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혹은 한국의 대학원과 다른 점
6월부터 8월 말까지 이어진 길고 아름다웠던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됐다. 스웨덴 대학교는 여름방학이 긴 대신, 반대로 겨울 방학이 없다시피 하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연시가 크고 중요한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에 학기말 과제를 하고 1월 초에 바로 새 학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을 포함하 많은 나라에서 한 학기가 6개월로 이루어진 데 반해, 스웨덴에서는 한 학기가 10-12주의 두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한번에 여러 개의 수업을 요일별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의 수업을 듣고 이 수업을 마치고 나면 다음 코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3월:개강, 6월: 여름방학, 9월:개강, 12월말: 겨울방학'의 사이클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8월말: 코스1, 11월: 코스2, 1월: 코스3, 3월: 코스4, 6월: 방학' 이라는 학기도, 방학도 더 긴 다소 다른 아카데믹 사이클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엔 다소 헷갈리기도 하고, 얼핏 생각하면 가을학기가 시작한 뒤에 제대로 된 방학이 없어 숨막히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스웨덴 대학원의 공부 스타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나는 한국에서도 석사 과정을 졸업했고, 스웨덴에서 두 번째 석사 과정을 하고 있는 중이기에 이 차이가 보다 극명하게 느껴졌다. 이번 글에서는 양국의 차이를 둘 다 경험한 사람으로서 관찰한 학업 스타일의 차이점과 내가 느낀 장단점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국제지역학을 전공했고, 스웨덴에서는 conflict, violence에 초점을 맞춘 국제학 (Global studies)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기에 유사한 분야 내에서의 학업 구조가 어떻게 차이나는지 보다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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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스웨덴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을 때 놀랐던 점 중 하나는, 학사 행정에 시스템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공식 홈페이지 및 메일을 통해 공지하고 연락을 하고도 모자라 직원들과 교수님, 조교들까지 동원되어 그 누구도 주요 일정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챙기는 한국의 대학원과 달리, 스웨덴의 대학원은 그 누구도 학생이 챙겨야 할 학사 일정을 별도로 팔로우 업 하지 않는다. 정보 자체가 공유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수강신청일이나 전공 선택 수업 소개와 같은 주요 일정들은 홈페이지에 공지가 되고, 때로는 교수님들에 의해 다시 언급되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학생이 '혹시라도 일정을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다. 주요 일정을 놓치면, 학생이 스스로 학과 사무실에 연락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찾거나 -많은 경우 유연하게 대응이 가능하다-, 만약 불가능하면 결론적으로 그건 학생의 책임이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허락된 만큼, 책임도 본인에게 있다.
일정에 관련해서 뿐만이 아니라 공부에 관해서도 그렇다. 스웨덴 대학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출석 체크를 하지 않는다. 참여하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폐가 되는 세미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 여부를 체크하지 않는다. 과제는 제출 기한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기간 내에 내지 못하거나, 제출한 과제가 요구되는 최소 수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최대 다섯 번까지의 재 제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수업에 가지 않아도 되고, 과제 역시 미루고 싶은 만큼 미룰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석을 하고, 과제 제출 기한일 지키지만 때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큰 일이 아닌 것 같은 이유로 과제 제출을 미루거나 출석을 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스웨덴 학생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보다 보니, 그들이 반드시 게으른 게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이들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컨디션이 안좋거나, 가족 행사 등이 있으면 수업을 빼먹는 것은 예사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노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가능한 시간에 수업 자료를 읽고 스스로 공부를 한다. 수업 전에 리딩을 마치고 자신이 다 이해를 했거나, 이미 아는 내용이거나, 강의 자료를 보고 자신의 연구와 구체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면 수업에 안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자에게 아프다거나, 상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결석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혹여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은 이미 유사한 과목을 들었거나 자습을 통해 공부를 마쳤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학부 수업은 이보다는 좀더 강제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적어도 대학원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학업 과정을 설계하고 참여도 역시 스스로 관리하며 그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지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강제성이 없으니 학업 능률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싶어진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스웨덴에서는 모두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 대략 인구의 절반이 고등교육 과정에 진학하며, 일반적인 고등학교나 바로 취업을 전제하는 기술 전문 학교만을 졸업했어도 취업하는 데 어떤 문제도 없다. 반드시 노동직에만 종사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 건축 등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급여 차이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는 정말로 학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만 가는 것이고, 대학원은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고등교육 과정이 모두 공짜라지만, 굳이 직업을 갖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남들이 다 가지도 않는 대학원 씩이나 가는 사람이라면 학업에 대한 열정 혹은 학업을 진행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굳이 강제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고,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모든 것은 남들이 하니까 선택했느냐, 아니면 다른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 선택이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그 결과 스웨덴 학생들은 어릴때 다같이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였던 것처럼 자율적으로 학업과 삶을 꾸려가는 법을 배운다. 얼핏 들으면 마냥 완벽하게 느껴지는 자율적인 스웨덴의 문화에 점점 적응해 나가고 있지만, 때로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해온 강제성 있는 주입식 교육과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학원 교육이 그립기도 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첫번째 항목에서 본 것처럼 스웨덴 대학원생의 생활은 많은 부분이 스스로 하기에 달려있다. 공부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특히 시간 관리는 한국에서든 스웨덴에서든 대학원생으로 지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전공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든 일정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이상 꽉꽈 채워져있지 않고 상당 시간을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동시에 많은 이들이 연구직이든, 과외나 다른 종류의 직업이든 무언가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가끔은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네트워킹을 하는 것 역시 대학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나, 촘촘하게 채워진 규칙적인 학부 과정을 진행중인 친구들과는 달리 까딱 잘못하다가는 정신 차려보면 하루가 지나있고, 공부하다보면 이미 잘시간이 지나있기가 십상이다. 어떤 시기에는 일을 하느라 정작 본업인 학업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성적장학금도 받고, 졸업할 때 논문 상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스웨덴 대학원생들은 어떨까.
