시지. 왜 밥을 아버지한테 덜어요? 어머니 원래 대식가이신데..."
"아니, 에미야. 내가 무슨 대식가니? 난 밥도 2~3 숟가락 이상 먹으면 소화를 못 시켜 더 못 먹는 사람이다."
"그럼 지금 또 드시는 건 음식 아니에요?"
" 그거야 시간이 좀 지나니 속이 쓰려서 그래. 넌 날 진짜 모르는구나... 흑흑흑... 내 위염이 얼마나 심한지... 흑흑흑..."
그렇게 당신 아프걸 아무도 몰라준다며 울면서 큰 냉면 그릇에 밥을 넣고 김치를 넣고 남은 고기를 넣고 비벼 드신다. 얼마나 많이 드시는지... 연세가 그렇게 드셨어도 시아버지 앞에서는 소식하는 여린 여인네로 보이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다.
한 번은 시아버지에게 시어머니가 얼마나 많이 드시는지 자세히 말씀드린 적 있는데 시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즉 시어머니의 그러한 노력들은 헛수고인데 왜 자꾸 소식한다고,물만 먹고 산다고 허공에 외치며 다니는 것일까...
" 가족끼리 밥이라도 서로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읍시다!"
" 에미야! 난 이슬만 먹고 산다고! 소식가에 채식주의자다! 왜 못 믿니? 왜 못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