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시블: 스웨덴에서 집 구하기
스웨덴은 면적 약 52.8㎢로, 대한민국의 10.4㎢에 비해 무려 4배 이상 큰 국토를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인구는 약 천만 정도로 1/5 수준이니, 인구 밀도의 차이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스톡홀름이나 예테보리, 혹은 말뫼같은 대도시 중심부는 교통체증도 꽤 있고, 지하철이나 트램, 장거리 버스같은 많은 사람을 실어나르기 위한 대중교통 수단도 잘 발달되어 있어 큰 도시에서 살았던 이에게 그리 낯설지 않을 만큼의 북적거리는 풍경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대'도시마저 인구가 백만 명 이하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꽉 차다 못해 미어 터지는 지하철, 같은 방향으로 우르르 줄을 지어 지나가는 직장인들, 교복을 입고 다같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몇십 몇백 명의 학생들을 볼 일이 없다. 출퇴근 시간이나 오후에 학교가 끝나는 시간 정도에 잠깐씩 번화가가 붐비긴 해도, 러시 아워를 조금만 지나거나 아니면 조금만 시내 중심부를 벗어나면 바로 한적한 주거 단지가 펼쳐진다. 대중교통으로 30분이 다 뭐야, 15분만 이동하면 바로 건물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한가한 동네가 나온다. 회사와 대학 건물이 함께 있는 공업 단지를 5분만 지나면 5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주거 단지가 나온다. 나름 스칸디나비아에서 큰 도시라고 손꼽히는 곳들이 이러하니, 작은 대학도시나 추운 북부의 도시들은 말할 것도 없이 휑하다.
인구 밀도가 낮을 때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특히 시내 중심부- 극단적으로 높은 곳의 경우에는, 교육, 문화, 공공 서비스 등의 필수 시설들이 모두 밀집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이 시시각각 일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강남 한복판에서 영화가 보고 싶으면 근처에 있는 아무 영화관이나 가면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바로 아무 영화나 볼 수 있고, 24시간 오픈하는 편의점이 블록마다 있고, 동사무소 혹은 도서관이 15분 거리에 있고, 사진관이나 세탁소, 열쇠 수리점같은 때로 필요한 시설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도보 거리 내에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그렇지 않다. 세븐일레븐같은 편의점은 시내 중심부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렵고, 제법 큰 도시라는 예테보리에도 시내에 대형 영화관은 3개 뿐이다. 반면 이곳에서는 서울에서와 같이 인구밀도 그 자체 때문에 고통받을 일은 없다. 길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거나 느리게 걷는 앞사람 때문에 길을 막힐 일이 없고, 지하철에서 생면부지의 남과 전신을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 출근도 하기 전에 이미 사람들에게 치여 하루를 살아낼 에너지를 모두 잃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넓은 땅에 이렇게 적은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사니까, 집 구하기도 쉬워야 하지 않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스웨덴의 전반적인 인구 밀도가 낮은 것은 분명하지만, 약 87%의 사람들이 중남부 지방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그 말인 즉슨 스웨덴의 북쪽 절반은 거의 텅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북스웨덴에도 전통과 개성이 있는 멋진 도시들이 여럿 있다.) 인구 밀도가 낮다는 말은 '국토' 대비 사람이 적다는 뜻이지, '주거지' 대비 사람이 적다는 뜻은 아니다. 말마따나, 아무리 텅텅 빈 땅이 있다 해도,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데 혼자 초가집 짓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또한 대도시 중심부가 아니면 고층 건물 짓기를 선호하지 않고, 고층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에 도시 중신부에서 멀리 살지 않고 싶은 이들에게 스웨덴에서 집 구하기는 정말이지 어려운 미션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생 기숙사가 있어 그마나 좀 낫다. 주거 사정이 어려운 대도시에서는 학생 기숙사도 결코 보장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이 얘기는 뒤에 이어서 하겠다), 그래도 비교적 단시간을 기다리면 되는 기숙사의 존재가 있다. 하지만 가족 단위이거나 홀로 사는 직장인의 경우 스웨덴 도시에서 집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스웨덴 주거 계약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första hand (First hand, 제 1 계약자)와 andra hand (Second hand, 제 2 계약자)가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집을 소유하지 않은 경우 이 두가지 형태의 임대 계약자가 되는데,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제 1 계약자는 말그대로 소유주로부터 직접 계약을 하는 것이고, 제 2 계약자는 제 1 계약자에게서 sub-rent를 하는 형태를 말한다. 많은 단기 거주자들이 이 형태의 계약을 맺는데, 다른 사람이 사는 집에서 방 하나를 임대한다든가, 제 1 계약자가 집주인과의 계약을 유지한 상태에서 일정 기간 그 집에 살지 않을 때 기간을 정해두고 하위 계약을 맺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 1 계약 형태보다 비싼 집세를 내야 하고, 거주 기간에 제한이 있는 등 제약 사항이 많다. 그렇다면 바로 제 1 계약을 맺으면 안되는 것일까?
