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기획자가 기획서 초안을 가져오는 것이다. 첫 번째 회의가 열리고, 개발자는 기술적 고려 사항을 공유하고 기획 내용 중에 일부에 대해 수정검토나 세부 스펙을 요청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요소들에 대해서 검토한다. 그리고 더 정리된 기획서가 나온다. 또 다른 회의가 진행된다. 그렇게 몇 번의 회의가 오가고 어느 정도 정리되고 디자인이 나왔을 때 일정을 잡고, 개발에 들어간다.
개발은 무리 없이 진행되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강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개발을 진행한다. 그리고 프로젝트가끝날 때까지찝찝함이 남은 체마무리된다. 정리를 위한 회고가 시작되고,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았다."라는 느낌의 문구가 적히기 시작한다.
개발자로서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디자인에 대한 지식도 없고 그저 눈에 이쁘고 안 이쁘고 수준의 피드백 밖에 줄 수 없으니 말을 꺼내기에도 부담된다.
개발에서는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코드를깔끔한 코드라고 한다. 그리고 내 눈과 타인의 눈은 대부분 다르지 않다.
디자인은 아니다. 내 눈에만 안 이쁘지 사용자들은 좋게 볼 수 있다. 너무나도 주관적이기에 기준을 잡을 수 도 없다. 취향의 문제가 너무 큰 영역이다. 내가 파란색이 좋다고 메인 컬러를 파란색으로 해달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사이드바가 좋다고 사이드바 형태로 디자인해달라고 할 수 도 없다.
그래도 다른 대안의 디자인을 보고 싶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내가 제시할 수 도 있다. 다른 앱들을 가져와서 이런 디자인 형태는 어떠냐고 물어볼 수 있다. 착한 디자이너분은 나에게 왜 이런 디자인을 했는지 설명해 줄 것이고, 다른 디자인을 보여주면서 의견을 묻기도 할 것이다.
함께 서비스를 운영하는 팀으로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프로젝트나 팀을 떠나서 개발자와 디자이너로만 봤을 때,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들은 같은 개발자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개발방식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키텍처, 라이브러리, 언어 어떤 걸 사용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회의에서는 어떤 걸 구현해달라고 요구할 뿐 내부구현은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들은 다르다.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다. 제플린이나 피그마에 올라온 시안이 전부이며, 그들이 숨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물 전체가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디자이너뿐만이 아닌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인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요구를 디자이너에게 말한다. 이건 개발이슈로 불가능한 디자인이에요. 애니메이션이 너무복잡해서 구현이 안될 거 같아요. 디자이너는 속 사정을 알 수 없기에 온전히 개발자의 말을 믿고 디자인을 변경하고, 애니메이션을 간소화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말한다. 다른 곳은 다르게 했다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왜 이런 디자인을 했는지 설명한다.안 이뻐 보이던 게 설명을 듣는다고 이뻐지지는 않는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실랑이할 수는 없다. 결국 디자인이 바뀌거나 그냥 적용되면서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개발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질문을 들은 적 있다. 개발자는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창조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런저런 핑계로 그들의 상상력을 조금씩 억제하는 요구를 하고 있다. 씁쓸하다.
팀으로서 서로 피드백을 주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그게 디자이너와 개발자 사이라도 같다고 믿고 싶다.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개발자가 하는 디자인 피드백은 굉장히 객관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의미 없는 비판이 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실제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른다. 내가 디자이너였다면 개발자인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것 같고, 그래서 더 신중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