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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Aug 15. 2023

알고 듣는 것은 얼마나 다를까?

현대음악 취미화 프로젝트 (1) - Für Alina

현대음악과 친해지기 위한 첫 번째 여정. 무엇을 알아야 음악에 공감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알아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난 이 매력적인 세계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은 것이지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편안한 감상이 가능한 곡을 준비했다. 사소한 앎이 감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4가지 단계를 준비했다. 


1단계. 악보 없이 감상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TzIZPZN5K60

작곡가도 모르고 연주자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서 음악을 들어보자. 무엇이 들리는가? 사실 이런 물음을 접하면 '뭘 대답하라는거지?'라는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셀프로 대답해보자면 나는 첫 번째로 낮은 것과 높은 것이 들린다. 낮은음은 처음 등장하고서는 흩어져버렸고, 위의 높은음은 계속 등장한다. 높은음들은 진행되다가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쉬어가기도 한다. 음악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높고 낮음을 인식할 수 있는 당신, 이미 분석왕이다. 


분석은 이렇게 사소한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 곡에서 가장 큰 특징을 가지는 매개변수는 무엇일까? 함께 감상한 청자들에게 물어보니 리듬, 음역, 음색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나는 그중에서도 리듬이라고 생각했다. 진행되다가 멈추는 느낌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이 정답이니까!


2단계. 악보를 보며 감상해보기

이 곡을 현장에서 처음 감상했다면 어땠을까? 매개변수를 생각해보고 싶어도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가 훅 지나가버렸을 것이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음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악보를 보는 것이다. 이번엔 악보가 있는 영상으로 음악을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jvXy69eF__Y&list=RDjvXy69eF__Y&start_radio=1

미리보기만 봐도 눈에 띄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음표에 기둥이 없고, 하단의 오선이 끊겨있고, 박자표도 없다. 처음 보는 형태에 당황하지 말자. 어린이처럼 받아들여보기. 기둥이 없는 음표이지만 까만 머리와 하얀 머리는 구분해놓은 것을 보니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었으면 했던것 같다. 감상할 때는 르네상스 음악인가 싶었는데, 악보의 형태를 보니 현대음악이긴 하다. 빠르기말에는 'Ruhig, ergaban, in sich hineingorchend'라고 쓰여있다. '차분하고, 숭고하고, 내향적인'이라는 뜻이다. 작곡가는 이런 큰 틀만 주고 나머지는 연주자의 재량에 맡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패턴이 보인다. 검은색 머리의 개수가 마디를 지날수록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개수를 확인해보니 8개까지 늘어나고 다시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악보를 보지 않고도 멈추는 타이밍이 점점 늦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면 매우 뿌듯해해도 좋다. 듣기만 해서는 인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악보 분석'을 생각하면 음정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직관적인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3단계. 곡 배경 알아보기

이쯤 되면 '무슨 내용의 곡이길래 이렇게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 마련이다. 독일어로 된 이 곡의 제목은 <Für Alina>. '알리나를 위하여'라는 뜻이다. 작곡가는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친구의 딸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고 한다. 그 가정은 모종의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딸에게 헌정했지만 사실은 딸과 생이별한 엄마를 위로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감상평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 떠나는 젊음의 생생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4단계. 작곡가 알아보기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 에스토니아

이 곡의 작곡가는 아르보 패르트라는 사람이다. 패르트의 초기작품은 12음렬을 사용한 음렬주의 음악이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듣기 힘든 음악 중에 최고봉'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의 음악은 객관적으로도 듣기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Für Alina<가 패르트의 초기 작품은 아니겠구나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패르트가 어려운 음악을 작곡하던 시기의 에스토니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었는데, 패르트는 소비에트 연방에 염증을 느꼈다. 동시에 음악적 한계를 느꼈고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시대의 폴리포니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의 패르트 음악은 아주 단순한 화성이 쓰이게 되었고 패르트는 이런 작곡기법을 '종의 울림'이라는 뜻을 가진 '틴틴나불리'라고 칭했다. <Für Alina>는 틴틴나불리 스타일을 최초로 선보인 곡이었는데, 혹시 음악을 감상하며 종을 연상한 독자가 있다면 마음껏 뿌듯해하자. 


작곡가의 특징까지 알아본 지금, <Für Alina>를 다시 한번 들어본다면 더 많은 공감으로 음악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오늘의 음악을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이라고 소개했지만, 누군가는 이 음악이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혹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 음악을 감상했을 수도 있겠다. 언제나 강조하겠지만,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다. 음악가들이 한 말이 모두 정답이라고 맹신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들이 느낀 것이 곧 정답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분석이니까!



이 콘텐츠는 팟빵 '음악과 지성사'에서 들으며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https://app.podbbang.com/ch/episode/1783350?e=2458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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