많은 스웨덴 대학원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나라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월 60-80만원의 학업 보조금이 있기에 방학 때 돈을 벌어두었거나, 저축이 있는 학생이라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집세를 내고 생활을 꾸리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혹은 40여년 기한의 이자가 0%에 가까운 학자금을 대출받을 수도 있다. 반면, 학기중에 일을 병행하는 이들도 있다. 경력을 위해서든, 아니면 앞서 말했든 대학원의 수업에서 요구되는 공부량이 개인의 선에서 조절 가능하기 때문에 일종의 여유가 있어서든, 많은 이들이 학기중에도 일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알바'뿐만이 아니라 광고회사, 박물관, 혹은 시청 등 다양한 곳에서 제대로 계약을 맺고 일종의 파트타임 회사원으로서 일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존에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하면 최대 15%까지 근무량을 조절해줄 수 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월급이 삭감되긴 하지만, 자신의 고용 상태를 유지한 채로 대학원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스케줄에 따라 20%, 50%, 혹은 80%까지 고용주와 협의하여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의 직장인들이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4시간 이상씩 이어지는 야간 대학원 수업을 듣고 주말에 허덕이며 겨우 과제를 해내는 모습은 이곳에서는 보기 어렵다. 결국 스웨덴 대학원생들이 시간 관리를 더 잘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 시스템이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혹은 체력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아도 되도록 일종의 안전망을 마련해두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대학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이는 대학 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회에서 어디에서든 통요되는 기본 원칙이다. 교수님이든, 행정 직원이든, 대학 총장이든 성이나 직책을 떼고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의장이든, 친구의 할아버지든 마찬가지다. 대학 수업에서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 아무리 평등한 구조를 지향해도,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있는 교실의 특성상 위계가 없을 수 없다. 그렇기에 스웨덴 학교에서는 일부러 더더욱 교수자에게는 낮은 자세를, 그리고 학생에게는 권위에 도전할 것을 권고한다. 물론 교수자 혹은 동료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의견이 틀렸거나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지 말고 의견을 개진하고, 지위와 연령에 관계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것을 장려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수님을 프로페서 누구도 아니고, 미스터/미스 누구도 아니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니 너무나도 어색했다. 교수님에게 헤이 미카엘,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교수님이 근처에 있다고 무조건 목소리를 낮추고 지나가실 때까지 기다리거나, 메일을 보낼 때 보다 정중한 표현이 있는 지 다섯 번 정도 퇴고를 하는 것이 더욱 낯설게 여겨지게 되었다.
교실에서의, 혹은 교실 밖에서의 토론은 언제나 장려된다. 서로의 말을 함부로 끊지 않는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자세다. 스웨덴 사람들은 낯을 가리고 정중하기로 유명하지만, 어디서나 그러하듯 토론의 열기가 높아지면 감정적이 되거나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선을 넘는 발언을 하거나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토론의 자세에 대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토론을 중시하는 문화이지만, 동시에 한국의 교실에서처럼 교수님이 의견을 물었을 때 그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갑자기 책을 들여다보며 딴청을 하는 등의 어색한 적막이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등 토론 문화가 활발한 곳에서 공부를 한 학생들은 때로 스웨덴 학생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소심하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수업시간에 대답을 안하는 거야? 하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하는 미국 친구가 어느 코스에나 한 명씩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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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대학원 문화는 한국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하지만 결국 공부를 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닦고, 사회에 공헌을 한다는 목표는 같다. 특히 석사 이상의 학업 과정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데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공부 자체가 힘들든, 나이가 많아서든,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어서든, 경제적인 이유든, 어쨌든 대학원에 몸을 담고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공부를 한국에서든, 스웨덴에서든, 혹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든 시작한 데에는 각자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사 때문에든, 일정 관리 때문이든, 아니면 한국과는 다른 문화 때문에든 어려움을 느끼는 때가 오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 생각하며 힘을 내려고 한다. 그 어느 곳에서든 어느 이유로든 학업을 이어가기로 선택한 전 세계의 대학원생 동지들 모두 힘 내시길!
(커버 이미지: 스웨덴 예테보리 사회과학도서관, 이미지 출처: higab.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