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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가 마담 리 Feb 26. 2022

이유라면 그런 게 이유였을까.

<9번의 일>을 다시 잘 읽으면서.

이유라면 그런 게 이유였을까. 아무래도 자신의 무디고 무심한 성격이 문제인 것 같았다. 더 민첩하게 굴었더라면, 약삭빠르고 기민하게 처신했다면. 그러나 자신이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했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명백한 잘못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과오를 찾는 데에 다시금 정신이 팔렸다.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긴 시간 회사를 통해 자신이 얻은 것과 배운 것, 바라고 원한 것. 이루고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회사에 속해 있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그 시간들 모두를 부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다만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9번의 일>, 김혜진)


작년 8월경부터 나의 번역 프로젝트는 술렁거렸다. 구태여 ‘프로젝트’라고 말하는 것은, 이 무렵 시작한 번역들이 출판사와 1대 1로 계약을 맺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프로젝트가 나를 찾아왔는데, 하나는 한국의 D 문학재단의 한국문학 외국어 번역 공모전이고 또 하나는 한국문학 번역원에서 프랑스어권 프로젝트 번역자로 선정된 것이다. 둘 다 코난이 눈곱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어서, 두 개의 계약서에 차례로 서명을 하고 나서 한동안은 구름을 타고 온 유럽 하늘을 활보하는 기분이었다. 나이 서른을 넘겨 여차저차한 이유로 프랑스에 오고, 대학 시절 잠깐, 그것도 낙제를 간신히 피할 정도로만 배워 두었던 언어를 초급부터 다시 배우면서도 나는 이 언어가 나의 주요 생계 수단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길로만 골라서 나아간다. 


달력을 보니 어느새 두 개의 프로젝트 마감이 닥치고 있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서둘러 마감해야 한다는 불안한 마음, 번역의 질이야 어떻든 마감만 잘해서 받은 돈을 토해내는 일은 면해야겠다는 비겁한 마음이 만날 때 번역은 가장 위험해진다. 이런 마음은 사실 장편 소설의 후반을 달릴 때쯤 찾아온다. 번역이 이쯤 이르면 원작에 나름 익숙해져서,  작가가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 우연을 가장하거나 남발하는 방식,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말 거는 방식이 뻔하게 느껴지면서 전부 시시해 보이고 지루해진다. 그러면서 행간과 페이지, 단어와 단어 사이를 겅중겅중 대충대충 뛰어 넘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겨나는데,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이럴 때 묘약처럼 꺼내 쓸 수 있는 묵직한 엉덩이와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번역은 손으로 짓는 한복 같은 것이어서, 성글게 마감한 부분은 반드시 올이 나가고 작은 충격에도 후드득 터지게 되어 있다. 틈새가 벌어진 옷은 솜씨만 있다면 얼마든 수선할 수 있겠지만, 마무리가 느슨한 채로 인쇄되고 독자를 만나기 시작한 번역에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그 번역가는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어… 라는 수군거림만 남을 뿐.

 

그러니까 내가 원서를 다시 정독하는 건 바로 이 무렵이다. 나태와 함께, 이쯤되면 나는 원작을 백 프로 이해했다는 오만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때. 이번 작업에도 어김없이 그 감정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하던 번역 창을 전부 닫고, 노트북을 끄고, 자연광이든 램프든 불빛 하나에만 의존해서 원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내려간다. 가끔은 소리 내서 읽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전에는 미처 몰랐던 리듬감이며, 입말의 구수함이며, 지금의 나처럼 스텐드 하나에 의지해 소설을 써내려갔을 원작자의 치열한 마음가짐이 서서히 들려오기도 해서 어딘가 잔뜩 구겨지고 뒤틀렸던 심사가 조금씩 펴지는 것 같고, 맑아지는 것 같고, 다시 한번 잘 마무리해보고 싶은 당당함이 생겨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김혜진의 <9번의 일>을 다시 정독했다. 나에게는 원서인 이 작품의 구절구절이 오늘은 또 왜 이리 서글프게 읽히는지. 김혜진이라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내내 제 일에 충실하다가 비로소 세상의 야비한 민낯에 뒤통수 맞고 서서히 눈을 떠 나가는 중년 사내의 마음결을 한올 한올 짚어낼 수 있었던 건지… 오늘은 어쩐지 작가에게 메일로라도 말을 걸고 싶어진다. 잘 지내고 계시죠? 당신은 어떤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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