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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 ryu Nov 22. 2022

의지와 운명 속에서

롤라런

  코찔찔이 독문학도 시절 서평들을 올려봐요. 대단한 통찰력은 없고 순수함은 있어요.


이건 가장 마음에 드는 쪽글.  생각은 여전하다. 인생은 의지와 운명의 합작. 후회는 의미가 없다.


  며칠 전, 학교가는 길 교통카드를 빠뜨리는 바람에 1분정도 늦게 나왔다.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 역까지 가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었고 그 결과 15분에 한 대 다니는 지하철 또한 놓쳤다. 결국 교통카드를 놓고 온 아주 사소한 실수가 나비효과가 되어 결국 지각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지고 왔다. 살다 보면 이런 일들을 자주 겪는데, 누구나 ‘아!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이라는 안타까움과 후회를 한다. 또한, 돌이킬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혹은 ‘그 일이 그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상상을 한다. 영화 《롤라 런》은 바로 우리의 이런 무의미한 상상과 후회를 콕 집어서 보여주는 영화다.

  세 부분에 나오는 등장인물, 사물, 배경 등은 모두 동일하다. 차이점은 각 구성요소가 마주치게 되는 시간적 타이밍뿐이다. 그저 좋은 시점이었는지 아닌 지와 주인공의 결정과 행동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시간적 타이밍은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운명’ 혹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개인의 결정은 스스로 선택 가능한 온전한 인간의 영역이다. 운명과 의지. 우리의 인생은 이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가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을 가지는 동시에 서로 뒤섞여 혼재해있다. 고유의 영역을 가진다는 말은 주어진 운명을 의지로 거스를 수 없을뿐더러 운명으로 의지를 짓밟을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뒤섞여 있다는 것은 인생이 운명으로만 아니면 의지로만 이루어질 수 없으며 둘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의지로만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자만이고 어떠한 의지도 없이 운명에 순응하고 흘러가든 사는 것은 태만이다. 이 영화는 우리 세상이 의지와 운, 둘 중 하나만으론 살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최대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전철 안 부랑자나 계단 위의 소년처럼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얼마든지 우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롤라는 계속해서 달렸다. 포기하지 않고 순간순간 결정을 내리며 내달렸다. 이처럼 우리도 가능한 한 최선의 길을 간 뒤, 그에 뒤따르는 결과가 어떻든 담담히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즉, 우리가 내린 결정이 초래한 것과 어쩔 수 없는 상황적 우연에 의한 결과 모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세 번째 부분이 없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고생한 우리의 롤라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은 기쁘다. 하지만 카지노에서, 그것도 꼼수 없이 100마르크를  10만 마르크로 불릴 확률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공중전화 앞의 ‘장님’이 마니에게 부랑자가 지나가는 것을 알려주듯이 쳐다볼 가능성 또한 희박하기 때문에 행복한 결말로 이르는 과정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한발 양보해 오히려 실제 현실에선 이런 행복한 결말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어 더욱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그 시작부터 우연이다. 난자가 그 많은 정자 중에 하필 나를 탄생시킨 그 정자와 만났다는 것 그것부터가 놀라운 우연에 의한 시작이다. 또한 그 순간순간의 결정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또한 똑같은 행동을 했어도 순간순간의 상황적인 우연에 따라 다른 결과가 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도박보다 불확실하고 무모하다. 나의 인생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나의 의지와 우연의 합작이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것이 인생이다. 영화 초반 마니는 롤라에게 너만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은 롤라를 비난한다. 하지만 과연 롤라가 제시간에 왔다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을까? 더 최악의 일이 발생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그들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운명의 장난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이라고 후회하고 되돌아 생각하다 보면 끝도 없다. 그 일을 일으킨 또 다른 일을 후회하게 되고 꼬리를 물어 결국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는 바보가 되지 말자. 그저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용적인 측면 이외에도 독특한 내용 구성, 화면 구성, 음향 효과들도 흥미롭게 보았다. 뇌리에 스치는 장면을 화면을 깜빡이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이나 애니메이션을 부분 도입해서 신선함을 준 점, 달리는 장면에서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긴장감과 속도감을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니와 롤라가 슈퍼를 털고 돈가방을 들고 달려 나오는 장면에서는 내용과 맞지 않게 다소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음악으로 낯설게 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두 번 봤으니 비슷한 이야기를 여섯 번 본 셈인데 지루하지 않았고 볼 때마다 새로운 흥미로운 점들이 보여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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