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봄 Jun 10. 2024

시어머니 생신 파티, 며느리 가출

난 시어머니와 대략 10년간 함께 살았다. 지금은 분가한 상태이지만 떨어져 살아도 관계가 완전히 끊기지 않았기 때문에 시도 도 없이 찾아오모로부터  완전히 유로울 수는 없다.


여기서 같이 살았을 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대략 8년 전 이야기인 듯싶다. 희한한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억력 감퇴되는 느낌이어서  하나, 둘씩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최대한 잠자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고자 한다.



당시 내가 하던  장사와 사업이 안 좋은 상황에 놓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시작될 였다.  마침 시어머니 생신이 코앞에 닥쳤다.  친정어머니의 생신었다면  '엄마, 내가 요즘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이번 신은 이 정도 금액만 보낼게. 이해해 줘.'라고 연락하고 마무리했을 것인데 시어머니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안 통하니 작은 상차림이나마 준비를 해야 다. 시어머니는 우리의 경제적인 상황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자리에서만 '알았다. 이해한다.'하시고 뒤돌아서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들과 며느리에게 생일상을 못 받았다고, 서운하다고  하실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니 스트레스가 극도에 다다랐다.


남편에게 상의했더니 집 앞에 조그만 식당에서 조하게 한 끼 먹자고 다. 지금  이 시국에 족들 생일상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고 덧붙면서.  '그럼 당신이 어머니께 이번 생신상은 최소한으로 한다고 직접 이야기하든가. 아, 짜증 나!' 하지만  시어머니가 이에 대해 서운하다는 반을 보이면 자기가 직접 대응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아이들까지 총 6  메뉴를 시키                                                                        대략 10만 원 넘는 지출이 예상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소비라고 판단했다.


모의 생일 당일.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비가  주르륵주르륵 내렸다. 누군가의 생일이 나에게 우울감을 주다니.... 비극이 따로 없다.


저녁에  시어머니께 전화해 집 앞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비는 속 추적추적 내렸다.  시어머니에게 집안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생일상을 간소하실용적으로 하자고 제안하면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면서 뒤로는 주변 지인들에게 내 험담을 하기 때문에 들 보기에 아주 소소한 것 조차도 신경이 쓰였다.


드디어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 와중에 케이크도 준비해  순간이나마 진심으로  시모의 생신을 축하해 드렸다. 창 밖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이 비는 하루종일 내리네?'  


난 결혼 전 낭만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비를 사랑했다. 타고난 술꾼이서 비가 오는 날은 지글지글 따뜻한  해물파전에 시원한 동동주 한 잔을  쭉 들이켜야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결혼 후 비고 눈이고 만사가 다 찮아졌다.



시어머니의 생일파티를 열어주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입을 모아 "너희 바데 이런  것까지 챙기느라 수고했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 말의 진의를 알긴 했만 인사치레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했다.



솔직히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아이도 베이비시터가 키워주고 시부모님은 ''으로 관리하시는데 난 늘 미안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합가도 아이들을 시부모님이 직접 양육해 주겠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인데   합가 일주일 전, 약속을 뒤집어 도저히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고 해서  결과적로는 베이비터 비용까지  대략 5년간 지출하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아무것도 안 하냐? 그건 또 아니었다. 시터 이모님가끔 도우기도 하고 에 이모님 쉬라고 시아버지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밤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은 온전히 시부모님이  정신적으로 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만 이루어졌다.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하는 것이 아라  신들의 시간을 다 보내고 남은 여유 시간에 잠깐씩 아이들을 돌봐 주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이 비는 이제 싫다. 어서 그쳤으면...' 너무도 고단한 하루지만 어머니 생신을  완료했다는, 일종의  의식을 한 후의 보람을 안고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무언가 싸한 느낌  들었다.


이윽고 내  눈앞에 믿지 못할 광경...


집에 먼저 어가신 시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계셨다. 런데 문제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화가 치밀어 오른 듯, 고통스러운 듯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고 계셨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또 어디 몸이 편찮으신 거예요?"


