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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y 14. 2024

네 아버지가 국물 없이는 밥을 못 드시겠대.

난  물만 있어도 되는데...

난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시어머니, 그분의 특이한 소통방식에 대해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애절한 착한 여자 콤플렉스고 나쁘게 말하면  조선시대 후궁들의 암투와 계략 같은 음흉한 소통 방식이. 대놓고 나쁜 사람보다 음흉한 사람이 더 위험하지  않은가?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면,


"난 입맛이 없는데  네 아버지가 한우를 먹고 싶어 하시네?"

"난 몸이 아파서 어디를 못 가는데 네 아버지가 제주도 유채꽃이 보고 싶다네?"

"난 하루에 1000원도 안 쓰는데, 아버지는 하루에 3만 원은 쓰시더라?"

"난 그렇게 좋은 레스토랑에 비싸서 무서워서 못 가는데, 정숙이(남편 여동생)네는 지네들끼리 매주 비싼 데 가서 먹나 보더라?"

"난 아무거나 입고 다녀도 되는데, 네 아버지는 아래위 제로 갖춰 입지 않으면 외출을 못하시잖니?"

"난 집에서 텔레비전만 봐도 되는데 네 아버지가 요즘 그 뭐라더라, 그 ㅇㅇ영화를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 난 이 어두워 티켓팅을 못하니... 흑흑흑..."

"난 오래된 음식 먹어도 되는데, 네 아버지는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음식 꺼내 드시라고 하면 화부터 내시잖니.""

"아휴, 난 생일 때 초코파이에 초만 꽂아도 돼. 왜 그런데 돈을 쓰니? 그런데 네 아버지 케이크 없으면 좀 서운해하시는 것 같더라?"

"난 몸이 아파도 정밀검사도 안 받으려고 해. 검사비가 얼마나 비싸니? 너희들한테 부담주기 싫다. 이러다 그냥 가는 거지, 뭐. 너희들도 경제적으로 힘든데, 그런데 네 시아버지의  약값은 너희들이 해줘야 할 것 같아... 흑흑흑..."




처음엔 시어머니의  이런 말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몇몇 코멘트들에 대해서는 진실로 받아들여 남편과 깊은 고민을 나눈 적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 모든 게 거짓임이 확인었다. 실제로 어머니의 본심을 아버지에 빙의하여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한 예를 들자면,  원래 육식파에  대식가인 시어머니는 고기를 많이 드시고 좋아하시는데, 매일 물 한 그릇만 있으면 밥을 먹는다고 나를 속였던 것이다. 실제로 입이 짧고 소식하시는 분은? 빙고!  시아버지였다.             

       

어머니는 가녀린 코스모스 같은 여인상이 궁극의 목표인지  다 같이 식사하는 식탁에서는 꼭 밥을 시아버지에게 덜고 아주 조금만, 새 모이만큼 드신다. 이후 우리가 다 먹고 나면 , 아버지가 다 드시고 밖으로 나가시면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뒤져  반찬을 가져와 더 드신다.


"속이 헛헛하다... 미야."


"그러게 아까 드시지. 왜 밥을 아버지한테 덜어요? 어머니 원래 대식가이신데..."


"아니, 미야. 내가 무슨 대식가니? 난 밥도 2~3 숟가락 이상 먹으면 소화를 못 시켜 더  못 먹는 사람이다."


"그럼 지금 또 드시는 건 음식 아니에요?"


" 그거야 시간이 좀 지나니 속이 쓰려서 그래. 넌 날 진짜 모르는구나... 흑흑흑... 내 위염이 얼마나 심한지... 흑흑흑..."


그렇게 당신 아프걸 아무도 몰라준다며  울면서 큰 냉면 그릇에 밥을 넣고 김치를 넣고 남은 고기를 넣고 비벼 드신다. 얼마나 많이 드시는지... 연세가 그렇게 드셨어도 시아버지 앞에서는 소식하는 여린 여인네로 보이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다.



한 번은 시아버지에게 시어머니가 얼마나 많이 드시는지 자세히 말씀드린 적 있는데 시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즉 시어머니의 그러한 노력들은 헛수고인데 왜 자꾸 소식한다고, 물만 먹고 산다고 허공에 외치며 다니는 것일까...



" 가족끼리 밥이라도 서로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읍시다!"




" 에미야! 난 이슬만 먹고 산다고! 소식가에 채식주의자다! 왜 못 믿니? 왜 못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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