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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Oct 21. 2022

이방인이 필요로 하는 적당한 거리

스웨덴 사람들의 이방인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스웨덴의 인간관계 

해외에 나와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너 그럼 그 나라에 계속 살거야?' 라는 질문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지나 파나마에 살다가, 이제는 뜬금없이 스웨덴에 와서 살기까지 단 한번도 이민을 생각하고 비행기에 올라탄 적은 없었다. 돌아갈 기한이 정해진 학생 시절에도 그랬지만, 해외 취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던 때도 그랬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아예 정착을 해서 살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직장을 구하고 자리를 잡으면 다소 장기간 머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가 그간 이 대륙 저 대륙을 떠돌아다니다가 한 가장 '정착'에 가까운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에서는 언제든 떠날 생각을 해놓고, 스웨덴에서는 나름대로 정착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심지어 스페인어를 전공했기에 스페인어권 국가에 살 때는 언어에 관해 더이상 크게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는데도 왜, 하필 그 많은 나라를 두고 스웨덴을 정착지 후보로 생각하게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할 이유들이 분명 있다. 북유럽 선진국이고, 복지 국가고, 환경이 좋고, 등등. 물론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강도 걱정을 해야 하고, 시시때때로 물과 전기가 끊기는 나라보다는 어딜 가나 깨끗하고 튼튼한 시설이 있는 선진국이 당연히 좋지 않겠는가. 복지는 내가 시민권을 딴 후에야 나와 상관이 있어지는 부분이지만, 교통 인프라 혹은 교육시설 등 단순 거주자의 입장에서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혜택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정착을 고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스웨덴 사람들이다.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고 예의바른 사람들, 그것이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다. 다양한 환경에서 몸을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그 이미지가 모든 경우에 진실이 아닌 것은 물론, 기저에 깔려있는 심리적인 유인이 단순한 수줍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쨌든 스웨덴 사람들은 외부에서 상상하는 일반적인 선입견에서 아주 많이 벗어나는 반전을 가진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스웨덴 사람들이 낯을 가린다고 할 때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초면에 공통점을 찾아서 어 너두? 야 나두! 하고 빠른 속도로 친해지는 스스럼없는 외향형 인간이 적다는 의미가 첫번째이고, 두번째로는 아무리 오랜 시간 알고 지내도 넘기 어려운 일종의 벽이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 오래 산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제아무리 일본어가 완벽하고 심지어 취업과 결혼 등으로 일본 사회에 깊이 녹아들어도, 사회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일본인들 사이에 녹아드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스웨덴 사회 역시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 몇개월 간 다양한 스웨덴 친구들을 만나며 다리에 다리를 건너 주기적으로 만나는 현지 친구들이 한창 많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실은 우연히 나이가 비슷하고 이 도시 마당발인 친구들 몇명과 친해진 덕에 생긴 일종의 예외적인 이벤트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스웨덴 사회생활 별 거 없네!' 하고 이 스칸디나비아 인들의 바운더리를 얕봤다. 이곳에 지낸지 1년이 지난 지금, 스웨덴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느낀다. 갑자기 인간관계가 눈에 띄게 좁아졌다거나, 속해있던 그룹에서 소외당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아니다. 그보다는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많은 스웨덴 사람들의 사회적 반경이 좁아진다. 같이 학교를 다녔고, 같은 도시나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비슷한 사회적 바운더리 내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특히 결혼 혹은 삼보 (결혼에 준하는 스웨덴의 동거 관계) 관계가 생기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과 아주 견고한 그룹을 만들어 그 안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직장 동료나 그 외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이 미덕이다. 다만 늦은 시간까지 함께 회식을 한다거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니까 자연스레 개인적인 삶을 열어 보여야 한다는 등의 의무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사이가 좋더라도, 많은 경우 직장 동료들이 '친구'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바운더리가 견고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의 정착을 생각하게 된 것일까? 내가 엄청난 아싸에 집순이라서 그렇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그 반대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이상과 목표를 공유하는 데서 에너지와 영감을 얻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따로 시간을 내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스웨덴은 그런 종류의 만남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작은 시골 마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바운더리가 분명하고, 일종의 거리감이 있는 만큼 사람들이 서로에게 예의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는 특히 마이너리티인 외국인으로서 사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가 능숙하지 않고, 문화적인 배경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힘의 균형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스웨덴 문화에서는 이러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도 최대한 동등한 발언과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PC)에 있어서 스웨덴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능가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별개로, 이곳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이고, '성차별주의자'라는 말을 들으면 얼굴이 붉어져서 세상 끝까지 항변하고, 타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이 남에게 눈총받을 만한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나 '나와 다른' 사람들 대하는 데 있어 이들은 아주 민감한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 때, 많은 이들이 스웨덴어로 말을 건다. 이 상황은 매우 흥미로운 두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나의 외모가 전형적인 스웨덴 사람과는 거리가 한참 멀고, 많은 이들이 너는 교포 혹은 입양되어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과는 달리 아시아 출신의 사람같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로 먼저 말을 걸어서 이 사람을 제외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스웨덴어로 말을 건다. 그리고 재미있는 두 번째 단계가 있는데, 내가 스웨덴어가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면 그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바로 영어로 언어를 바꾸어 말하며, 동시에 'förlåt, so sorry'라고 사과한다.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 말로, 그것도 상대방이 이 나라 사람일 수도 있다는 넓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인데 도대체 왜 사과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내 생각에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인 내가 스웨덴어를 못하는 것이 상대에게 미안할 일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스웨덴어로 대뜸 말해버려서 미안하다고, 영어로 대화하자고 바로 언어를 바꾼다. 대부분 사람들의 영어 실력이 출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들이 스웨덴어를 하자고 고집하는 일은 잘 없다. 



한국의 경우와 꼭 비교하지 않더라도,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이 현지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모임에 초대받을 수 없는 것은 흔한 일이다. 스페인어권 국가에 살 때 자주 느낀 경험이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열려있지만, 그들도, 그리고 우리도 편안하게 대화가 가능할 만큼의 영어 회화 실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깊은 사회적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출신 국가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고, 현지 사회로의 편입은 더욱 더 어려워진다. 스웨덴의 경우는 비슷한 듯 다르다. 현지 사회의 사교 그룹에 속하게 되기는 정말 어렵지만, 그건 스웨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마을에서 태어나 쭉 살지 않는 이상, 새로운 관계를 개척해야 하고, 꾸준히 모임을 이어나가면서 천천히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반드시 외국인이라서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친 풍랑이 가득한 해외 살이를 하다 보니, 갈등을 싫어하고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천천히 관계를 맺는 스웨덴 식 사회 생활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때로는 끈끈하고 무대뽀인 인간관계도 좋지만,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살 계획을 하기에는 이런 슴슴한 lagom (모든 것이 적당한)의 사회적 거리와 관계도 나름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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