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우주의 지정학
그러나 인류의 우주 거버넌스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반세기 전 냉전의 논리 속에서 만들어진 우주 조약(Outer Space Treaty)¹은 AI 시대의 복잡한 위협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강대국들은 이 법의 회색지대에서 보이지 않는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전장의 본질을 법의 프리즘으로 분석하고, 이 거대한 체스게임에서 어떤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찰해야 할 결정적 시점에 서 있다.
1. 새로운 전장의 탄생 – AI, 우주를 ‘궁극의 하이그라운드’로 만들다
영화 《고지전》은 한국전쟁 당시 최전방의 고지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남과 북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참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다. 영화 속에서 고지의 주인은 수없이 바뀌지만 양측 모두 그곳을 포기하지 못한다. 고지를 점령하는 자가 전장의 주도권을 쥐고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투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전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고지(High Ground)를 확보하려는 경쟁은 인류 전쟁사의 오랜 법칙이다. 그리고 21세기에 인류는 이 고지전의 무대를 지상의 언덕이 아닌, 지구 전체를 굽어보는 ‘궁극의 하이그라운드’, 즉 우주로 옮겨왔다.
과거 지정학에서 하이그라운드가 전술적 우위를 제공하는 고지(高地)를 의미했다면, 현대의 우주는 지구 전체를 24시간 감시하고 전 지구적 통신과 항법을 장악하는 궁극의 하이그라운드다. 그리고 AI가 이 공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바꾸고 있다. AI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와 같이 수천 개의 저궤도 위성군을 자율적으로 관제하며,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군사적·경제적 활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 우주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곧 지구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의미하게 된 지금, 그 중심에 AI가 있다. 특히 우주탐사 로봇 제어, 외계 신호 분석, 심우주 탐사 등에서 AI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²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도 불구하고, 우주 공간의 법적 토대는 1967년 체결된 ‘우주 조약’에 머물러 있다. 이 조약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 특정 국가의 영유권 주장 금지(비전유 원칙), 대량살상무기 배치 금지 등 우주 활동의 핵심 원칙들을 수립했지만, AI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령 ‘평화적 목적’이라는 용어의 모호함은 군사정찰위성과 같은 ‘비공격적’ 군사 활동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었고, 우주 공간에 재래식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³은 각국이 ‘킬러 위성’을 개발하면서도 조약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치명적인 법적 허점을 남겼다.
이 법의 공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은 2007년 중국이 감행한 위성 요격 미사일(Anti-satellite, ASAT) 실험이었다. 중국은 지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자국의 낡은 기상위성을 성공적으로 파괴함으로써, 경쟁국의 우주 자산을 언제든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⁴ 이 실험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우주 조약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했을 뿐만 아니라, 수천 개의 위험한 우주 파편을 발생시켜 모든 국가의 우주 활동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우주 공간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며, 이미 보이지 않는 군비 경쟁의 최전선이 되었음을 알리는 충격적인 신호탄이었다.
2. 무중력 공간에서의 전쟁 - 우주의 지정학과 미중 패권 다툼
AI 시대 우주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우주 상황 인식(Space Situational Awareness, SSA)’ 능력이다. SSA란 지상 및 우주 감시 체계를 이용해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인공위성, 우주 잔해물 등의 상황을 파악하여 충돌이나 추락 등의 위험에 대처하는 개념을 의미한다.⁵ 과거에는 지상 레이더에 의존했지만, 이제 AI는 방대한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여 수십만 개 우주 물체의 궤도를 순식간에 계산해 낸다. 상대의 정찰위성이 언제 내 머리 위를 지나는지, 미사일 발사를 감시하는 조기경보위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방어의 핵심이며, AI는 정상 궤도에서 미세하게 벗어나는 움직임만으로도 공격 의도를 감지해 낼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경쟁의 중심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미·중 양국은 우주기술을 경제, 군사, 외교적 영향력을 좌우하는 권력의 기술이자 전략경쟁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아르테미스 협정’⁶을 통해 동맹국 중심의 우주 규범 연대를 구축하며 리더십을 강화하려 하자, 중국은 ‘아태우주협력조직(APSCO)’을 신설하고 ‘우주 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개발도상국들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맞서고 있다.⁷ 이처럼 우주 공간은 양국의 가치와 규범이 충돌하는 새로운 외교 각축장이자, 동맹과 파트너십을 규합하는 진영화 질서가 형성되는 지정학적 단층선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지정학적 경쟁은 군사적 긴장으로 직결된다. 미국은 2019년 우주군을 창설하며 우주를 육·해·공군과 동등한 독립된 전장 영역으로 공식화했으며,⁸ 중국을 우주 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미국의 군사위성 네트워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다양한 비대칭 전력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상기반 레이저 무기나 전파 교란 장비뿐만 아니라, 로봇 팔을 이용해 다른 위성을 포획하거나 파괴하는 ‘킬러 위성’ 개발을 공공연히 추진하며 미국의 우주 우위에 대한 도전을 노골화하고 있다.⁹ 나아가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은 평화적 기술과 군사적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중용도 기술’¹⁰ 문제로 더욱 증폭된다. 고장 난 위성을 수리하는 로봇 팔은 언제든 적 위성을 파괴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상대국이 쏘아 올린 위성이 정말 평화적인 수리용인지, 아니면 아군 위성을 노리는 위장된 암살자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은 극심한 안보 딜레마를 야기한다. 이는 우주 공간이 더 이상 평화적 협력의 장이 아닌, 양국의 군사력이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잠재적 전쟁터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경쟁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보이지 않는 자원으로까지 확장된다. 위성 통신에 필수적인 ‘라디오 주파수’와 위성이 머무는 ‘궤도’는 유한한 자원이며, 이를 둘러싼 경쟁은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의 전선이 되고 있다. AI는 비어있는 주파수 대역을 찰나의 순간에 찾아 데이터를 전송하는 동시에, 적국의 통신을 방해하는 지능형 재밍(jamming) 공격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결정적인 통신 수단으로 제공되자, 중국의 연구자들은 이를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파괴 혹은 전파 방해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¹¹
