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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n 12. 2024

시어머니와  MRI

나는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지금은 분가했지만 함께 살았을 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을 즐기던 어느 날, 시아버지로부터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는  합가 전이어서  남편은  퇴근 후 병문안을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내 상식으로는  '병원 입원'이란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거나 중병일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여겨 진심으로 시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며 남편과 서둘러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경기도에 있는 00 정형외과.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서둘러 병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시모가 보이지 않았다.  병실을 나와 복도 쪽으로  나오니 누가 남편을 불렀다. 시어머니였다



"아이고, 아들 왔니?"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가 너무 멀쩡해서...



'도대체 어디가 아프신 걸까?'


"엄마, 저희 왔어요!"


"어서 와라. 흑흑흑... 너희를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 "


시어머니는 울먹이며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걸까?'


"어머니, 어서 낫기를 바랍니다. 기도할게요."


솔직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자세히 알지도 못한 채 쾌유를 빌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 어머니  정형외과에 입원하신 이유가 뭐야?"


"응, 허리 통증 치료야."


"허리 통증? 아..."


병원 휴게실에서  시어머니가  정상인처럼 걸어 다니는 걸 봤다. 어머니가 왜 입원까지 하면서 치료를 받는지 이해를 못 했다. 보통  '통증 치료'하면 통원 치료도 가능할 텐데 굳이 입원까지 해야 할까. 더군다나 혼자서도 잘 걷고 식사도  드시는데  왜 불편하게 입원을 하는 까.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지만 통증이 간헐적으로  매우 심해서 집중 치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억지로 마무리기로 했다.


나중에 합가 후에 이 '입원'에 관련된 시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시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나면 시어머니는 몸이 아프고, 이후 반드시 '입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2개월에 한 번씩은 입원을 하신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에 적용시켜 보자면 '프로 입원러'인 셈이다. 만약에 '통증 집중 치료'라 하더라도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하면 동네에 있는 모든 병원을 바꿔가면서 매일 다닌다. 머리, 눈, 코, 위, 심장, 심지어 살갗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다고 하고 지병인 허리 디스크는 이미 수술을 한 번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대학병원마다 다니며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의사들을 볶았다.


한 번은 모 병원에 짐까지 싸서 입원하러 갔다가 입원 거부를 당해 밤에 다시 돌아온 적도 있다. 그날 밤은 우리에게 지옥 같은 날이 된다.


"아이고, 나 죽는다. 너... 무 아... 파..."


시어머니는 신음 소리를 내며  밤새 울기 때문이다. 난 이런 시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뭔가 판단을 하기 전 문화적 충격부터 받았다. 평생 살면서 알고 있던 '병원 입원'의 의미가 고부간에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드라마를 보면 할머니들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거나 화가 나면 하얀 천으로 머리를 싸매고 눕던데 부부싸움 후 항의의 표시인지  아니면  정말로 어디가 아픈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시부모님이 싸우면 시아버지는 밖으로 나가버리고 시어머니는 혈압이 오른다며 엠블란스를 불렀다. 혈압이야 흥분했으므로 조금 올랐겠지만 그것이 응급실까지 갈 정도인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우리 부부를 불렀다.


"흑흑흑... 얘들아. 미안하다... 내가 이렇게 아파서 너희에게 아무 도움도 못 돼서... 흑흑흑..."


"엄마, 우리 시간 없어요. 용건 있으시면 빨리 말씀해 주세요."


남편은 이런 종류의 가족 간 회의를 수 천 번 겪었기에 담담하게 시어머니를 채근한다.


"저기... 다른 게 아니고... 저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래도 이번에 MRI 검사를 해봐야 될 것 같아."


"의사가 권해요?"


"아니... 의사는 과잉진료한다고 공격받을까 봐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찍자는 말을 잘 안 하지... 내 생각에 이번에 내 허리 척추에  뭔가 크게 무너진 것 같아... 흑흑흑..."


"엄마. MRI는 의사가 권해야 보험적용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아니... 아니야. 내가 죽... 을... 것... 같아서 그래."


" 3달  전에도 찍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 통증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너희는 몰라. 내가 얼마나 아픈지...!"


이렇게 해서 다시 MRI를  찍어도 결과적으로 이전 검사때와 다를 바 없는  결과지를 받을 뿐이다. 점점 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시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과 정밀검사를 사랑하는 걸까?


'얘들아! 내 병원 문제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라는 시어머니의 말만 들어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내가 시어머니로부터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얘들아...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라는 문장이다. 정말이지  '긴히'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디선가 짜증이 확 밀려오는 것 같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아프다 해도 병원에서중증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계속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면 자식들의 마음이 어떨지 한 번이라도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 집은  그 당시 병원 쇼핑을 다닐 만큼 여유롭지 않았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같이 살면서 계속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심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까?




'며느리도 MRI 찍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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