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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크테크 Think Tech Mar 26. 2022

팬데믹이 사회에 남긴 후유증, ‘모빌리티 격차'

나는 이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글은 「모빌리티 정의(2019)」를 읽고 그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출처 unsplash.com, Erik Mclean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어느 때 보다 조심스러워진 오늘,

어디서 오는 것인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책은 나 스스로 외출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한 선택이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 현실이 오히려 자신을 숨 조여오게 만들기도 해요.


이쯤이 되니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내 맘대로 어딘가로 ‘이동’ 할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요.



나는 이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출처 unsplash.com, Asael Peña


이동의 사전적 의미부터 보자면, ‘이동(Mobility)’사람과 사물의 이동을 더욱 편리하게 만드는 이동 수단과 각종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사람을 이동시켜주는 교통 시스템과 교통수단 분야, 그리고 데이터를 전송시켜주는 수단으로 IT분야 등에서 활발히 언급되고 있지요. 또한, 차량 공유(카셰어링) 서비스, 자율주행 자동차, 공유자전거·킥보드 등 최근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어느덧 우리 사회에도 점착되어 친숙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출처 ‘모빌리티’ - 두산백과)


그리고 사람의 본질을 이동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동적 존재론(mobile ontology)’이동을 존재, 공간, 주체, 권력의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보는 이론이지요. 바꿔말하면, 사람이 ‘이동하는 존재’, 즉 이동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죠. 즉,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떤 조건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인가 또는 멈추는 것인가를 분석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권력을 갖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권력을 쥘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동적 존재론자의 눈을 통해 세상과 이동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동의 자유는 곧 우리의 ‘권리’이며 ‘평등’이에요. 이 이동의 권리와 이동의 평등이 보장 여부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빌리티 정의(Mobility Justice)가 결정되는 것이죠. 「모빌리티 정의」의 저자 미미 셸러(Mimi Sheller)는 이 이동의 권리와 평등이 후기 근대 또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사람의 계층을 나누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계층화 요소로 해석해요. 그러나 현실은 이 모빌리티 정의가 모두에게 실현되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상품’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모빌리티 정의에게 팬데믹은 교통사고와 같았을 거에요. 예상치 못했으며 심지어 치명적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 가장 큰 희생자 중 하나는 이륜차 배달 노동자였습니다. 팬데믹 이후인 2020년 1~6월의 온라인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그 전년 동기간과 비교해서 75%가 증가했고, 이륜차 사고 사망자 또한 13.7% 증가하였습니다. 덧붙여, 삼성화재 부설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배달 대행과 퀵서비스 이륜차가 개인용 이륜차와 비교해 사고율이 212%로 15배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렇듯 사고율과 사망사고가 증가하는 원인을 찾아 들어가 보면, 팽창하는 배달 수요, 격화되는 배달 경쟁, 배달 건수에 기인한 임금 지급 구조 등이 해당될 수 있는데요. 배달 노동자는 자신의 이동을 잠시 멈추며 스스로 위험에 내모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 결과가 비극적인 통계로 드러난 것입니다. “권력을 쥐지 않은 이들은 이동과 머묾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모빌리티 정의의 저자가 던진 이 말처럼, 팬데믹을 지나며 야기된 새로운 격차인 ‘모빌리티 격차(Mobility Gap)’는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남긴 후유증처럼 우리 사회의 후유증처럼 남게 되었습니다.



‘모빌리티 격차(Mobility Gap)’, 그 갭(Gap)을 줄이기 위한 노력


바이러스와 같은 모빌리티 격차를 치료하고, 모빌리티 정의를 회복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첫째, 교통 시스템은 계획단계부터 이동의 수단인 차량이 아닌 이동의 목적이 되는 사람 중심의 교통계획이 이루어져야 해요. 둘째 이동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고 그들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해요. 셋째, 이동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신 역할을 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해요.


1. 사람 중심의 교통계획


「Transport Justice」의 저자이며 교통계획 전문가인 카렐 마르텐스(Karel Martens)는  ‘사람 중심’을 견지하며 다음 3가지 교통계획을 주창해요.


1.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서 출발할 것
2.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접근성의 최소 기준치 이상으로 향상시키는가에 따라 교통정책을 평가할 것.
3. 자동차 중심의 세제를 통해 교통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소득에 기반한 접근성 보험 제도를 만들 것.


사랑 중심 교통계획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요. 혹시 일상에서 대각선 형태의 교차로를 마주하고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요? 두 번 이동해야 할 수고를 덜어주는 대각선 교차로는 대표적으로 사람을 중심에 둔 교통계획 사례입니다. 우리의 이동시간을 줄여주는 효율성은 물론, 대각선 교차로 특성상 운전자를 주의하게 만들고 보행자의 편의와 안전을 보장하는 효과도 낳은 교통계획으로 평가받아요.


