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교육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 시리즈 중에는 ‘인생 직업’이란 책이 있다. 진로에 관한 철학적 조언을 담은 얇은 그 책에는 누군가의 무언가가 무척 부럽다면 그것이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일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2020년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직전에 미국 LA에서 좋은 소식이 온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 이미 수상 가능성이 높아서 인지 방송사에선 시상식을 생중계하며 들뜬 분위기였다. 나는 평소 아카데미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그 시상식만큼은 보기가 싫었다. 뉴스로 전하는 짧은 장면만을 보고 내가 왜 그토록 열심히 시상식 시청을 외면했는지 생각해보았다. 바로 ‘부러움’ 때문이었다.
고3 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셨다. 당시 선생님 중에서도 따뜻하고 친근한 분이었던 선생님과 유일한 진로상담은 대입 원서를 쓸 때였다. 나는 당시 모 대학의 연극영화과 연출부를 지원할 수 있을지 조심스러운 질문을 했다. ‘집에 빽있냐?’ 담임선생님 말씀이다. 밥 굶기 딱 좋은 직업이란 말이다. 그 당시 한국 영화 산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기에 그런 조언을 하셨을 거다. 그다음 모 대학의 국어국문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내 속내는 당시 국문과 출신 중에 방송사 프로듀서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 과에 가면 어떨까 싶은 것이었다. ‘소설 쓸래?’ 또 담임선생님 말씀이다. ‘너는 그냥 선생 해!’ 선생님은 나에게는 교직이 딱 이라며 다른 생각하지 말라 하셨다. 그러면서 교대 원서를 주셨다. 선생님은 교대에 나와 임용된 후 대학원에 다녀서 바로 승진 절차를 밟으라고 아주 세속적인 출세의 팁을 주셨다. 원서를 들고 교대가 있는 역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억한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부러운 것 또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제안했다. 아이들은 아직 무언가 확정되지 않은 삶이기에 부러움의 강도가 높진 않았다. 진로 교육에는 나의 경험이 유효하게 적용될 때가 많다. 그렇기에 진로 교사로의 전과에 교육경력을 많이 반영하는 이유가 일면 타당한 것 같다. 그럼 우리 고3 담임선생님의 진로 교육은 형편없었을까? 만일 내가 정말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면, 또한 극 연출을 하고 싶었다면, 나는 아마도 몇 편의 시나리오라도 끄적였어야 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습작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동료 미술 교사가 영화에 흠뻑 빠져 독립영화도 만들고 아이들과 청소년 영화 대회에도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활동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원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나리오 연수 등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원하는 일과 그 일을 이행하는 실천 의지는 별개라고 본다. 이점은 진로 교육의 영원한 숙제다. 고등학교 때 나는 선생님들에게 인사성이 밝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은 나의 그런 태도를 줄곧 칭찬하셨다.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깊진 않지만 문화 전반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교직에서 초임부터 밴드부 등 다양한 동아리지도와 수업에 활용되고 있다. 대학 2년을 마칠 즈음 학군단 지원을 위해 고등학교에 방문했을 때 한참 잊고 있었던 나의 진로 희망을 생활기록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1, 2, 3학년 모두 ‘교사’로 쓰여 있었던 것. 자기가 원하고도 그럴리가 하면서 잊고 있던 진로. 어쩌면 담임선생님은 그 점을 이해하고 지도하셨을지 모른다. 다소 부침은 있지만, 그간 나름 행복했던 교직 생활을 했던 점은 선생님의 지도가 타당하셨다는 증거일 수 있다.
현실의 진로 교육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학생의 흥미와 적성이 가장 중요한 점이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이나 의지의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린 때로 속 깊은 아이가 가족이나 주변을 많이 고려한 나머지 자신의 꿈을 조정하는 모습을 본다. 풍요롭지 못했던 예전에 가족 중 일부 구성원들이 그런 경험을 많이 했고 요즘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일명 ‘의치약한수’ 학과로 쏠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아이들이 돈만 밝힌다고 무턱대고 나무랄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훗날 다시 오파상(offer 商)이 되신 담임선생님의 명은 어겼지만 결국 사범대학을 지원하고 지금에 이른 건 선생님의 진로 교육이 보여준 통찰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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