3. 우주의 새로운 규칙 – 법, 기술, 그리고 협력의 길을 찾아서
우주의 지정학 시대를 맞이하여 낡은 우주 조약의 실효성이 떨어진 지금, 국제 사회는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하늘의 교통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전면적인 조약 개정이 어렵기 때문에 위성 발사 계획 사전 통지, 의도적인 우주 파편 생성 행위 금지, 특정 위성에 대한 비정상적 근접 기동 제한 등 실질적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투명성 및 신뢰 구축 조치(Transparency and Confidence-Building Measures, TCBMs)’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¹² 이러한 연성 규범(soft law)은 당장의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책임 있는 국가들의 모범 관행으로 자리 잡아 미래의 국제 관습법을 형성하는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¹³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거대 담론이 당장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면 모든 우주 이용자의 공동 이익이 걸린 실용적 문제에서 협력의 실마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최적의 출발점이 AI 기반의 ‘우주 운항 관리(Space Traffic Management, STM)’ 시스템 구축이다. STM은 우주 상황 인식을 통해 파악된 정보를 바탕으로 우주 물체 간 충돌을 회피하도록 우주 이용을 통제하는 적극적인 행위 개념을 말한다.¹⁴ 현재 지구 궤도를 떠도는 수십만 개의 우주 쓰레기는 모든 국가의 위성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다. STM은 수십만 개의 위성과 우주 잔해물을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추적할 수 없는 현실에서, AI를 통해 충돌 위험을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자율적으로 회피 기동을 수행하는 ‘궤도상의 생존 기술’이다.
우주쓰레기의 위험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였다. UN 산하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COPOUS : United Nations Committee on the Peaceful Uses of Outer Space)”는 2007년 “우주쓰레기 경감 가이드라인(Space Debris Mitigation Guidelines of the COPOUS)”를 채택한 바 있다.¹⁵ 그러나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기반 STM 시스템은 우주 물체 간의 충돌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경고함으로써 모두의 자산을 보호하는 공공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와 우주의 만남이 인류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지상에서의 끝없는 갈등과 경쟁을 저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까지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하늘을 바라보며 기술을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해 통제하고 새로운 '협력의 질서'를 만들어낼 것인가. 우주라는 궁극의 하이그라운드는 이제 기술 패권의 시험대이자 인류의 집단적 지혜를 시험하는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인류가 마주할 미래의 하늘은 무한한 기회의 공간이 될 수도,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 ‘누리호(한국형발사체-II)’의 성공으로 세계 7대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 경쟁의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이제는 미래 우주 질서를 주도하는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실행해야 할 때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있는 대한민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비대칭 역량 확보와 규범 형성에 대한 적극적 기여라는 두 가지 축으로 우주 주권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인접국의 위협을 감시할 독자적인 ‘AI 기반 정찰위성망’을 구축하여 정보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및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주 AI 반도체와 같은 특정 기술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우위를 점하고,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삼아 호주, 유럽 등 중견국들과 연대하여 우주 공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규범 형성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최근 한국이 미국의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한미 간 우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중요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¹⁶
우주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열쇠는 단연 인공지능(AI) 기술에 있다. 과밀화되고 분쟁 지역화 되는 우주 공간에서 우리 자산을 보호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AI 기반의 우주 상황 인식(SSA) 및 우주 운항 관리(STM)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또한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같은 다수의 위성으로 구성된 위성망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AI 기반의 ‘자율 군집위성 운용 기술’도 필수적이다. AI는 각 위성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하고 최적의 궤도를 유지하며, 일부 위성이 고장 나거나 공격받았을 때 네트워크 전체의 기능을 유지하도록 자율적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기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명확한 정책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민·관·군의 역량을 하나로 묶는 우주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며, 단순히 기술 개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발한 AI 기술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국제사회에 증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 활동의 새로운 국제 규범을 설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가치·규범 외교도 함께 펼쳐야 한다.
