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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Apr 16. 2022

김윤아 - Going Home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모르는 이야기

오늘의 노래: 김윤아 - Going Home



1)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안 그래도 우울한 하루를 예상하던 중이었는데 비까지 내린다. 새벽 두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겨우 잠에 들었고, 오늘은 간만에 늦잠을 자도 괜찮은 날이었는데... 일찍 일어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다. 사실 이 꿀꿀한 기분이 비가 내리는 오늘의 날씨 때문인지, 어제의 대화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냥 날씨 탓을 하고싶은 것 같다.


다사다난한 일주일이었다. 다가오는 주말에 큰 시험을 앞두고 있던지라, 9 to 11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는 간만에 도서관에서의 생활을 했다. 한참 아팠을 때는 도서관에 들어가기만 해도 불안했고 답답했다.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꽉 막히고 창문도 없는 공간, 공기도 안 통하고 사람도 많고,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조금은 날이 서있는 듯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삐죽삐죽 모나있던 내가, 누구 한 명 걸리기만 해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던 내가, 정말 큰 사고를 칠 것 같았던 공간이기에 의식적으로 피해다녔던 곳이다.


최근의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많이 괜찮아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했고, 실제로도 열심히 공부했다. 딱 5분만 얘기하고 공부하자 해놓고는 삼십분 남짓한 시간동안 친구와 떠들며 박장대소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2500원짜리 김밥을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도서관 벤치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예전 같으면 듣자마자 분노에 휩싸였을 소식을 듣고서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겨버렸다. 다시 내가 사랑했던 내 자신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화요일 밤이었다. 받아선 안 될 연락을 받았던 것도, 걸어선 안 될 전화를 했던 것도. 밤 11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 공부와 운동에 지쳐 매트리스에 널부러져 있던 시간, 미래에 대한 걱정과 약간의 스트레스에 지쳐있던 시간. 하루 중 내가 제일 약해져있는 그 시간에,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는 마치 오랫동안 연락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시덥잖은 얘기를 나눴고, 늘 그랬듯 나는 다시 남겨졌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말도 안되는 문자를 했던 그 사람이 미웠다. 이렇게 느닷없이 또 연락이 올 걸 알았고, 그 사람은 다시 나를 밀어낼 거라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내가 다시 힘들어질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번호를 차단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미웠다. 간만에 잠을 설쳤다.


수요일엔 오랜만에 가슴이 저린 하루를 보냈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이라는 생각에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향했지만, 결국 하루치 공부를 채 마치지 못했다. 모의고사를 쳤는데, 결과가 연 신통치 않았다. 지금쯤이면 이런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안그래도 답답한 가슴이 더 조여왔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과 식은땀이 버거웠다. 공부하던 책을 덮고, 집으로 향했다. 겨우 잠에 들었다.





2)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탄산음료를 줄이라는 내 말에 그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빨리 죽지, 뭐."... 그 사람의 웃음이 참 슬펐다. 지하철을 타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했다. 악몽을 꾼다고, 잠들기가 힘들다고, 무너진 수면습관에 대해서도 말했다. 누가 보기에도 힘들어야 할 상황에 대해서는 되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불편했다. 신경이 쓰였다. 무슨 마음인지, 무슨 생각인지, 어떤 느낌인지 알기에 섣불리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어줍잖은 위로와 공감은 오히려 해가 될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되려 내게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넸다. 내가 언제 말했나 생각조차 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진심이 담긴 걱정을 건넸다. 그 사람의 눈을 울지 않고 계속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시선을 피했다. 8년. 서로를 알아온 지 어느새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사이,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마저도 다 알아버린 사이, 눈빛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이라서, 그 사람이 내게 건네는 위로가 참 좋다. 내가 정말 듣고싶었던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서, 그의 위로가 때로는 참 싫다.


그 사람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어제 그 일은 해결이 잘 되었는지, 하다못해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가 궁금했다. 그간의 공백이 무색했다. 내게 일어난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 사람이 내게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내 응석도 투정도 다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지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과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 역시 뭔가 진지한 말을 건네려했다. 그가 어느정도 운을 띄웠을 때, 나는 시험을 핑계로 그 사람의 입을 막았다. 이틀의 유예기간을 얻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거 뻔히 알면서 이러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났다.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식이라며 욕을 했다.





3)

그 어떤 때 보다도 매력적이고 건강했던 내가 그 사람을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하던 그에게 해줄 말이 없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부서지고 고장나도 내가 다 고쳐줄테니까 괜찮아. 망가졌다고 슬퍼하지마. 언제든 나한테 돌아와서 고치면 되니까 아무런 걱정하지마. 다 괜찮아질거야. 괜찮을거야."... 그는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고 나는 그런 그를 말없이 토닥였다. 나는 누구보다도 확신에 차있었다. 나의 능력도, 나의 미래도, 그 사람과 나의 관계도 어느 하나 의심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1년 뒤의 나는 꿈을 잃었고, 자신감도 잃었고, 그 사람도 잃었다.


