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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Apr 14. 2022

김광석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광탈과 함께 멘탈을 잃은 취업준비생, 영화 "클래식"을 보다

- 2019년 9월 11일, 왕십리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쓴 글

오늘의 영화: 클래식, 2003

오늘의 음악: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by 김광석


아침부터 계속해서 헛구역질하느라 한 끼도 못먹기도 했고 하필이면 컨디션도 안좋은 이런 날, 30분 단위로 이곳저곳 불합격 통보가 나는걸 보고 널뛰는 기분 탓에 힘든 하루였다. 몸상태는 최근들어 최악인데 놀고싶은 마음은 가득이고 할 일은 많고 기분은 나빴다. 결국엔 제대로 놀지도, 일하지도 못한 하루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몰려왔다. 몸을 좀 지치게 하면 머릿 속을 채우는 여러가지 잡생각들도 사라질까 하는 기대를 했다. 밤 11시가 다되어가는 시각. 나갈까 말까 고민을하다 에라이 어차피 잠도 안 잘거면서, 하는 생각과 함께 따릉이를 빌렸다. 성수대교에서 마포대교까지 왕복 25km 라이딩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불쾌한 생각들도 씻겨내려가기를 바랐는데,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40여일 전만 해도 이런 상태가 되기가 무섭게 알콜의 힘을 빌렸을텐데, 술을 먹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차분한 노래를 들으며 좀 진정해야겠다는 생각에 멜론에서 김광석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제일 위에 있던 곡은 하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다. 좋은 곡이다. 가사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던 시절부터 김광석의 무심한 듯 건조한 목소리와 기타 선율이 좋아서 듣곤 했던 곡이다.


나이가 들고 가사를 어느 정도나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는 의식적으로 피한 노래기도 하다. 가사를 곱씹을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어진다는 이유에서. 재작년부터 작년까지의 기간에는 더더욱. 그러다 보름 전 친구와 함께 갔던 청계천에서 꽤나 노래를 잘 하는 버스커가 이 곡을 부르는 걸 들었다. 그땐 그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예전보다 내상이 덜했다. 오히려 굉장히 낭만적이라고 느꼈다. 그때도 괜찮았으니까 지금 들어도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에 재생버튼을 누르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랑을 했길래 이런 곡을 썼고, 유재하와 김광석이 있던 그 시기엔 무슨 감성이 존재했기에 이런 노래가 유행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80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더라면 꽤나 힙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사실 플레이리스트엔 이 곡 말고도 '서른 즈음에',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같은 다른 유명한 노래들도 한껏 담아놨는데, 첫 곡이 너무 강력한 탓에 결국엔 한 곡 재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30분 넘게 같은 곡을 들으면서 머릿 속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우울한 생각은 떨쳐버리고 이 노래를 어쩌다가 듣게됐지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 클래식. 클래식이구나. 클래식을 처음봤던 건 아마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을 중학교 시절이다. 무슨 과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다. 그 때의 나는 조승우보다 조인성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조인성의 분량이 적었던 것에 툴툴거리며 친구들에게 불평했던 것 같다. 당시엔 그닥 잘생겨보이지도 않았던, 지금은 앓다 죽을, 그닥 잘생기지도 않은 조승우가 왜 저렇게 많이 나오는지도 의문이었고.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영화나 다시봐야겠다 싶었다. 다시보는게 몇번째인지 기억도 안날만큼 여러번 봤던 영화지만, 이미 늦은 시각이라 영화가 다 끝나면 오늘이 지나고 내일일테지만, 자기 전에 조승우라니... 이 우울함을 떨쳐버리는 데는 최고잖아? 영화를 틀자마자 방금 전까지 슬픈 노래 들으며 감상에 젖었던 모습은 금새 사라졌다. 내 배우의 파릇파릇한 23살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저 행복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조인성의 연기와 손예진의 미모, 이기우의 피지컬은 서로 다른 의미에서 모두 충격적이다.


준하와 주희에 이입하면서 보는  아니라 그저 조승우 영상화보집이다 생각하며 봐서 그런가 예전에 봤을  처럼 그렇게 먹먹하진 않았다. , 적어도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기차-카페-강까지의 후반부에서는 코가  찡해졌다. 사실은 코가 찡한 정도보다 조금  청승맞았다.


몇년 만에 주희를 만나기로 한 준하는 만남의 장소였던 카페에 미리 가본다. 자신의 상황이 부끄러워서였을까 아니면 혹시나 주희가 미안해할까봐였을까. 어쨌던 자신의 모습에 당당하지 못했던 준하는, 사전 답사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도 주희를 만나러간다. 택시를 타고 카페로 향하는 준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혹은 그때까지도 사랑하는 주희를 한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 주희의 목소리를 한번만 더 듣고싶다는 생각? 바보같은 놈


영화를 보면서 울어서 그런지 꽉 막혀있던 감정이 작게나마 뚫렸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억지로 외면하고 쌓아두는 것 보다는 이런 도움을 받아서라도 제 때에 풀어주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더니 진짜로 그런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진 탓에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감상문을 쓰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긴 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몇 년만에 블로그를 다시 찾았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도 한번 더 가다듬고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언제부턴가 한 동안 긴 글을 전혀 쓸 수가 없었는데, 어느정도 다듬어진 것 같은 문장을 써내려가는 내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다시 간간히 글을 써야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기타를 배우고 싶다. 하모니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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