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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엄의 불가침 Sep 05. 2024

농촌으로 유학 온 고3엄마 #11

탕후루 샌드위치

 오늘은 정읍에 내려와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첫 학부모 참여수업이 있는 날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눈 맞추면서 소통하는 작은 학교',

'많은 양을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귀히 여기는 선생님과 아이들',

'선행(先行) 학습으로 심리적인 열등감을 주는 친구보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함께 웃어줄 수 있는 친구들'을 소망했다. 곁에 있는 사람을 경쟁자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진짜 친구로 여기는 마을에서 사계절을 가장 가깝게 자세히 보고, 만지며 자연의 경의로움을 체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농촌유학이었다. 그래서 학습에 관한 욕심은 없었다.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자연이란 믿음이 있었다. 내가 그랬다. 태어나서 10년을 깡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내 안에 가득한 자연의 맛과 향기가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고, 응원해 주는 비장의 카드였다.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고 느꼈던 바람과 햇볕과 흙내음과 풀내음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처음 내려왔을 땐 아들이 겪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많았다. 학생이 많았던 기존 학교에선 대충 묻어 넘어가곤 했는데, 이곳 학교는 학생 하나하나에 맞춰 수업이 이루어진 일명 맞춤형 학습이 진행된 것이다. 거의 개인과외나 마찬가지 인 셈. 아들도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들입장에서는 작은 학교의 부작용, 학습에 욕심 없다던 내 입장에선 소가 뒷발질하다 얻어걸린 개이득)

아들이 그랬다. 쉬려고 왔는데 '개 힘들다'라고. 아들 입에서 나온 쉰다는 표현이 참 낯설었다. 나는 입에 달고 살던 '쉼'이란 단어를 아들은 해서는 안 되는 단어였을까? 나는 아이들 몰래 '쉼이란 단어는 어른전용'이라고 심리적 헌법에 새겨놓았나 보다.


책이 절로 읽힐 것 같은 학교 도서관

 작은 학교였고, 도서관이 아름다운 내가 꿈꾸던 그 이상의 학교였다. 전교생이 20명으로 6학년인 아들반은 아들을 포함해서 8명이다. 6학년을 제외하면 한 학년에 1명인 학년이 두 학년이나 되었다. 아무리 작은 학교를 원했다 해도 같은 반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일 년을 보낼 두 학년의 아이들은 생각만 해도 짠하다. 모둠 수업이 어려울 2명, 3명 정도 학급도 가엾기는 마찬가지다.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영어체험실로 가는 도중에 학생 한 명, 선생님 한 명이 수업 중인 5학년 교실이 살짝 보였다.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책상 하나만 놓여있는 빈 교실을 본적은 몇 번 있었지만, 큰 교실에 둘이 앉아 실제로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이었구나. 내가 본 빈 교실이 현실이 아니길 내심 바랬었던 것일까? 이토록 비 현실적인 모습이 눈앞에 존재하는 건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정기총회 때 선생님은 아이에게 'soul friend'가 돼주실 거라고 했다.

'그래 선생님이 어련히 좋은 친구가 돼주겠어?'

'아무리 그래도 같이 배우는 친구가 없다는 건 재앙이야 재앙!!!! 친구가 엄마보다 좋을 나이인데'

머릿속에선 안심과 걱정이 서로 맞다고 싸우고 있었다.


 첫 수업은 영어 수업이었다. 영어는 전담교사가 진행하고 있었다. 아들 설명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원어민교사와 전담 교사 두 분이 함께 수업을 한다고 했다. 이토록 좋은 인프라인데 정작 학생이 없는 현실이라니.. 오늘은 영어 문장을 아이들과 선생님이 읽고 해석한 후에 영어로 간단한 전단지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각자 샌드위치 회사를 만들고 본인들이 팔고 싶은 샌드위치를 디자인한 후에, 이름도 붙이고 가격도 정해 홍보하는 전단지였다. 학생숫자가 적다 보니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수업은 알차게 진행되었다. 40분 수업인데도 전단지는 얼추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사회 수업에서 이 전단지를 수업에 활용했다. 두 과목을 융합한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참여 수업 장면