방황했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하철을 타는 게 힘들었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했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삶이라는게 존재할 지 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매일 악몽을 꿨고, 잠들기가 힘들었고, 한 시간에 한 번씩은 꼭 잠에서 깼다. 교실에만 가면 숨이 막혔다. 강박에 가까우리만큼 공부를 했다. 일상이 버거웠다. 배부름을 느끼지 못했다. 수업에 나가지 못했다. 결국 휴학계를 제출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나 매일 스스로를 시험했다. 매 순간마다 최악을 경신하던 내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친구들과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상대가 위로를 건네면 화가 났다. 대체 뭘 알고나 하는 소리냐며 짜증을 냈다. 상대가 슬퍼하면 더욱 더 화가 났다. 지금 이렇게 아프고 힘든건 나인데, 왜 그들이 슬퍼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가 아무렇지 않으면 왜 날 이해하지 못하냐며 분노했다. 폭언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놓고는 그 다음날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끔찍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하루종일 울었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 나는 끝도 없이 망가졌다. 그 우울과 분노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매일 밤 자기 전이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일상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젠 진짜 괜찮아지려나보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좋은 기운을 많이 얻었다. 서울생활에 다시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바다 건너 저 멀리의 그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핑계로 전화를 했다. 우리는 며칠 간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사람과의 연락이 잦아질수록 나는 더 많은 것을 기대했고 더 외로워졌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괜찮지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상태를 설명했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을테니 서로 받아주지 말고, 각자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알겠다는 그 사람의 담담한 대답과 함께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가끔 소식이 들려올 때, 그 사람을 닮은 사람과 마주할 때, 함께 갔던 장소에 갈때면 마음 한 켠이 불편했지만 끝까지 참았다. 친구들과 연애얘기를 할 때는 그 사람이 생각나서 많이 울기도 했고, 그런 날이면 보고싶은 마음에 전화 버튼을 쳐다보기만을 수십 번 넘게 반복했다. 약간의 고비와 함께 상반기가 지나갔다. 그 사람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도, 많이 힘들어한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운동을 시작했다. 언젠가 마주칠 인연이라면 적어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만나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후회했다.





4)

주말에 걸쳐서 시험을 치렀다. 일요일 시험이 끝나고 고사장 근처의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그 사람은 조금은 조심스럽고 조금은 어색해보였다. 정작 아무렇지 않은 건 내 쪽이었다. 습관처럼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팔짱을 꼈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둘이 함께 자주 먹던 메뉴를 시키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콜라와 에이드도 시켰다. 시험을 치며 잔뜩 예민해져있던 나는 답답한 마음을 가득담아 그 사람에게 하소연했다. 그는 진심으로 내 기분을 맞춰주기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나는 훨씬 괜찮아졌다.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만나자고 해놓고는 결국 그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무슨 말을 할 지 어떤 표정으로 말할 지까지 연습했던 만남이었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끝이라고 되뇌이며 갔었다. 그런데 욕심이 났다. 내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그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자기도 지금 힘든 상황일텐데, 내 응석을 받아주는 그 사람이 욕심났다.


짧은 데이트를 뒤로하고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다음을 약속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그 사람의 상태를 핑계삼아 함께 걸었다. 어디까지 걸어갈 것인가 하는 주제로 길거리 한복판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예전의 우리로 돌아간 것 같아 들떴다. "여기 예전에 우리 이거했던 곳이잖아, 저기는 그때 거긴가?" 새삼 5년의 시간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투정부릴 때 지쳐보이던 그 사람의 표정과 갑자기 줄어든 말수, 내 손을 대하던 방어적인 태도, 지하철 탈 생각에 쉬던 한숨, 신나서 재잘거리며 말하는 나를 진정시키던 목소리, 잘가라는 인사와 함께 뒤돌아서선 축 처졌던 어깨. 그리고 아무 내색도 않았던 그 사람. 내가 아팠을 때를 다시 곱씹어봤다. 내가 욕심부렸구나, 정말 내 욕심이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 사람은 오늘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 집에 가면 또 다시 우울이 찾아올텐데, 잘 버텨내려나... 지금은 나도 그 사람도 서로를 받아주기엔 힘든 상태라는 걸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하는 내가, 그 사람을 앞에다 두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하소연을 했다. 그 사람의 오랜 아픔보다는 나의 당장의 기분이 우선이었다. 오늘의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의 오늘도 힘들었을텐데, 미리 생각하지 못한 내가 미웠다. 나는 결국 그의 하루도 망쳐버렸고, 그의 하루를 망쳐버렸단 생각에 나의 하루도 망쳐버렸다. 금요일의 그 사람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나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겠지.





5)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사람과 통화를 했다. 우리는 여기까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문득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리는 이렇게 또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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