방금 전까지 웃으며 생일상이 고맙다고 하신 어머니는 어디로 단 말인가?  왜 저렇게 괴롭다고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감싸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단 말인가? 나도 같이 불안해졌다. 아이들을 방로 들여보내고  시어머니더 다가갔다.


"어머니, 어디 안 좋으세요?"


"야! 야! 넌, 어쩜... 그렇수  있니? 흑흑흑..."


"네?... 네?... 네?"


내 귀를 의심했다. 10분 전까지  화기애애하게 담을 주고받으며 저녁을 먹었는데 갑자기 날 책망하듯이 원망하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 후 울먹이는 시어머니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왜 저러실까?'


아니, 갑자기 나보고 소리를 르며 '아악!' 소리치 할머! 가뜩이나 요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편하게 쉬고 싶은  말에 비까지 내려 기분이 더 우울한데도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건만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내가 미치거나 할머님이 미치거나 둘 중에 하나지... 이게 뭐야!'


"야! 야! 야!" 시어머니는 계속 날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어머니! 저한테 왜 소리를 지르시는 겁니까?"


"야! 야! 넌 참 눈치도 없다. 아까 그 생일상이 얼마짜리니? 넌 참 엄벙덤벙 돈 쓰는 거 좋아하더라? 그게 다 얼마니? 한 십만 원은 넘어 보이던 넌 어쩜 돈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팍팍 쓰냐?.. 얘... 난  요즘 귤 하나도 무서워서 못 사겠던데... 너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요즘 사업도 어렵다면서 네가 그렇게 낭비하는 걸 보니 사업이 왜 어려워진지 알겠다... 흑흑흑... 우리 손주들 불쌍해서 어찌할꼬...!"

 

"어머니... 지금 제정신이세요? "



"뭐? 제정신이다... 제정신이야 !그건 왜 물어!"


세상에, 이 비 오는 주말에  시어머니 생일파티를 집 앞 식당에서 해드리려고 며칠 전부터 고하며 계획을 세우며 리를 련했는데  갑자기 돌변하여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는 갑자기 왜 나보고 낭비벽이 심해서 내 사업까지 망할 것 같다고  저주를 내리는 것인지  더 이상 참다가는  큰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난 뒤따라 들어온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저는! 말입니다!  집 나갈 겁니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


그때!  시어머니는


"아야야... 갑자기 어지럽네... 며느리가 큰소리를 면서 나에게 갑자기 대드네. 나 억울해서 못 살아... 못살아! 여보! 어서 나가요... 나, 이 집에서 더 있다가는 쟤 때문에 금방 죽을 것 같아요... 여보?"


하면서 시아버지 뒤로 가 숨는 듯이 서 있다. 누가 보면 천하에 버릇없는 며느리가 착하고 힘없는 시어머니에게 위협을 가하는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시아버지도  이런 장면을  수 회 목격했기에 예전처럼 나에게  질책을 할 수는 없을 것다. 대략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보니 짜증났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정의의 사도가 되어 나를 대변해 주고 항변해 주면 좋으련만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아, 진짜 어머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니! 정신이 뭔가 이상한 거 아니냐고요!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제가 뭘 잘 못 했는데 그러냐고요!!!"



 이성을 잃고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도 이 중에 생일 파티를 준비했는데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냐고욧!"


순간  누가 나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간다. 남편이다.


"놔! 이거! 아, 놔, 나, 미치겠네! 아, 진짜 나 죽어!"



복도식 아파트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질러댔다. 분노가 극에 달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나! 나갈 거야! 여기서 못 살아! 당분간 친정에 가 있을 테니 그리 알아!"


"나도 갈 거야!"


남편도 친정에 따라온단다.


" 미쳤어? 자기는 집에 있어야 애들을 돌볼 거 아냐? 내일 유치원도 가야 하고!"


" 지금 이 상황에서 유치원이 웬 말이야! 며칠 안 보낸다고 애들 인생이 망가져?"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여 살면서 이렇게 지지고 볶고 싸워대며 사는 집도 드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창피한 일인데 말이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 어느 날, 먼지나도록 고부가 싸워대다니...난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아악! 가출만이 살 길이다! 도망쳐!"



작가의 이전글 네 아버지가 국물 없이는 밥을 못 드시겠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