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행복할까요? 잘하는 일을 할 때가 행복할까요?"
학생들에게 매년 던지는 질문이다.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이유를 물으면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말랑말랑한 생각도 신통할 때가 많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거우니까요’라는 간결한 답부터 ‘잘하는 일을 하면 칭찬도 받고 해서 결국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요’라는 추론까지. 학생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할 것이라고 손을 든다. 아이들의 생각을 넓히려고 질문을 추가한다. ‘그럼, 보수(돈)는 보통 정도로 편안한 삶이 가능한 수준을 받지만 매일 좋아하는 일을 해서 일터로 가는 게 너무 기분 좋고 설레는 사람 A와 오늘도 일터에 가는 게 너무 싫지만 억지로라도 일을 하면 이상하게 인정도 받고 보수도 많이 받는 사람 B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까요?’라고 물으면, 그렇다. 대부분 아이가 B를 선택한다. 처음엔 다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애들이 무슨 잘못이랴 우리 사회의 거울인 걸 하며 수긍하고 있다.
진로 교육에서는 좋아하는 일(분야) 즉 ‘흥미(interest)’와 잘하는 일(분야)인 ‘적성(aptitude)’ 파악이 중요한 주제이다. 이는 정교한 직업심리검사로 매년 번갈아 가며 측정해서 학생들의 자기 이해를 돕는 척도로 활용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경우 진로 탐색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활동에 제일 먼저 드는 것이 바로 직업 심리 표준화 검사이다. 그만큼 학생들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화된 도구로 측정하고 싶어 한다. 흥미 검사는 대표적인 이론가인 홀랜드(Holland) 교수의 6가지 흥미 유형에 대한 분류가 활용된다. 흔히 첫 글자를 따서 RIASEC이라고 표현되고 자세히는 현실형(Realistic), 탐구형(Investigative), 예술형(Artistic), 사회형(Social), 진취형(Enterprising), 관습형(Conventional)으로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선 두 가지 조합으로 사람의 흥미를 파악하는데 간단히 예를 들면 가장 높은 점수로 나온 것이 RA(현실형-예술형)일 경우 활동적이면서 창의적인 일을 좋아한다고 예상하는 것과 같다.
안정적인 조직 내에서 반복된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면 관습형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사회형의 경우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돕는 마음이 강하면 높게 나타난다. 그래서 교사의 경우 대부분 SC가 높게 나온다. 대학원에서 성인용 직업흥미검사를 실시했을 때만 해도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높게 나온 것은 AS였다. 검사를 통해 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하고 싶었던 분야를 졸업한 지 언 30여 년이 지나서 확인한 것이니 솔직히 그때의 충격이 진로 교사로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고 본다. 나의 경우처럼 학생들도 흥미 검사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예전에 성적표 받을 때와는 다르게 친구들과도 비교하며 즐겁다. 아마도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원초적인 즐거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쉽게도 자기 보고방식의 한계로 인해 흥미 검사나 성격검사는 왜곡될 수 있다. 검사를 진정성 있게 받지 않으면 충분히 원하는 결과로 나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그런 꾀를 부리지 않는다. 또 그런 꾀를 부리는 아이가 있다면 달리 접근하고 챙겨야 할 아이로 이해하면 된다.
좋아하는 일은 자기에게 물어야 한다면 잘하는 일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알아야 한다. 적성검사는 검사에 참여한 사람들 전체 안에서 학생을 파악한다. 대표적인 적성 영역으로는 언어이해, 과학이해, 수리논리, 공간지각능력 등이 있다. 인지능력을 측정한다는 측면에서는 발달 정도를 알 수 있는 검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 학습 능력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수리논리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수학 공부할 때 편하다. 언어이해는 국어, 영어 공부와 연관이 깊다. 성인용 직업적성검사를 할 때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수리논리 영역에서 수열추리력과 같은 검사이다. 이를테면 ‘다음에 나올 숫자는?’과 같은 문제 말이다. 나의 경우도 어휘나 문장독해 등에서는 편했지만 수열추리력이나 도형추리력에선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고통스러웠다. 공간지각력이 떨어지는 건 내가 전형적인 길치이기 때문에 결과를 보면서 강하게 수긍했다. 많은 사람이 수리논리능력에서 힘들었다면 대체 수학 선생님들은 어떨까? 예상대로 수학 선생님들은 그 부분에 강했다. 시간도 남고 풀기도 편했다고 한다. 모두의 부러움을 살 때 한 수학 선생님이 말했다. ‘근데 어휘나 문장독해는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적성검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타고나고 생겨 먹은 대로 살 수밖에. 거기에 너무 좌절하지 말자. 내가 없는 것만 보지 말고 다른 사람에겐 없는 내 것을 소중히 여기자. 그때의 교훈을 애들에게도 전한다. 직업 적성 비교군에서 내 적성에 딱 맞는 직업군은 의외로 교사가 아니었다. 나도 놀랐지만 ‘간호사’가 나의 적성과 딱 맞는 직업이었다. 역시 강하게 수긍했다.
2021년 통계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자리 만족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35% 정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자리에 만족하고 있었다. 20세 미만이 가장 높아 42.3%고 60세 이상이 가장 낮아 25.1%를 나타냈다. 확실히 사회 초년생이 직업 만족도가 높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크루트에서 202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본인의 직종이 만족스럽지 않은 제일 큰 이유로 하는 일에 비해 낮은 연봉(28.9%)이 차지했다. 적성과 맞지 않아서(14.8%)는 세 번째 이유였다. 사람들은 돈을 더 준다면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많은 보수를 받지만, 고통스러운 일터에 가는’ B가 좋다고 했다. 끝으로 하나 더 질문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하고 물으니 역시 좋아하는 일보단 B를 선택하셨을 것이라고 답한다. 수업 중에 힘들게 자신을 키워주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보수가 조금 적어도 좋아하는 일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회가 되기를 함께 소망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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