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함의 덫:중립이라는 이름의 회피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나면 본능적으로 재빨리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는 척한다.

판단은 미음 속에서 이미 끝났지만, 말을 아낀다. 그러곤 의견을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야."
"둘 다 문제가 있어."
"잘 모르겠어.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이 말들은 얼핏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로 보인다.

적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교양 있는 시민'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물어야 한다.

이러한 중립은 정말 사유의 결과인가? 아니면 피로의 산물인가?


MIT의 심리학자 Sherry Turkle
“네트워크는 우리를 연결하지만, 진정한 기대와 공감은 점점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지 않음’을 교양으로 착각하고,

‘참여하지 않음’을 성숙함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진짜 성숙은, 사유의 결과로 목소리를 내는 데 있다.


양비론과 판단 회피의 시대


이른바 '양비론'은 오늘날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정치는 피곤하고, 사회는 복잡하다.

정보는 넘치고, 매체는 이 모든 것을 토해내 듯 재생산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무 편도 들기 않기'를 선택한다.


‘마비 기능(Narcotizing Dysfunction)’ : 정보는 넘치지만 사람들은 무력해진다는 뜻
-미디어 이론가 라자스펠드와 머튼

정보는 많은데 생각은 줄어들고, 판단은 회피된다.


이처럼 '양비론'은 가장 쉬운 선택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편리한 결론이 숨어있다.

판단하지 않는 척, 판단한 채로 남아 있는 것.

또, 인지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확증편향'이라 부른다.


확증편향 위키백과

'확증편향 벗어나기'에 도움을 주는 유튜브


즉, '다 문제가 있어'라는 결론 역시 의식적 비판이 아니라

사유를 회피하려는 습관, 혹은 생각의 게으름일 수 있다.


“인터넷은 우리를 분산되고 피상적인 사고로 몰고 간다”
『The Shallows』의 저자 니콜라스 카


쿨한 중립은 깊이 있는 사유가 아니라,

‘얕은 사고’의 결과일 수 있다.


'쿨해 보이는 중립', 그것은 교양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적이지 않음'을 미덕처럼 배워왔다.

무엇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

그런 자세는 확실히 고상해 보인다.

그러나 그 '고상함'이 정말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인지,

아니면 연루되지 않으려는 방관의 다른 이름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대상이 많아질수록 공감은 줄어든다”
심리학자 Paul Slovic


실제로 우리는 너무 많은 갈등, 너무 많은 뉴스 속에서

감정적 거리 두기와 침묵으로 무감각해지고 있다.


'나는 중립이다'라는 태도는 사실상 불의 앞에서 침묵이 될 수 있다.

구조적 불평등이나 차별과 같은 문제 앞에서,

'모두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결국 강자에게 유리한 침묵을 제공하게 된다.


한겨레는 '혐오 정치'가 구조적 차별을 강화하며,

'중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침묵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라고 지적한다.

출처 한겨레 - 혐오정치의 시대를 생각한다


“정치혐오는 강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 비판적 참여가 줄어들수록 권력은 더 은폐된다.”

언론학자 강준만

이처럼 중립을 가장한 쿨함은

어느새 '불편한 진실로부터 거리두기'가 되고, 구조 유지에 편리하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용은 침묵이 아니다


흔히 '중용'이라고 하면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태도'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유학의 『중용』은 이렇게 말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하고, 드러난 뒤에도 절제에 맞게 드러나는 것을 '화'라 한다.)


감정이 없는 상태가 중용이 아니다.

감정을 절제하여 적절히 드러내는 태도, 그것이 중용의 핵심이다.

이는 침묵이나 회치가 아니라, 깊이 사유한 뒤 올바른 순간에 말할 줄 아는 용기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무해한가?


때로 침묵은 미학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침묵조차 힘을 가진다.

누군가의 말이 필요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방조가 될 수 있다.

불의 앞에서 중립은 종종 불의를 강화시킨다.


나는 강하지 않다.

하지만 단단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생각하기로 했다. 말하려고 노력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불완전한 언어로라도,

나는 나의 사유에 책임을 지고 싶다.

쿨함이라는 교양이 유행할 때, 나는 묻고 싶다.


그 침묵은 정말 생각의 결과인가? 아니면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결과인가?


한 Reddit 사용자도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기엔 SNS 좋아요에 중독됐고,
지금은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
SNS는 심리적으로 위험하다.”


쿨함을 가장한 무감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주 작고 불완전한 말 한 줄에서 시작된다.



"추천 도서"


1. 판단하지 않는 사회, 생각 멈춤에 대한 비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저 | 청림출판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오히려 인간의 깊은 사유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

"깊은 독서와 사고가 줄어들수록, 우리는 더 '쿨한 중립'에 빠지기 쉬워진다."


『비판적 사고 도구들』

빈센트 루기에로 저 | 김영사

‘양비론’이나 ‘모두를 탓하기’가 얼마나 쉬운 회피인지, 훈련된 사고와 논증 통해 보여줌

후반 “사유의 책임” 추천


2. 중용의 오해와 진짜 의미

『중용, 절제의 미학』

신영복 | 돌베개

유학에서의 ‘중용’이 결코 침묵이나 양비론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중심을 잡는 실천임을 알려줌.

중용의 핵심 구절과 현대적 해석이 필요할 때 강력 추천.


『논어, 그 일상의 정치학』

백상경제연구원 인문학팀 저 | 위즈덤하우스

“군자는 결단하고, 소인은 망설인다”와 같은 구절에서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숨은 소극성과 대비.


3. 쿨함이라는 태도에 대한 철학적 비판


『냉소사회』

김누리 저 | 생각의 길

쿨하고 냉소적인 태도가 어떻게 시대의 병이 되었는지를 한국 사회 맥락에서 풀어냄.

SNS에서의 ‘노선 없음’ ‘비판만 하는 사람’ 등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음.


『진실에 관하여』

미하엘 슈미트잘로몬 저 | 휴머니스트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에 무관심한 태도를 해부.

"상대주의와 양비론이 진실의 무게를 덜어줄 수 없다"


4. 표현의 용기, 불완전한 말하기의 가치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저 | 어크로스

혐오 표현 문제를 다루지만, 동시에 “말할 용기”와 “생각의 윤리”를 강조.

판단을 피하며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선택인지를 보여줌.


『어떻게 말할 것인가』

김하나 저 | 위즈덤하우스

불완전한 자신의 말이라도 세상을 향해 꺼내야 하는 이유를 잔잔하고 강하게 전하는 책.

매거진의 이전글알 권리인가, 분노 소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