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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가 마담 리 Feb 25. 2022

포말, 마르세유

<예술가>와 <야술가> 사이를 어정거리다가

화아아...! 득달같이 새벽 기차를 타고 달려 내려가 남불 마르세유와 지중해를 보고 돌아오는 밤 기차에서, 왜 돌연 바다가 보고 싶었던 걸까를 곱씹어보았다. 그건 어쩌면, 이 문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카리브해의 물결이 하얀 포말을 물고 낮이나 밤이나 저 둑을 넘어 도로를 흥건히 적셨지. 길 건너 골목에서는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았고.” (<기억의 고고학>, 함정임)


하얀 포말을 물다, 밤낮으로 둑을 넘어 도로를 흥건히 적시다, 건너편에서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춤추며 노래하다… 포말과 바다와 인간의 여흥이 흐드러지는 구절을 번역하다가 잠이 들면 파도가 꿈자리를 휩쓸고 지나가기도 해서, 나는 이제나 저제나 얼른 스키 방학이 되어 지중해를 볼 수 있기만을 바랐다. 학부 1, 2, 3학년 수업에다가 대학원 특강을 꾸역꾸역 진행하고, 그러다가 병에 걸리고, 그러면서 새벽에는 잠 덜 깬 강아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번역 매수를 채우고… 누가 봐도 나는 좀 지쳐 있었고 그 탓인지 온몸이 내내 부어 있는 느낌이었다.


아침 아홉 시 좀 넘어 마르세유 구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마다 열리는 생선 시장 냄새가 났지만, 밤새 거세고 하얗게 일어났다는 포말은 흔적도 없어서, 우리는 배를 타고 프리울 섬으로 가기로 했다. 도시 마르세유에서 배로 4킬로 떨어진 프리울은 섬이라고 쓰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라토뉴, 포메거스, 티볼라인, 이프 등 네 개의 거대한 돌덩이로 이루어진 제도다. 날이 좋으면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16년 동안 감금되었다는 이프 섬까지 배가 다녀서 이프 섬과 성을 방문할 수 있다지만, 이날은 바닷사람들이 하는 말로 « 바다가 들고 일어나는» 날이어서, 간신히 프리울까지만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분 남짓한 뱃길에, 나는 그 하얗다는, 바닷물이 물고 뱉아낸다는 포말을 속이 울렁거릴 때까지 목격했다.


비록 4킬로 남짓이라지만, 작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넌다는 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가. 중간쯤 지나 마르세유 항이 점점 작게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바다가 들고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배가 좌우, 위 아래 할 것 없이 요동을 쳤다. 와중에 포말은 주책없이 선창을 때리고, 문틈으로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고, 옆에 앉은 아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출품하겠다면서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침 우리가 탄 배(henri jacques espérandieu 호)가 위는 파랗고 아래는 하얀 색이어서 그랬을까, 범고래를 타고 씽씽 바다를 나는 기분이었다, 고 이제야 조금 차분하게 회상한다.


이렇게 짧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 나는 다시 번역 원고를 들여다본다. 하얀 포말이 해안 도로를 덮치는 느낌은 이제 정리가 됐고,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의 거칠지만 따스한 얼굴도 다시 보니 이해가 간다. (남불에 2년 동안 살면서는 왜 보이지 않았던 걸까. ) 술집 이름으로 등장하는 <예술가>와 <야술가> 사이의 언어 유희를 조절하면서, 이 단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이 작가의 두번째 단편은 더 호락호락하지 않다. 몽골의 초원, 북경, 신도시, 구읍, 신촌, 호암미술관, 백남준 전, 마른 플라타너스 잎, 이별하듯, 새롭게 맞이하듯… 제일 무시무시한 복병은 <몽고 반점>과 <북경 반점>이 만들어 내는 언어 유희와 상징이다. 이 거리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내내 고민하다가 금쪽 같은 방학이 저문다. 그나저나, 이 작품을 두 번째로 시작하길 잘 했다. 자칫 마르세유가 아니라 몽고 초원으로 가고 싶어 안달복달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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