우주를 경이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인류는 어느덧 우주를 갈망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인류가 우주에 나가는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그 일을 우리가 하자. 우리가 내리는 오늘의 결정이 한 세기 뒤 후손들에게 반도를 넘어 무한한 우주 영토의 길을 열어 준다면 이 또한 기꺼운 일 아니겠는가.
¹ 정식 명칭은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 있어서의 국가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Treaty on Principles Governing the Activities of States in the Explorationand Use of Outer Space, including the Moon and Other Celestial Bodies)〕 [발효일 1967. 10. 13] [다자조약, 제262호, 1967. 10. 18]
² 김진원, 「"외계 생명체는 인간보다 먼저 AI 만날 것"…우주탐사에 동참하는 AI」, 한국경제신문, 2023. 2. 10.,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2095877i (최종 방문일 : 2025. 7. 21.)
³ 우주 조약 제4조 제1항은 지구 주변의 궤도에 핵무기 기타 대량파괴무기의 배치만을 금지하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군사 활동은 허용된다는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정영진, 「우주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 우주법의 점진적인 발전을 중심으로」, 항공우주정책·법학회지 제30권 제1호, 2015. 6., 308-310쪽 참조.
⁴ 남승우, 「중국 미사일로 자국 위성격추 실험 파문」, 조선일보, 2007. 1. 19.,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1/19/2007011900152.html (최종 방문일 : 2025. 8. 1.)
⁵ 유준구, 「우주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우주안보 제도화의 현안과 과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21. 3., 21쪽.
⁶ 우주 공간에서 따라야 할 규범에 관한 미국 정부와 다른 세계 정부 간의 일련의 구속력 없는 양자 협정이다. 2026년까지 인간을 달에 다시 보내려는 미국 주도의 노력인 아르테미스 계획과 관련이 있다. 위키백과 <아르테미스 협정>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A5%B4%ED%85%8C%EB%AF%B8%EC%8A%A4_%ED%98%91%EC%A0%95 (최종 방문일 : 2025. 7. 21.)
⁷ 차정미, 「미중 전략경쟁과 우주의 지정학」, 국회미래연구원, Futures Brief 23-10호, 2023. 7., 3쪽.
⁸ 남기원, 「우주 상황 인식 및 우주 교통 관리: 개요 및 국제 동향」, 항공우주산업기술동향, 21권 2호, 2023., 27쪽.
⁹ 최유식, 「위성 킬러 vs 첩보 위성... 美中 스타워즈 승패, 이 둘에 갈린다」, 조선일보, 2025. 7. 6.,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china/2025/07/05/ZHCKGNKKJZAQVKW6LOFAJ62S44/ (최종 방문일 : 2025. 7. 21.)
¹⁰ 이중 용도 기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유준구, 앞의 논문, 17-19쪽 참조.
¹¹ 홍건식, 「미국의 대중국 우주 개발 전략 인식과 대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INSS 연구보고서 2022-23, 2023. 2., 11쪽.
¹² 유준구, 앞의 논문, 2쪽 참조.
¹³ 정영진, 앞의 논문, 322쪽.
¹⁴ 유준구, 앞의 논문, 21-22쪽.
¹⁵ 유준구, 앞의 논문, 3쪽.
¹⁶ 홍건식, 앞의 논문, 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