바로 그게 문제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은 바로 제 1 계약을 맺을 수가 없다. 국적에 의한 차별같은 것은 아니고, 스웨덴의 주거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제 1 계약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의 공공 주거 시스템에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하고, 소위 매물이 나올 때 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던 기간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여 선택권이 주어진다. 한국의 청약 시스템과 조금 비슷한데, 청약에는 대기 기간 뿐만 아니라 저축, 소득, 가족형태 등 다양한 조건이 붙는 것과는 달리 스웨덴에서는 오로지 시간만이 이를 결정하는 요소다. 특히 집을 구매할 때가 아니라 임대를 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조건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요건이 실행되는 배경은 어찌보면 무척 단순한데, 스웨덴의 (특히 대도시 아파트의) 많은 집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준 공공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다. 즉, 내가 월세를 내는 대상이 이 건물의 주인인 김씨 할머니가 아니라 스웨덴 예테보리 주정부가 많은 원칙들을 결정하는 주거 회사 Poseidon인 것이다. 그리고 Poseidon, Bostadsbolaget 등의 회사들이 예테보리 주정부가 운영하는 Boplats에 등록되어 있어, 희망 세입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줄에 서 있었는지에 따라 각 후보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김씨 할머니가 돈을 더 많이 주는 세입자를 고르거나 아니면 집을 깨끗하게 쓸 것 같은 사람을 마음대로 고를 수가 없고, 시스템에 따라 공평하게 더 오래 줄을 서 있던 사람이 우선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집세 인상 폭에도 어느 정도의 법정 제한선이 있어, 기본 렌트를 무작정 높게 잡을 수 없다. 종합해보면, 스웨덴의 주거 문화는 기본적으로 '평등'이라는 원칙을 추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민주의 (사회민주주의, Social Democracy)라는 이름을 통해 오해하는 바와는 달리 스웨덴 사회가 모든 것이 배정되는 공산주의 사회는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많은 부분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다만 국가가 주도하여 (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자의 소외를 최소화하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정치) 민주주의적인 현실화하는 것이 사민주의의 목표이다. 즉, 스웨덴 역시 돈이 많으면 '장땡'이라는 점은 여느 자본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 돈이 많은 사람은 집을 얻기 위해 줄을 설 필요 없이, 그냥 바로 매물을 구매하면 된다. 혹은 높은 집세를 내걸어서 후보자가 많이 나타나지 않는 집을 찾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회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사회를 만들이 위해 노력한다. 이 짧은 글에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의 승리라는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하에서 스웨덴 역시 서방 사회의 주류 질서를 따랐다. 여러 시행착오를 걸쳐서, 스웨덴 사회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경쟁과 도태의 흐름으로 가기 쉬운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원칙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평등의 원칙에 근거한 복지 정책이며, 기다린 시간에 근거하여 거주 결정권을 배정하는 스웨덴의 주거 정책 역시 이러한 원칙과 궤를 같이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돈이 특출나게 많은 사람은 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대한 협의점을 찾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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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기본 5-10년씩 줄을 서 있어야 하는 이 시스템이 달가울 수만은 없지만, 내가 살기로 결심한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고 최대한의 평등을 추구하는 원칙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라는 점은 분명 어떤 면에서 큰 안심을 준다. 입학도 전에 줄을 선지 2년차가 되어서야 얻게 된 나름 좋은 조건의 학생 기숙사도 학생 신분이 끝나면 나가야 한다. 동시에 줄을 선지 이제 겨우 1년밖에 안된 주정부 아파트 사이트는 졸업 후 어디에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지만, 그래도 이 넓은 땅에 내 한 몸 들일 곳이 어디 없겠는가.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 아주 좋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나쁘지는 않은, '라곰'한 나라에서의 집 찾기 여정은 계속된다.
(커버 이미지 출처: Study in Sweden, https://studyinsweden.se/moving-to-sweden/accommodation-budg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