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이 Jun 03. 2024

불공평한 사랑의 조각


 난 늦둥이 외동딸이다. 형제가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왔다. 살아오면서 형제가 없어서 좋았을 때도 있었고, 가끔 형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외동의 가장 좋은 점은 부모님의 사랑이 온통 내 것이라는 것. 그리고 외동이라서 가장 싫은 점은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난 더 이상 부모님과의 추억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나, 우리가 오랜 기간 했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건 무슨 기분일까. 

 아무래도 더 오래 기억할 사람이 부모님이 아닌 나일 확률이 더 높으니, 많은 사랑의 추억들을 써놓기로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나.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팠던 것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앓아누웠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뜨끈한 방 위에 누워 오한에 떨던 내게 아빠는 두꺼운 솜이불을 두개나 덮어줬었다. 내 몸만큼이나 무거운 이불 밑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고있는 내 이마를 쓸어넘기며 아빠는 말했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아픈 와중에도 그 말이 정말 진심같다고 느꼈다. 정말 진심같아서 그때 내 이마를 만지던 아빠의 두꺼운 손바닥, 아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가슴아픈 감정이 생생히 생각난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던 그 어린 나이에, 누군가를 대신해서 자신이 고통받고싶다고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엄마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매일 사왔다. 초콜릿이 좋다하면 그 당시 천원이던 큰 가나초콜렛을 매일 사줬다. 아무리 단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 어느날부터 질린다고 초콜릿을 안먹기 시작하면 엄마아빠는 못내 서운해했다. 원래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즐기려면 과하게 즐기면 안된다. 적당한 양과 적당한 휴식기가 있어야 모든 것을 더 오래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엄마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적당히가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비록 달디단 지방덩어리 초콜릿일지라도, 내가 좋으면 기꺼이 맘껏 주는 것이다. 늦깎이 부모들의 조절없는 사랑덕분에 나는 초중고 내내 통통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직도 엄마아빠를 만나러 본가를 가면 엄마아빠가 “니 그때 기억 안나제?” 하며 몇번이고 늘어놓는 내 영아기 시절 추억이 있다. 걸음마를 떼고 이제 막 뛰어다닐 때 난 동네를 신발도 안신고 막 뛰어다녔다고 한다. 신발을 신겨놓으면 또 벗어던지고 뛰어다니고, 또 신기고의 반복이었다. 엄마아빠는 그런 내가 불안해 내 뒤를 쫓아다니는게 일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동네 길거리에서 감을 파는 할머니한테가서 매일 같이 손을 내밀고 “감 줘 !”라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감을 강탈(?)한 나는 먹지도 못하는 감을 한손에 들고 또 동네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엄마아빠는 얘기할 때마다 웃는 얘기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정말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고 그저 엄마아빠의 얘기를 듣고 상상한 장면만 머리 속에 있을 뿐이다.  


  또 아기일 때는 밤에 잠을 안자서 고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내가 차에만 타면 잠이 들었고, 엄마아빠는 밤이든 새벽이든 잠에 들지않고 칭얼거리는 나를 재우러 때아닌 드라이브를 했다고 한다. 잠에 들었다 싶어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면, 다시 깨서 우는 탓에 차에서 내리다가도 다시 탄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이것도 나는 전혀 기억이 안난다. 이렇게 엄마아빠만 기억하고 있는 많은 조각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그래서 사랑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크고 작게 매일같이 사랑을 줬지만 그 대상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내가 너를 잡으러 얼마나 온 동네를 뛰어다녔는지 알고있느냐며, 내가 너를 재우러 그 밤중에 안가본 곳이 없다며 억울해 할만도 하건만, 그들은 그 불공평한 기억이 뭐가 그리 좋은지 아직도 이야기 할 때마다 함박웃음이다.


 지금은 일때문에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고 있다. 못해도 한달에 한번은 본가를 가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려울 때도 있고, 전화를 자주 하는 것도 맘처럼 잘 안된다. 주로 내가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걸기보단 내가 받는 편인데, 그 때문인지 우리 아빠는 내가 전화를 걸면 항상 끊을 때 “전화 해줘서 고마워~”라고 한다. 당신은 그 짧은 전화 발신이 뭐가 그리도 고마운지. 고맙단 말에 가끔은 마음이 따끔 아릴 때가 있다. 자주 찾아 오지도, 자주 전화를 하지도 않는 딸이 뭐가 예쁘다고 내가 본가를 방문하는 날이면 부모님은 그 전날부터 뭐가 먹고싶냐고 성화다. 한 두달전인가,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갔었다. 엄마가 퇴근 후에 내가 먹고싶은 우거지 감자탕을 해주겠다고 퇴근길에 장을 봐와 감자탕을 끓여줬다. 내가 엄마에게 퇴근하고 와서 요리하느라 힘들었지, 물으니 엄마는 말했다. “니 입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안 힘들다.” 그 말을 들은 그때도 그 사랑의 무게가 가늠이 안됐었고, 그 기억을 되새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준 그 아낌없는 사랑은 내 안에 모두 체화되어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나중에 같이 이야기를 나눌 형제가 없더라도, 나 자체가 우리가 사랑한 증거이니 괜찮다. 괜찮고 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