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 씨, 고향이 어디예요?”
“제주도예요.”
교재 속에서 마리가 고향을 묻고 소영은 제주도라고 대답한다.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학생들의 눈과 내 목소리에서 졸음과 하루의 피로가 읽히고, 나는 고향이라는 말에 잠깐 마음이 열린다. 마리는 왜 돌연 소영의 고향이 궁금해진 걸까. 누군가의 고향에 대해 이렇게 불쑥 질문해도 괜찮은 걸까.
개인 신상명세서에 본적을 적는 란이 존재하던 시절 내 본적은 황해도 연백이었으나, 나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연백은 아버지가 어린 나를 앉혀놓고 들려주시던 공산당 피한 이야기, 헤엄쳐서 강 건넌 이야기, 맨손으로 일군 돌밭이 김포평야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 지금 들으면 알에서 태어났다는 김수로왕의 이야기 못지 않은 신화의 땅이었다. 전남편의 고향은 경상도 어딘가였는데, 어디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지명을 내 주민등록등본에서 확인했을 때 나는 뭔가 대단한 거짓말을 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발이 닿지도 않은 곳이 서류에 적힌 내 근본이라니! 이 가짜 고향은 이혼과 더불어 끝났다. 내 마음과 영혼이 1도 담기지 않은 서류상의 고향은 지우기도 쉽다. 거꾸로 말하자면, 쉽게 지워지는 곳은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없다.
내 고향은 어디일까.
로맹 가리는 <새벽의 약속>에서 “유기견처럼 우리는 어머니의 무덤으로 늘 되돌아온다.(On revient toujours gueuler sur la tombe de sa mère comme un chien abandonné.)”라고 썼다. 중간중간 말썽을 피우긴 했어도 로맹 가리는 외교관, 공군 대위, 그리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공쿠르 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해서 어머니의 소원을 곱빼기로 이루어 드렸다. 이후, 훈장과 꽃다발을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에 바쳤는데, 구태여 그 먼 길로 되짚어 돌아가 영광을 돌려드리고 온 건 바로 거기가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 박해를 피해 14살 나이에 출생지 리투아니아 제국을 떠나 프랑스 니스에 정착하고, 다시 파리, 아프리카, 미국, 불가리아, 스위스, 그리고 페루로 말 그대로 발을 땅에 디디지 못하는 철새처럼 떠돌다가 결국 입에 권총을 물고 생을 마감한 로멩 가리에게 고향은 오로지 한 곳이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인 어머니가 계시고, 어머니의 마지막 향기가 남아 있을 것 같은 곳. 기를 쓰고 날갯짓을 해 날아가서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곳. 특별한 이벤트를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좋고 발바닥 저 아래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곳. 올 겨울 나는 고향을 돌아보기로 했다.