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아무 글도 쓸 수 없다

with a Cough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일주일째 빈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있다.

깜박이는 커서는 이 시대 여성 창작자들의 불안이자, 불빛과 같다.

여러 생각들이 스치고 문장은 떠 오르지만, 어느 것 하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아 두렵다.


오늘 즐겨 보는 알O북스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 글이 안 써진다'라고 했다. '나는 지금 글쓰기를 멈추었는가'하고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매일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후, 글을 써 왔다.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글을 썼고, 그림책도 냈다.

그럼에도 10월 4일 이후,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사실 써둔 글이 있지만, 결론이 이어지지 않아 그만두었다. 불완전한 글을 올리고 싶지 않았고, 그러자 하고 싶은 말이 사라져 버렸다.


대한민국의 최대의 명절이 지나갔다.

생업으로 바쁜 시기에 악화된 천식은 이제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심해졌다. 피로하니 신경질이 따라왔다.

몸이 지쳐 버리자 온 사고가 몸을 돌보는 것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식구들은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휴일 내내 밥을 하고 치우는 일에 파묻혀,
빌려 둔 책도 읽지 못해 기한이 지나 반납했다.
수채화로 그리던 피망도 망해버렸다.


성실하게, '열심'을 내다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정체기에 부딪혔다. 슬럼프다....


어릴 때 이런 시기가 오면 흥미를 잃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초기에는 제법 재미있게 배우다가 어느 순간 나의 결과물에 만족스럽지 못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당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고비를 잘 넘겨야 성장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침을 하기 전, 목구멍 속이 간지럽고 숨을 쉬기 곤란해 답답한 마음은 요즘 커서를 바라보는 마음을 닮았다. 몸이 병이 났다지만, 어쩌면 마음도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


오랜 휴일 속에서 늘 해오던 패턴이 깨지고 아무런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노동은 허무하게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나는 밥솥과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와 다름없는, 기계처럼 노동만 제공하고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업에 벗어날 수 없다는 고립감과 절망감.


쓰고 싶다. 미치도록 쓰고 싶다, 이 부당한 감정을.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 혹은 괴뢰사에게 덜미를 잡힌 꼭두각시가 되었다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자들 중에서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까.
'집안일에 답답증이 나는 나'를 도무지 모르겠다.
마음이 번잡해져 책도, 글도, 어느 것 하나에 몰입하지 못하는 내가 밉다.



여성을 둘러싼 구조는 오늘도 글을 쓰는 숨을 짓누른다.

집 안의 끊임없는 소음들 사이, 여성의 글은 순간 허락된 진공이다.

가스불 위에서는 국과 찌개가 끓고 세탁기와 청소기가 돌아가는 동안, 사유조차 사치다.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여 한 조각의 진공상태를 한 편의 글과 바꾸는 일.

그 순간이야말로,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다.


한차례, 기침이 지나갔다.

내 손길을 부르는 소리가 잦아들고 집안은 침묵이 흐르면 깜박이는 커서는 재촉한다.

기침하듯 쏟아내라고.


두려움이 생의 증거로 바뀌는 순간,

써 내려간 글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부디 더럽혀지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