 사회 수업은 '합리적 선택'이란 주제를 가지고 경제주체와 각 주체들의 특징등을 배우고, 왜 아이들은 매사에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난 후 아이들은 각자의 샌드위치를 홍보했고, 선생님은 가상의 화폐를 아이들과 수업에 참여한 학부모에게 무작위로 뽑게 했다. 이제 모두 다른 분량의 자기만의 화폐가 생겼고, 스스로 정한 기준에 의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차례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샌드위치를 제외하고 구매할 수 있고, 학부모는(나를 포함해 4명이었고 그중엔 교감선생님도 계셨다.) 객관적인 판단에 의해 구매해 달라는 선생님의 규칙이 주어졌다. 나는 선생님의 '객관적인'이란 단어를 '정의'로 나름의 해석을 했고, 그것에 준해 샌드위치를 구매했다. 전시되어 있는 샌드위치 이름표에 가상화폐(스티커)를 붙이고, 샌드위치를 구매했다. 난 18,500원을 뽑았기 때문에 6,500원짜리 Rainbow 샌드위치를 첫 번째로 샀고, 5000원짜리 God 샌드위치를 두 번째로 구매했다. 정말 사심 하나도 안 보탠 나의 선택 기준에 입각한 매우 합리적인 구매행위였다. 그러고 나서 보니 7000원이 남았지만 평소에 밥순이인 나는 샌드위치를 더 먹고 싶진 않아 더 이상 돈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주어진 학습지에 선택이유를 적고 가격을 적다가 뭔가 쏴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우리 아들의 샌드위치 홍보전단을 보았다.

아뿔싸, 이럴수가!!!

8명 중에 유일하게 아들 샌드위치만 안 팔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들 샌드위치는 만원이었는데 난 7000원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지불한 돈(스티커)을 환불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모두 구매가 끝났고 각자 어떤 기준으로 어떤 샌드위치를 샀는지 발표를 했다. 심지어 학부모까지 발표를 했다.(하필 여기서 작은 학교의 부작용을 맛볼 줄이야) 그리고 알게 되었다. 두 명의 학부모는 모두 자기 아이의 샌드위치를 구매했다는 것을.

아이들이 만든 홍보 전단지


 차마 아들이 어떤 모습일지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학부모의 발표를 듣고 아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눈에서 나는 땀(이 표현은 아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을 힘을 다해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도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조금 전만 해도 나는 무조건 아이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샌드위치를 사주는 그런 정의롭지 못한 엄마가 아니라고 스스로 뿌듯해했는데.  아들이 하교하기 전까지 나는 백번도 넘게 과거로 돌아가 아들의 탕후루 샌드위치를 사주고 그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렇게 매사에 정의로워야 하는 사람이구나.'

'자식의 기(氣)를 살려주는 것보다 정의와 도덕이 먼저인 사람이구나.'

'나는 어쩌다 정의와 도덕의 노예가 되었을까? 아들 기(氣)도 살려주고 정의로울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토록 한 가지만 보는 경직된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오늘 이런 나를 알게 되었다.


 아들은 집에 와서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또 한 번의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내가 또 아들의 편이 아닌 주인집 딸 편을 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들은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이미 어둑어둑해졌는데 말이다. 이곳은 산속인 데다 가로등도 없어 칠흑같이 어둡기 때문에 해가 지면 어른들도 혼자서는 외출을 못하는 곳이다. 그런데 내가 준 배신감이 아들이 그토록 힘들어하던 어둠에 대한 공포를 한 순간에 극복하게 할 줄이야. 나는 서둘러 차를 끌고 아들을 찾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 아들을 평소에 자주 가던 축구장이 있는 공원 근처에서 찾았다. 결국 온갖 굴욕을 참아가며 아들을 설득해 집으로 왔다. 아들은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그러나 조목조목 순번까지 붙여가며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읊었다.


1. 다른 엄마와 아빠는 다들 자기 아이의 샌드위치를 사주었는데, 내 엄마만 자기 아들 샌드위치를 사주지 않았던 점.

2. 아무도 자기 샌드위치를 안 사주더라도 엄마는 사주었어야 했다는 점. 즉 첫 번째가 아니더라도 두 번째로 사주었어야 했다는 점.

3. 엄마는 늘 내편이 아니었다는 점.


 아들은 하염없이 울었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 나도 오늘은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왜 그렇게 아들 편을 들어주는 게 어려운지 나도 모르겠다고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감정을 조목조목 잘 설명하는 아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어려운 사람이다. 아들은 13살밖에 안 먹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또 그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이 부분에서는 나의 스승이다.


 누군가 내 감정을 물어봐 준 사람도 없었고, 설사 내가 얘기했더라도 수용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리라. 그래서 난 어느 때부터 내 감정을 모르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지. 거절감이 싫어 제안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다 풀린 아들이 번외편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부모 참여수업이 끝나고 아래학년 동생들도 샌드위치를 구매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자기 샌드위치인 탕후루 샌드위치가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비쌀지라도 생크림 듬뿍 들어가고 치즈볼까지 서비스로 주는 자기 샌드위치를 제일 좋아했다고 전해주었다. 뭐.. 선택의 기준은 모두 다르니 그 아이들도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리라. 우리 아들은 이렇게 서비스도 잊지 않는 탕후루보다도 더 달콤한 아들이다.


2024년 6월 13일 정읍 비밀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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