출처 unsplash.com, Ryoji Iwata


그렇다면 대각선 교차로는 보행자에게 실제 어떠한 이점을 주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2013년 대전에서는 질문에 대각선 교차로와 일반 교차를 비교해보았습니다. 대각선 교차로는 일반 교차로에 비해 횡단 중 사고가 36% 낮았으며, 중상 이상의 위험한 사고의 발생 가능성도 24%가 낮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린이 보호구역인 경우 보행 중 사고가 무려 51%가 적게 발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차로 대각선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라고 해요. 교차로 대각선은 1940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보행자보다는 운전자의 편의와 효율에 따라 잠시 자취를 감추게 돼요. 그 후 30년이 지난 후에야 일본 시부야에서 대각선 교차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그 이후 지속해서 대각선 교차로의 효율성과 안전성이 증명되며 보행자 중심의 교통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발맞춰 지금 우리가 접하는 대각선 교차로들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 이동 소외계층의 이동 장벽(barrier)을 낮추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배리어 프리는 장애인, 고령자와 같은 이동소외층의 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장벽을 인지하고

그 장벽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나 시책을 의미해요. 1973년 세상에 나온 UN 장애인 생활 환경 전문가 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 보고서가 배리어 프리의 시효입니다. 이동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지 못하는 이동소외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이 활용되고 있는데요. 그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배리어프리’ - 위키백과)


출처 ‘나빌렌즈(NaviLens)’ 홈페이지


스페인 스타트업 ‘나빌렌즈(NaviLens)’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테크포굿 어워드(2021 Tech4Good Award, 영국)’에서 수상한 기업인데요. 시각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이동권 향상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시각장애인들의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QR 코드를 설치하고 스마트기기를 통해 음성으로 경로 안내를 해주는 것인데요. 미로처럼 복잡한 노선들 속에서 헤매지 않고 필요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며, 건물이나 관광지에서도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개별 가이드 역할을 하는 방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TWUuNbfMEA

출처 소셜벤처 '닷' 유튜브 채널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가 활발히 진행 중이에요. 소셜벤처 ‘닷’이 교통약자를 위해 개발한 지하철 길 안내 키오스크가 바로 그 사례입니다. 이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이 지하철 지도를 손끝으로 읽어낼 수 있도록 점자 키패드를 표현하며, 알고자 하는 정보를 수화를 옮겨 보여주는 기능과,  사용하는 사람에 맞게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구현해 냈어요.


배리어 프리를 구현하려고 하는 기업과 도시는 서로 협력을 맺어 장벽을 허물려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어요. 시민의 사용자 환경을 지속해서 개선함으로써 이동의 권리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곧 다가올 스마트 시티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전시장(showroom)을 넘어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이 없는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3. 이동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을 위한 백신, ‘새로운 사회계약’


출처 unsplash.com, Sargis Chilingaryan


이동을 통제한다는 건, 풍선 한 부분을  누르면 그만큼 다른 부분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와 같아요. 누군가의 이동을 통제하면 그 이동을 대신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이번 팬데믹 시기에 가장 대표적으로 배달 노동자들이 그러했어요. 초단기 임시계약직 경제라 불리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탄생과 동시에 가장 유망 받는 산업으로 떠올랐고 해당 산업의 기업들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냈어요. 그리고 그 시장규모에 비례해서 플랫폼 노동자 숫자 또한 빠르게 증가했어요.


미국에서도 국내 상황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시장 중 ‘우버(Uber)’, ‘리프트(Lyft)’ ‘아마존 플렉스(Amazon Flex)’, ‘도어대시(DoorDash)’와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배달 서비스 시장이 성행하며 플랫폼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어났어요. 문제는 새롭게 생겨난 산업인만큼,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았으며 애매한 위치에 있었고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저임금, 보험, 복지혜택과 같은 기초적인 사회계약도 없었지요.


2020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초적인 사회계약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있었어요. AB5라는 이름으로 발의된 이 법안은 우버 운전기사를 기존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 형태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여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제한과 같은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하지만 AB5 법안은 플랫폼 기업과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같은 해 11월 주민발의안(제22호, Proposition 22) 투표 끝에 노동자로 분류하는 시도가 좌절되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운전자에게 최저임금 120%를 보장, 1일 노동시간은 12시간으로 제한, 의료보조금·사고 시 치료비·산재보험·사망보험금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작은 희망도 남겼다는 사실이에요.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감내해야 했던 가장 큰 불편함은

누군가는 움직일 수 없으며, 누군가는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몇 안되었던 팬데믹 속을 지나가는 지금,

그동안 나 또는 타인에게 어떠한 모빌리티 격차가 있었는지 똑바로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모빌리티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사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해요.


참고

[도서] 모빌리티 정의, 미미 셸러 저/최영석 역, 앨피, 2019.12.

[도서] 모빌리티 사유의 전개, 김태희 외, 앨피, 2019.02.

[사전] ‘모빌리티’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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